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숙명
"도를 아십니까?" 말고,
나는 '어쩌다 1학년' 담임교사다. 26년의 교직생활 중 15년을 이 외계생명체와 함께 하게 된, 어찌 보면 행복하고 어찌 보면 박복한 나의 교직 인생.
탱탱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여덟 살 연한 살결
그러다 순간 철학자보다 더 심오하고 명쾌한 선문답을 펼치는 순수 영혼
그러나 진정 사람을 폭싹 늙어버리게 만드는 그 정신사나움
미워할 수 없는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그 사랑스런 여덟 살 아이를 두고 어찌 그리 소명의식도 없이 박복하다는 말을 하느냐고 묻지 마시길. 여덟 살 아이를 길러내신 학부모들도 나의 표현에 돌을 던지지 마시길. 그 여덟 살 아이가 복작복작 30명 가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므로. 내가 나이보다 더 폭싹 늙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이 여덟 살 외계생명체와의 15년 세월이 아주 큰 몫을 하였으므로. 좀 더 점잖게, 품위 있게, 우아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나의 숙명. 그러나 마음만은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나의 삶에 어린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니 또 행복할 수밖에.
학교에서 말고는 제발 그 쟁쟁한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내 이야기 속 어딘가에 자꾸만 아이들 이야기가 묻어나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쓰다 보니 내 삶 속에, 내 의식의 바탕에 그 쟁쟁한 목소리의 여덟 살 아이들이 항상 있었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으면 시끄러워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좋다. 시작해 보자. 나에게 외면의 노화와 내면의 젊음을 동시에 던져주었던 여덟 살 외계생명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두 가지 종류의 꿈을 갖고 사는 것.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다소 비현실적인 꿈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갖게 된 현실적인 꿈. 이 두 가지 종류의 꿈이 성격이 양극단을 달리며 상반된다면 생계수단으로써 선택한 현실적 꿈은 내 삶을 가혹하게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의 두 가지 종류의 꿈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과 닿아야 하는 일, 마음으로 닿아야 하는 일. 예민한 촉과 감성으로 공감해야 할 수 있는 일.
나의 비현실적인 꿈은 가수, 라디오 디제이, 작가였다. 너무나 정직한 성대를 가진 나는 '동요 가수'라는 가수의 영역이 없어서 가수가 될 수 없다. 주목받을 일 없는 내가 라디오 디제이가 될 수도 없었고, 작가라는 꿈은 그야말로 마음속에 환히 켜 둔 달과 같이, 존재하나 닿을 수 없는 먼 길이었다.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꿈은 제쳐둔다. 어릴 적부터 나서기 좋아하고, 잘난 척 좋아하고, 학교놀이 좋아하던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의 성향에 딱 맞고 보람도 있는 이 꿈이 결국 나의 현실적 생계유지 수단인 직업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생계수단으로써의 현실적 꿈도 나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아름다운 꿈들과 결이 비슷했으니, 나는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나는 6학년 아이들하고 말이 잘 통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야동을 봤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고백한다. 그 중 한 여자 아이선생님, 야동은 일본 야동이 최고예요라고 까지 과한 tip을 내게 전한다.
말하고 싶은 요지는 6학년 사춘기 아이들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나는 고학년 아이들과의 호흡이 좋았다는 것. 내가 그 야동 이야기를 즐겼다는 게 아니라는 것.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그 여자아이들과 야동의 폐해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 이후 아이들도 야동을 끊었다고 말하였으니. 교육적 후속 조치를 분명히 했다는 점.
그런 내가 어느 해 갑자기 1학년을 맡게 되었다. 학교를 옮겨야 했던 시기. 새 학교에 갔더니 남는 자리가 1학년 밖에 없다고. 기득권에 밀렸다. 나는 원치 않았다. 상냥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부를 자신이 없었고, 율동을 하고 노래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적도 없다. 아이를 예뻐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다른 일. 나는 그저 짓궂은 장난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사람. 어린 사촌동생도, 지인의 아이들에게도 귀엽다는 이유로 장난을 치고 결국은 울리기까지 하며 즐거워하던 나였다.
게다가 나는 좀 터프한 스타일. 3월 첫날, 6학년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박이라고만 알아둬라."라고 말하던 나였다. 나중에 아이들은 그 첫날 선생님은 조폭 같았다고 말하던.. 그런 나인데. 꼬물거리는 1학년 아이들에게 그럴 순 없지 않은가.
인생은 늘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서로 싸운다. 정말이지, 터프한 나는 이 어린 생명체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 없는 인생살이. 생계형 교사인 나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1학년 담임이 되어버렸다.
(참고사항) 대문 사진 속 여자처럼 생기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난 1학년 아이들.
그들에 대한 저의 첫인상을 소개합니다.
정말이지 1학년 담임의 첫날,
저는 점심을 먹을 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