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에 맞게 모십니다. 더 하이라인, 첼시마켓, vessel, The p
원래도 하루 만보 정도는 걷는 나라서 여행을 가면 엄청나게 걷게 된다. 하루 2만보는 우습다. 일상에서든 여행지에서는 버스나 지하철로 애매한 거리(어디까지나 내 기준)는 걸어 다닌다. 일반적인 내 대다수의 친구들은 이 강행군을 따라오기 어려워한다. 여행 동선을 짜는 것은 그래서 아주 중요하다. 내가 많이 걸을 수 있다고 해서 내 친구랑 내 관절도 괜찮다고 동의한 것은 아니니까.
이날은 하이라인까지 메트로로 이동하여 더 하이라인을 걷고, 첼시마켓을 구경하고, 베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더 피크 101층에서 저녁밥을 먹은 뒤 엣지 전망대에서 뉴욕 전경을 구경하는 코스였다. 다 붙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뉴욕옇애 동선 짤 때 참고하세요. 일단 하이라인 자체도 꽤 긴 거리이고, 첼시마켓에서 랍스터 샌드위치를 먹을 게 아니면 어차피 계속 걸어 다니는 코스이기 때문에 The peak에 도착할 때 까지는 앉을 수가 없다.
자유의 여신상 다음으로 궁금했던 하이라인(The high line)으로 이동했다. 1900년도에 화물 철도로 쓰여진 것이 운영률이 감소하여 방치됐고,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것. 우리나라로 치자면 선유도, 난지도와 유사하다. 폐공공시설이 공원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것도 그렇고 친환경 공원으로 꾸며진 것도 그렇고.
입구를 버벅이며 찾다가 올라가는 육교를 발견했다. 날씨도 맑고 딱 산책하기 너무 좋은 날이라 기대가 됐다. 뉴욕의 햇살은 너무 강해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관광객인 나는 말해 뭐 해. 선글라스를 썼다가 뺐다가 하면서 경치를 구경했다. 더없이 화창한 날씨에 파란 하늘과 무채색의 건물과 초록 녹음이 어우러진 게 한 폭의 예술작품이었다.
하이라인은 고층빌딩보다는 낮지만 지면 보다는 상부에 위치해서 중간에 붕 떠 있는 이탈감이 느껴졌다. 덕후처럼 표현해보자면 인간계과 천상계의 중간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랄까.
뉴욕에 와서 느낀 건데 이곳 사람들은 다른 이의 시선을 크게 신경을 안 쓴다. 스타일링이 너무 독특해서는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편하게 입는 편이었고, 그냥 길바닥에 편하게 앉아 있는다든지, 공원도 아닌 길에서 To-go 음식을 먹는다든지. 내가 생각했던 화려한 런웨이 걷는 듯한 느낌, 늘씬늘씬한 스타일리시한 패션피플들,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날카로운 눈빛의 바쁜 도시의 현대인들 같은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물론 키 큰 사람은 엄청 많았다. 내 키가 166cm 한국에서는 어디 가서 작단 소리는 안 듣는 키인데 여자분들도 다 나보다 키가 컸다. 우리는 대인국에 온 걸리버 꼴이 되었다) 그곳엔 여유와 자유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있었던 요일이 휴일이어서 그랬는지 출근 시간이 아닌 시간에 돌아다녀서 그렇게 느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도 잠깐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즐겼다. 뉴요커가 뭐 별거랴.
하이라인에서 내려서 첼시마켓으로 향했다. 점심은 팟타이로 먹고 갔던 터라 뭘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랍스터롤을 먹어볼까 생각했다가 4만원 정도 하는 가격에 그냥 안 먹기로 했다.
'저기요, 제가 어제 먹었던 순두부찌개랑 스테이크 코스가 얼마였는데요...?' 난 생각보다도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나 보다. 놀랍게도 이곳은 뉴욕에서 가성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샌드위치는 비싸지만 steamed 랍스터(로브스터 외 복수 표준어로 채택되었다. 랍스타는 아직 아닌가 봄)는 괜찮은 가격이기에. 사실 첼시마켓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너무 피곤해서 뭐 구경한 것도 없이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만 했다. 선물을 사서 갖고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났다. 날씨가 좋을 때의 이면에는 이렇게 땀 흘리고 더위 먹은 관광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먹거나 쇼핑을 하는게 아니면 첼시마켓에서는 별로 할 것이 없다. 곧바로 베슬로 이동했다.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서나 보던 베슬을 드디어 눈으로 봤다. 큰 감흥은 없었다. 내가 갔던 때에는 내부 공사로 인해서 베슬 위쪽으로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내부 1층과 외부에서 아쉽지만 사진 한 방씩을 남겼다.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쉽게 됐다.
잠깐 구경 한 뒤 Hudson yards에 입장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The peak는 101층으로 the edge 전망대보다 1층 더 상부에 위치해 있는 초고층 레스토랑이다. 뉴욕에 가면 가봐야 하는 전망대가 몇 개 있는데 엣지가 그 중 하나이다. 빅애플 패스로 여러개 선택해서 가는 방법도 좋지만, 더 피크에서 일정량의 금액 이상 식사를 하면 무료로 엣지 전망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어차피 레스토랑 한 번 쯤 더 갈 생각이었고. 높은 곳을 좋아하는 나니까.
다만 아쉬운 점은 입구를 찾는게 쉽지 않았다는 것. 무슨 비밀의 던전 입구처럼 생겼다. 설마 저긴 아니겠지 했는데 맞았고 거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쉽기도 했지만 낭만이기도 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 그 전에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조금 늦었었다. 그래도 맛볼 수 있었다. 바자리에 착석해서 메뉴를 시켰다. 바자리의 여러 가지 술, 리큐르들과 그 뒤 통창으로 보이는 뉴욕 건물의 스카이라인이 예술적으로 배치돼 있다.
점심에 런치 메뉴는 꽤 합리적인 가격인데 저녁은 다소 비싸서 단품 메뉴 1개씩과 칵테일을 1잔씩 시켰다. 그래도 20만원 정도는 나왔을 터다. 그런데 뷰가 다 했다. 여기에 왔으면 사실 굳이 전망대를 방문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지만 어쨌든 그냥 가는 것은 아깝다 생각해서 엣지 전망대도 충분히 즐기고 갔다.
The peak의 맛은? 그냥저냥이었다. 가격에 비해서는 아쉬울 정도로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음식점의 본질은 음식의 맛이겠지만 그 외의 뷰, 플레이팅, 서비스 모든 것이 완벽했기에 흡족하게 흐린 눈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세상은 가끔은 날카롭게 볼 때보다 눈에 힘을 풀고 편하게 바라볼 때 더 아름답다. 뉴욕 야경뷰가 예쁠 거 같아서 조금 더 어두웠을 때 왔어도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늦게 왔으면 또 이 예쁜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겠지? 모든 것이 다 완벽한 선택지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기회비용을 고려하며 선택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설레는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이것이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