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밀어와 버들치
12화: 밀어와 버들치
여름방학의 어느 날 준이는 평소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오늘 계곡 가서 물고기 좀 잡아올까?”
나는 잠깐 망설였다.
집에서 기르는 거라면 금붕어나 구피 정도가 최선인데 아이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준이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냥 ‘놀고 싶어서’가 아니라 직접 보고 직접 느끼고 직접 관찰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단 잡아온 물고기는 잘 돌봐야 해.”
우리는 근처 계곡으로 향했다.
여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살 사이로 준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고 물고기를 잡았다.
작은 물고기들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준이는 신기해하며 웃었다.
그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밀어와 버들치를 번갈아 바라보며 수조에 넣을 구상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준이는 곧장 테라리움처럼 꾸밀 수조를 준비했다.
작은 돌 수초를 넣고 계곡에서 잡아온 물을 살짝 섞어 자연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준이는 그 속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길 바랐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손길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아이는 정말로 생명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열어 검색하더니
"엄마 이건 망둥어과 밀어 같아"
"얘는 버들치 같아"
들떠서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잔혹했다.
밀어 두 마리가 버들치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엔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듯했지만 순식간에 그들은 버들치를 덮쳤다.
준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수조 앞에서 멈춰 섰다.
“엄마… 버들치가…!”
나는 조심스레 준이 옆에 다가갔다.
아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빛에 실망과 혼란 그리고 약간의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속삭였다.
“준아 자연에는 이런 일도 있는 거야.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가 바로 눈앞에서 나타난 거지. 슬퍼할 수 있지만 이것도 배움이야.”
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가 촉촉했지만 그는 수조 속 남은 버들치를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밀어와 버들치 사이의 관계를 직접 체험하면서 먹이사슬과 생태계의 균형을 아이는 이해한 듯했다.
그날 이후 준이는 수조 속 작은 세계를 매일 관찰했다.
“밀어가 좀 더 있으면 좋겠는데…”라며 고민하는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준이는 자연에서 직접 배우는 경험을 통해 관찰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키웠다.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아픔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가장 큰 교훈이 된 셈이었다.
나는 그가 단순히 물고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생명의 존중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며칠 뒤 준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이번에는 물고기들이 서로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환경을 바꿔줄 거예요.”
나는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며 다시금 아이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준이는 수조 앞에서 종종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이는 작은 수조 안에서 삶과 죽음
먹고 먹히는 세계 그리고 책임감까지 배우고 있었다.
준이와 계곡에서 잡아온 물고기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여름방학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것은 호기심, 실패, 배움, 성장이 고스란히 담긴 작은 생태계의 기록이다.
준이는 물고기들과 함께하며 세상을 배우고 나도 아이를 통해 자연과 생명의 섬세함을 다시 깨닫는다.
밀어 두 마리는 여전히 활발하게 헤엄치고 버들치들은 따로 분리해 잘 지내고 있다.
자연을 관찰하며 배우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빛난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과정 속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 작은 수조 안에서 준이는 자연과 생명 책임과 배움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경험하고 있다.
계곡에서 시작된 물고기 관찰은 이제 준이에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그는 오늘도 수조 앞에서 한참을 서서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는다.
준이의 계곡 물고기 관찰은 단순히 “물고기를 키운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와 자연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실패와 아픔, 관찰과 배움, 책임과 사랑이 뒤섞인 이 작은 에피소드는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을 생태 에세이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