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멍 때리는 아이, 멍 때리는 엄마
21화 멍 때리는 아이, 멍 때리는 엄마
준이는 ADD다.
'ADHD가 아닌 게 어딘가?' 그건 그거대로 감사하다.
“과잉행동 하나라도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준이는 멍하고 종종 엉뚱하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가끔은 우주의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으니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얘는 진짜 착한 별에서 온 아이 같아’ 하는 생각까지 든다.
준이는 순하다.
사람 좋은 웃음을 늘 달고 산다.
문제는 학교다.
그 멍 때림이 학교에서는 ‘수업을 안 듣는다’로 해석된다.
“어머니, 준이가 오늘도 수업 시간에 창밖만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약을 먹는다.
약은 참 야속하다.
약 덕분에 멍 때림은 줄어든다.
대신 식욕이 사라진다.
“준이가 오늘도 밥을 안 먹었어요.”
5년째 듣는 이야기다.
급식실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식판은 늘 반쯤 차서 돌아온다.
수업 시간에는 눈이 또렷해졌지만 점심시간에는 밥숟가락이 멈춘다.
밥 먹을 때까지 선생님 눈치를 봐야 하고 먹어야 하는데 안 넘어가서 속으로 한숨을 쉰다.
나는 그걸 매일 듣는다.
“오늘도 안 먹었어요.”
그 말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심장을 툭 치고 간다.
그러다 남편 직장 일 때문에 하노이에 살게 된 적이 있었다.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생님이었다.
아이를 직접 가르쳐보고 함께 지내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아, 이 아이가 멍 하고 있는 게 그냥 ‘멍 때림’이 아니라는 걸.
그건 이 아이의 ‘호흡’이었다.
수업 중간중간에 찾아오는 그 멍한 시간 덕분에 그는 다시 집중할 힘을 얻는다.
그 시간은 허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충전 시간이었다.
그걸 모르고 나는 늘 다그쳤다.
“집중해! 정신 차려!”
이 말이 사실은 아이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걸 나는 홈스쿨을 하면서 알았다.
급식 이야기도 이해가 갔다.
약 먹고 나면 입맛이 없다.
밥은 눈앞에 있는데 목구멍이 잠겨 버린다.
억지로 먹이는 건 괴롭히는 일에 가까웠다.
학교 선생님이 매일 “밥 좀 먹으라”라고 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겠구나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약을 안 먹을 수는 없다.
약을 끊으면 수업은 온데 간데 없고 아이의 눈은 다시 먼 곳을 바라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약을 챙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예전에는 ‘멍 때리지 말라’고 다그쳤지만 이제는 멍― 하고 있는 아이를 그냥 둔다.
그 모습마저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아이는 나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엄마, 나 잘했지?”
그 웃음에 나는 무너진다.
잘했지 그럼.
네가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 거다.
가끔은 나도 멍― 한다.
아이 옆에서 같이 앉아 창밖을 본다.
“엄마 뭐 해?”
“나도 멍 때려.”
그렇게 함께 멍을 때리고 있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다.
그 시간 만큼은 세상 누구도 우리를 다그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멍 때리면 안 된다지만 삶에서는 멍 때려도 된다.
오히려 꼭 멍 때려야 한다.
그래야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간다.
우리의 멍 때림은 이제 작은 의식이 되었다.
“멍타임 들어갑니다!” 하고 둘이 동시에 창밖을 본다.
이 집에서 멍은 금지어가 아니라 필수 과목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약을 챙기면서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괜찮아, 멍 때려도 돼.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리고 웃는다.
왜냐면, 그 멍한 얼굴이 너무 귀엽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