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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 준이

14화 준이의 청개구리 책

by 작가

14화: 준이의 청개구리 책 만들기

이곳에 이사 와서 1학년 여름에 동네 형아가 잡아 준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4학년이 될 때까지 살게 되었다.

그때 준이는 개구리와 사랑에 빠졌었다.


이것은 그 시절 준이의 일화이다.


준이는 색연필을 꺼냈다.

책상 위에는 초록, 파랑, 보라색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오늘은 뭐 그릴 거야?”


내 물음에 준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청개구리 책 만들 거야.”


나는 잠시 멈췄다.

청개구리 책이라니?


요즘 아이가 청개구리에 푹 빠져 있는 건 알았다.

비만 오면 베란다 창문을 열고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인다.

학교 가는 길에도 웅덩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작은 웅덩이 속에서 언젠가는 개구리가 깡충 나올 거라 믿는 눈빛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책을 만들겠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도 살짝 설렜다.

‘이 아이가 오늘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준이는 크레파스를 쥐고 종이에 커다란 초록색 덩어리를 그렸다.

둥글게 크게 힘주어 칠한 초록색은 점점 개구리의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파란색으로 커다란 눈동자를 그려 넣고 하얀 이빨을 잔뜩 그려 넣었다.

그 개구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림 위에 글씨도 썼다.

“청개구리 책”

철자도 맞춤법도 조금 삐뚤빼뚤하지만 그 글자들은 살아 있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방금 태어난 문장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책은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준혁이는 물고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란 물속에 한 마리는 헤엄치고 한 마리는 물 밖에서 땅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는 글씨를 썼다.

“어류가 양서류가 됐어요.”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양서류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확하게 쓰다니!

물론 글씨는 어설펐지만 아이 머릿속에는 ‘물고기가 진화해서 개구리가 됐대’라는 깨달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준이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도롱뇽 비슷한 것을 그렸다.

길쭉한 몸통, 네 다리, 긴 꼬리.

그리고 옆에 설명을 덧붙였다.

“도롱뇽은 양서류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그림놀이가 아니라 아이만의 과학책 아이만의 백과사전이었다.

준이는 그림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고 글씨로 그 생각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다시 물고기를 그렸다.

이번엔 물속에 혼자 있는 그림이었다.

말풍선을 달았다.

“안녕 난 올챙이.”

아마도 올챙이가 스스로 “난 앞으로 크게 될 것이다 ”

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 아이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진화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그림들을 보며


나는 문득 마음이 울컥했다.

‘이 아이가 커서도 이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개구리 하나에서 시작된 관심이 물고기와 도롱뇽 심지어 진화까지 이어진다니 이보다 멋진 공부가 또 있을까?


그날 밤 나는 아이의 그림이 담긴 책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이건 그냥 낙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담긴 첫 번째 책이니까.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 아이가 더 많은 글씨를 배우고 더 많은 이야기를 쓰게 되면 이 책은 분명히 더 두꺼워질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의 이 그림들을 다시 꺼내 보여주며 말할 것이다.


“준아 네가 처음 만든 책은 청개구리 책이었어.

그때 너는 이미 세상을 배우는 중이었단다.”


청개구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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