위선과 처세와 덕망은 같은 선상에 절대 놓일 수 없다.
개인의 사고방식과 선함과 지혜가 뛰어나다 한들 사람끼리 부대끼며 경쟁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틀림없이 전쟁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배려라는 게 생기는 거야. 그걸 행하는 사람을 선한 이라고 칭하지.
사람이 여럿 모이면 충돌해, 원하는 게 다르니 욕망이 부딪히는 게 당연해. 상처받는 게 당연해.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고 늘 싸우는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자주 인간은 결핍을 겪고 그 결핍을 낫게 하기 위해 사람을 사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관계를 겪는 과정 중 빌런을 만나게 되는데 누군가에게 나는 빌런일 수 있다는 걸 알아두자. 나만 ‘피해자’라는 생각보다는 나도 ‘가해자’ 일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는 흔히 권력구조 아래에서 일어난다. 권위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자들의 다툼에서부터 비롯된다.
어느 누군가는 대장이 된다. 요술봉을 가진 아이가 마법 소녀 놀이 대장, 카드가 많은 사람이 유희왕 놀이 대장. 어릴 적 작은 걸로 완장 차는 걸 왜 이렇게 다들 좋아했는지. 그래서 일진 문화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권력 나눔은 어릴 적부터 겪어왔던 우리의 본능인 것이다.
나는 항상 권력 싸움의 약자였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한 여자아이. 그래서 그럴까, 차별과 급 나누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꽤 용기 있고(무지했기에) 눈치 없는 아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 누가 못한다고 놀리든, 어떻든. 누가 뭐 래든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는 최고였다. (사실 나도 못하는 사람을 놀리고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때의 나를 반성해야지. 잘못한 거니까.)
하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 노력하고 열정이 깊은 사람은 어딜 가든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실을 알 때마다 무기력해졌다.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인가. 아니면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을 부정하는 것 때문일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믿어왔던 걸 새로 부수고 세계를 만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긴장과 열등감과 실망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가 나를 하대하면 마음부터 상한다. 나는 그런 대접받을 사람이 아니라며 혼자 나를 보호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자존심이라는 보호장치인 것 같다. 날 절망과 좌절에서 구원해 주고, 결핍을 발견했을 때 1차적으로 쿠션 역할을 해주는 장치.
날 부정하는 말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열심히 하고 싶지만 헤매고 있으니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아프니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내 부족함을 느끼는 날에는 세상에 녹아내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부족한 게 있으면 나는 더 나은 점이 있다 생각하거나, 채우려고 노력해요.
- 사람의 귀천을 나누면 안 돼요 우리 모두 귀한 존재니까요.
- 급을 나누지 말자/아냐, 우리는 격차를 벌려야 해 그래야 발전할 수 있어.
늘 자신을 괴롭힌 말들이다. 남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나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늘 싸운다. 난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늘 발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넌 뭘 노력했다고 힘들어하니? 네가 뭘 했는데?”
이런 잔인한 말들이 가슴을 파고들 때마다 우울했다. 남들이 정하는 내 인격은 시시각각으로 날 아프게 했다.
“있죠, 난 누구보다 착한 아이이고 싶지만 위로도 올라가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으르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나는 발전을 멈췄다. 더 위로 올라가려 애쓰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것에 대한 잔인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게 내게 무엇을 주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물을 어찌 나눠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성공하고 싶지만 성공하기도 싫다. 이런 모순된 마음이 날 괴롭힌다.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늘 마음을 수양해야 해.*
많은 건강 상식들이 있다. 잠 잘 자고 건강해야 해요. 서로를 사랑해야 해요. 그리스도의 정신, 네 원수마저 사랑하라 등. (가끔은 사랑하기 싫지만.)
이렇듯 상위권 포식자가 아닌 사람은 권력구조에 복종하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몇 배는 노력해야 한다.
왜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져야 할까.
싫다. 싫어… 정말 싫어. 진심으로 싸우는 게 싫어. 그냥 다 같이 사랑하면 안 돼?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싫어. 서로에게 좀 더 상냥해줘. 울리지 말아 줘.
이해하기를 수십 번. 이제는 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실패와 성공 끝에 결과가 나와도, 반성이 필요하고. 또, 지식 쌓는 게 필요하다는 걸. 경쟁만이 아닌 휴식 역시도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늘 선한 사람도 없고 늘 악한 사람은 없다. 그게 세상이라는 거다. 필요 이상으로 자책할 필요도, 자만할 이유도 없다.
단체 생활을 잘하는 법 중 하나는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는가. 이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 계속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실수에 무감해지면 안 된다. 관대한 것과 무감해지는 건 다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하고 있어. 그러니 누군가에게 너를 맡기지 말자.
이 글을 시작으로, 어려운 인간관계에서 함께 “나”를, 더 나아가선 서로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시작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