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피구 코트 한복판에서 배우는 것들
24화 피구 코트 한복판에서 배우는 것들
스포츠데이를 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깔린 빨간 라인과 파란 라인 구호를 외치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나는 오늘도 준이 걱정이 되어 그늘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내 마음속 무대의 주인공인 준이를 찾았다.
오늘의 경기 종목은 피구.
아, 피구라니.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엄마라서 잘 안다.
우리 아들 준이가 피구경기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누구보다 느린 데다 볼을 던지는 팔 힘도 약하다.
게다가 본인은 눈치도 없어서 팀의 암묵적인 룰을 전혀 모른다.
누구를 맞출 것인지, 공을 패스하며 틈을 볼 것인지, 그 세세한 눈치와 감각을 아이는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 준이는 눈이 반짝였다.
“엄마, 나 진짜 오늘 잘할 거야. 나 피하는 거 잘해.”
그 말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나는 순간 믿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공이 던져졌다.
아이들은 재빠르게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런데 코트 한가운데서 느릿느릿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열심히 뛰는 한 명이 있었다.
바로 준이.
다른 아이들은 준이를 맞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안 맞춘다기보다 맞출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맞출 수 있는 가장 쉬운 타깃.
그러니 굳이 지금 공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 준이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도 된 듯 공 하나하나를 목숨 걸고 피한다.
온몸을 비틀고 허리를 꺾고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질 뻔하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살짝 코끝이 찡해졌다.
어쩌면 인생이 다 이런 게 아닐까.
남들은 나를 그렇게 주목하지 않는데
나 혼자 필사적으로
나 혼자 긴장하며
나 혼자 전력으로 살아가는 것.
드디어 아군이 다 맞고 준이 팀이 수비할 차례가 왔다.
“수비 들어가!”
아이들이 소리쳤다.
준이는 쌩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준이는 지쳐 있었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고 숨은 헐떡였다.
결국 준이는 그라운드 한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흙을 만졌다.
그 모습이 또 웃겼다.
"야 지금 네가 앉아 있으면 어떡하니. 저기 공은 날아다니고 있는데! "
그런데 신기했다.
그 옆자리를 친구가 메꿔주었다.
친구는 마치 준이까지 대신하겠다는 듯 자기 구역과 준이 구역을 2배로 뛰어다녔다.
그 순간 갑자기 울컥했다.
‘아… 친구가 준이를 살려주는구나.’
경기가 끝나고, 준이는 씩 웃었다.
“엄마, 나 하나도 안 맞았어!”
“그래, 잘했다.”
진심이었다.
맞지 않는 건 아마 너보다 상대편이 더 큰 이유였겠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너는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너는 너만의 영웅이었다.
운동장 한편에서 흙을 만지던 준이를 보며 나는 ‘삶’을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운동장 어딘가에서
각자의 속도로 뛰다가,
때로는 지쳐 앉아 있고,
그때 누군가 옆에서 내 몫까지 뛰어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이유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오늘도 내 아이는 나를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켰다.
“그래, 너는 너대로 뛰어라. 세상은 어차피 맞춰 돌아갈 거니까.”
그날 밤 준이는 곯아떨어졌다.
나는 사진첩을 열어 오늘 찍어둔 준이의 필사적인 표정을 보며 웃었다.
코믹하고
감동적이고
조금은 짠한
그 작은 영웅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