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거예요
23화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거예요”
“보드게임 시간에 너무 혼자 앉아있어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조금 젖어 있었다.
“보드게임 시간에도 안 끼고요. 다른 아이들이 ‘같이 하자’ 해도 그냥 웃기만 해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럴 거예요.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거예요.”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아이는 하고 싶다.
마음속에서는 열 번도 더 참여하고 있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웃으면서 앉아있고 싶다.”
그런데 몸이 느리다.
손이 느리다.
머리가 느리다.
게임의 규칙을 따라가다가 헷갈리고 순서를 놓치고 결국 엉켜버린다.
한 번 웃음거리가 된 경험은 오래 남는다.
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면 아이는 스스로 말한다.
“그냥 하지 말자. 망치면 더 창피하니까.”
이건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다.
나는 그 속에는 작은 용기와 자존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못해서 망칠까 봐. 그럴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이건 어린 마음의 전략이다.
그저 무기력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피하는 거다.
어른들은 답답해한다.
“애가 왜 이렇게 적극성이 없지?”
“왜 이렇게 혼자만 있지?”
하지만 나는 웃는다.
아이는 자기 마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릴 만큼 단단하다.
한 번은 보드게임 시간에 억지로 끼워 넣어 보았다.
나는 속으로 자꾸 안 하면 계속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가 같이 도와주면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순서가 왔을 때 턴을 놓쳤다.
다른 아이들이 웃자 얼굴이 빨개졌다.
게임이 끝난 뒤, 준이는 내게 속삭였다.
“엄마, 나 다음엔 그냥 구경할래.”
나는 그때 알았다.
아이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기’를 선택한 거라고.
어쩌면 이건 용기다.
세상은 자꾸
“적극적으로 살아야 해!”
“친구랑 잘 어울려야 해!”
“리더십 있는 아이가 되어야 해!”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나는 준이는 이미 충분히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마음이 상할 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자기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자기 속도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얘는 느린 아이예요. 근데 느리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요.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언젠간 자기 속도로 뛰어들 거예요.”
정말 그랬다.
언젠가부터 준이는 보드게임을 멀리서 구경하다가 한 칸씩 가까워졌다.
“나도 해도 돼?”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이건 아주 작은 걸음이지만 준이에겐 큰 도약이었다.
어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치열한 고민이 있다.
나는 그 고민을 존중해 주고 싶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웃고 조금 늦게 움직여도 괜찮다.
그건 이 아이의 속도다.
요즘은 준이가 스스로 말한다.
“나 오늘은 안 할래. 그냥 앉아 있을래.”
나는 대답한다.
“그래, 네가 좋아서 그런 거지?”
“응.”
그 대답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애야.”
나는 웃는다.
“아니요.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이 아이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지키는 중이에요.”
나는 그 말을 꺼내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 안 하기’라는 결정을 스스로 내린 용감한 아이.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