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준혁이의 첫사랑, 그리고 깨달음
22화 준이의 첫사랑, 그리고 깨달음
준이는 친구가 별로 없다.
준이와 놀고 싶어 하던 친구들도 같이 놀다 보면 챙겨줘야 하는 준이가 귀찮다.
준이도 어느 순간 자기가 친구와 관심사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창밖을 보고 흙을 만지곤 했다.
그런 준이에게 2학년 꼬꼬마 시절 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같이 놀래?”
그 한마디가 준이의 세상을 바꿔 놓았다.
그날 이후로 준이는 그 아이만 바라봤다.
집에 오자마자 자랑했다.
“엄마, 나 이제 친구 있어!”
그때 그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서 거의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3학년이 되자 준이는 더 적극적이 되었다.
그 친구 생일날 케이크를 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나는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그 친구 집 앞까지 갔다.
준이는 케이크를 꼭 끌어안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
친구가 나오자 준이는 수줍게 말했다.
“생일 축하해.”
그때 그 장면은 마치 작은 프러포즈 같았다.
사실 준이는 1학년 때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시절 전학 온 준이를 잘 챙겨주던 여자아이였다.
그 친구 얘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였었다.
2학년 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자 1학년 때 그 친구는 조금 뒷전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 챙겨주던 여자아이는 이제 아주 친숙해져서 마치 집안 어른 같다.
“준아,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얼른 해.”
잔소리가 늘었다.
준이는 한숨 쉬며 말했다.
“엄마 걔는 이제 그냥 잔소리꾼이야. 거의 이모 같아.”
게다가 2학년 때 만난 그 친구는 4학년, 5학년이 되면서 반이 달라졌다.
준이는 어느 날 툭 말했다.
“엄마, 걔 요즘 나한테 인사 안 해. 내가 먼저 인사해도 그냥 가버려.”
목소리가 심각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아이의 교우관계가 궁금했던 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결혼 안 할래.”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아직 결혼할 나이도 아니잖아.”
준이는 진지했다.
“여자애들 원래 이런 거야? 갑자기 안 친한 척하고… 너무 어려워.”
그 말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준이의 슬픔이 있었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친구가 더 이상 자기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준이를 서운하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아, 사람 마음은 계절 같아. 봄에는 꽃이 피지만 여름에는 또 모양이 달라지고 가을이 되면 색이 변해. 그렇다고 꽃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변한 거지.”
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봄이 올까?”
“그럼. 언젠가 또 올 거야. 다른 친구일 수도 있고 같은 친구일 수도 있고.”
그날 이후 준이는 그 친구 이야기를 덜 꺼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마음속에 여전히 그 친구가 살고 있다는 걸.
가끔 웃기다.
아직 열두 살짜리인데 벌써 사랑의 기쁨과 실망을 다 겪어봤다.
그리고 결혼을 포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젠가 또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준이는 다시 케이크를 사겠다고 할 거라는 걸 안다.
다시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할 거다.
왜냐면 준이는 그렇게 순수한 아이니까.
나는 그 모습이 좋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이다.
비록 조금 빠른 것 같아도 그만큼 세상을 배우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결혼 안 해도 돼. 근데 네 마음은 닫지 말아라. 계속 좋아하고, 계속 케이크 들고 가고, 계속 인사해라. 그게 네 매력이니까.’라고 생각해 본다.
오늘도 준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묻는다.
“엄마, 여자애들은 왜 그렇게 변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건 엄마도 잘 몰라. 근데 하나는 알아. 너는 정말 멋진 남자야.”
준이는 뿌듯한 얼굴로 거울을 본다.
그리고 다시 결심한다.
“그래… 언젠간 결혼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