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사람

by 세현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여전히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삶이 버겁고 마음이 흔들릴 때
내가 위로받고 싶어 하는 순간에 불쑥 떠오르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가장 빛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 사람과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라는 건 늘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날들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가슴을 뛰게 했던 순간, 혹은 아프게 했던 순간은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 자꾸 생각난다는 건 그만큼 그 시간이 내 삶 속에서 특별했고,
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그 사람은 내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줬다.
설레는 눈빛, 조심스러운 손끝,
그리고 아무 말 없어도 행복했던 공기.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강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정작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였다.
풋풋했고 서툴렀지만 진심이었던 시간.
사랑이 주는 달콤함을 알게 해 줬지만,
동시에 이별이란 얼마나 쓰라린지도 함께 남겨준 시간.

그리움이라는 건 결국 사람보다 시간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그때의 내가 가장 솔직했고, 빛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저려오는 건,
사실은 그 순간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 아닐까.


살면서 우리는 종종 그리움을 꺼내 위로를 받는다.
비록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일지라도,
그 기억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결국 내 인생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만큼 뜨겁게 살아낸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비록 지금은 잊힌 이름, 흐릿해진 얼굴일지라도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그 행복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그리움보다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때는 더 이상 쓰디쓴 이별이 아니라,

나의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또 하나의 선물로
조용히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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