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지그재그 등교길
13화 베란다에서 본 지그재그 등교길
아침 빗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은 잔뜩 흐리고 도로 위에는 작은 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겨 있었다.
나는 서둘러 우산을 챙겨 놓고 준이를 깨워 밥을 먹였다.
“우산 챙겼지?”
“응!”
준이는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비 오는 날 혼자 등교하는 아들이 괜히 걱정돼서였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아이들.
각자 자기 우산을 쓰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우리 아이만 달랐다.
준이는 출발하자마자 길가 쪽으로 확 꺾더니 풀숲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베란다 위에서 두 손으로 난간을 꼭 잡았다.
‘왜 멈춰? 지금 5분밖에 안 남았는데!’
그 순간 준이가 허리를 굽히더니 뭔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풀잎을 살짝 들고 다른 쪽으로 옮겨준다.
‘뭐야… 달팽이?’
맞다.
달팽이였다.
비 오는 날만 볼 수 있는 그 귀한 손님.
하지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달팽아, 제발 오늘은 좀 그냥 가 줘…’
준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출발했다.
안도하려는 순간 이번엔 또 왼쪽으로 꺾는다.
웅덩이다.
아이는 웅덩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계속 들여다본다.
내 마음은 점점 초조해진다.
베란다 위에서 보면 마치 나만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학교 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길 위에서 미로 찾기 중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야, 똑바로 가! 늦겠어!” 하고 싶지만 그 말이 내려가는 동안 아이는 이미 다른 걸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준이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엔 우산을 빙글 돌리며 걸어간다.
우산 위로 튀는 빗방울이 마치 폭죽 같았는지 준이는 잠깐 멈춰 서서 그것만 바라본다.
나는 베란다 위에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 정말 늦겠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웃음이 났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준이의 길은 참 기묘했다.
곧게 뻗은 길 위위에 다른 아이들 발자국은 일렬로 이어져 있는데
준이의 발자국만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그 모양새가 꼭 지그재그 퍼즐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 아이는 그냥 학교로 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배우러 가는 중이라는 걸 말이다.
달팽이를 보고,
웅덩이를 들여다보고,
빗방울에 감탄하는 그 시간이
이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오늘의 공부’ 일지도 모른다.
나는 베란다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초조함이 조금씩 가라앉고 대신 이상한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래, 네 속도로 가라. 학교 종이 울리면 한 번쯤 뛰면 되지.’
잠시 후 준이는 드디어 큰길로 나섰다.
뛰진 않았지만 그래도 속도는 조금 붙었다.
나는 그 모습이 대견해 손을 흔들었다.
물론 아이는 못 봤겠지만.
그리고 혼자 웃었다.
오늘 아침 나는 내 아이 덕분에 비 오는 날만 할 수 있는 관찰 수업을 보았다.
내가 본 것은 아들의 지그재그 걸음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과 대화하는 선이었다.
앞으로 비 오는 날 아침 나는 베란다에 서서 시계를 보기보다
아이가 그리는 그 ‘지그재그’를 감상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나에게도 세상을 다시 보는 새로운 공부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