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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친구 할래요?

반란의 시대

by 봄비

나는 맨날 이 여린 여덟 살 아이들에게 변신괴물로만 존재하는가? 그건 정녕코 아니라는 사실. 온탕과 냉탕이 있어야 사우나 아닌가. 봄비 교사의 내면에도 온탕과 냉탕은 존재한다. 여덟 살 아이들이 맨날 냉탕의 싸한 기운만 느껴야 한다면 그 얼마나 가혹한 인생인가.


장난꾸러기 짱구(가명)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냉온탕 사랑법'을 소개한다.


니가 꽈배기냐
니가 슈렉 고양이냐
어찌 그런 교태를 부리며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감히 나보고 친구 하자고!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이 아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영특하다? 잔망스럽다? 하여튼 자신이 스스로 귀여운 새끼 포유류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그 특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아는 영특한 아이다. 이 아이의 눈빛은 반짝반짝 그 이상이다. 나는 이 아이의 눈빛을 반들반들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반짝이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은 눈빛. 반짝이는 것은 그저 자기 빛을 발하는 것, 반들반들한 것은 반짝이는 그 무엇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눈빛. 우리 짱구의 눈빛은 반들반들한 욕망의 눈빛을 가지고 있다. 흡사 한 표 주십시오 하는 정치인의 눈빛, 먹이를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의 눈빛과도 닮았다!

이 아이는 공부 시간에도 영특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 더를 찾아낸다. 수업을 이끌어가다 보면 아이들의 이해를 도울 꼬마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교사의 백 마디 설명 보다 이 꼬마 선생님들이 툭 하고 말하는 한 마디가 또래 친구들에게는 더 쉽게 다가가므로. 내가 꼬마 선생님의 한 마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 짱구는 여지없이 또 그 역할을 해주는... 그런 참 영특한 아이였다.


또 이 아이는 장난을 치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귀여움을 무기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킬 줄 안다. 어느 날, 짱구는 우리 반 보물 창고에 숨겨둔 '해양생물 쫀득이 장난감'을 몰래 꺼냈다. 그리고 그 쫀득이들을 모조리 교실 천정에 붙여 버렸다. 아이들이 칭찬 쿠폰을 15개 모아야 하나 가질 수 있는 그 로망의 해양생물 쫀득이를 말이다. 내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나는 이 아이를 잡아다 눈빛으로 심문을 시작한다. 때론 소리지르는 것 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 나는 조용히 아이에게 레이저를 쏜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슈렉에 나오는 그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니가 그래서 나를 어쩔 건데? 그런 말을 하는 듯, 그 반들반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몸은 슬쩍 내 무릎 어딘가에 기대고 몸을 꼬아댄다.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나는 이 아이의 눈빛에 녹아들고 있다.


나는 이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이 아이와 척을 지는 순간 우리 반의 평화는 깨어진다.

나는 이 아이에게 잘 보이고 이 아이에게 신뢰를 얻어

내가 하는 어떤 조언이든 아이에게 스며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 이 반들반들 눈빛의 짱구가 내 손을 잡아끌며 산책을 하자고 한다. 갑자기 너 나한테 왜 이러니.. 아이의 애교가 조금 무섭다! 갑자기 그 치명적 귀여움을 발사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몸을 꽈배기처럼 꼬며, 슈렉고양이 눈빛을 발사하며)

"선생님, 나랑 친구 할래요?"


이건 어떤 의식의 흐름 속에서 나온 말일까.


참으로 똑똑하여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참으로 장난이 심하여 잔소리도 많이 들었던 이 아이! 그런데 이 아이는 나의 잔소리와 분노에 노여워하지 않고 나에게 이런 놀라운 제안을 한다. 자기랑 친구 먹자고. 나는 정말 놀랐지만 나의 표정을 감추고 아주 잠시 생각을 한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이렇게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의 수에 말린다. 나는 수업 시간 말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를 해준다고 약속했다. 아이의 도발을 받아주기로 하였다. 그래, 그럼 공부시간에는 선생님이고 쉬는 시간에만 친구 하자고 합의를 봤다. 그 이후 아이의 도발. 이제 그냥 반말이다.


"봄비야~ 나랑 놀자."

"너, 몇 살이야?"

"나 화장실 갔다와도 돼?"

"봄비야, 나 그네 좀 밀어 봐. 더 세게!"

"봄비! 메롱~"

그러나 내가 슬슬 변신하며 이제 그만 해라~ 말하면 또 그 슈렉 고양이 눈빛을 발사하며
"쉬는 시간에는 괜찮다고 해놓고.. " 몸을 배배 꼰다. 헉.



문제는 그 이후. 이노무 짱구의 도발에 우리 학교 전교생들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나는 우리 학교에 5년째 근무하며 내내 1학년을 맡았다. 그러니 현재 5학년 아이들까지 모두 내 자식들이다. 짱구의 도발을 각 학년 눈높이에 맞게 거의 전교생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도발이 가능할지를 각자 가늠하고 있었으며, 이후 각자의 수준에 맞게 도발을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들 아래의 5단계 사고의 과정을 거치며 슬그머니 도발을 시작하게 된다.


1단계 : 헉. 문화충격. 선생님한테 저러면 안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걱정스럽게 지켜보기.

2단계 : 짱구가 도발할 때 나의 대처와 반응 살피기. 혹시나 선생님이 혼내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3단계 : 짱구 외에 다른 용기 있는 친구의 도발 살펴보기. 그럴 때도 선생님이 화내지 않음을 확인하기.

4단계 : 나도 한 번 해보면 안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 갖기. 혼내지는 않더라는 믿음을 확고히 하기

5단계 : 각자의 용기와 발달단계에 맞게 조심스레 실행에 옮기기. "봄비야 메롱!"


소심한 시도가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그 후로는 거칠게 없다.


병설유치원 7세 반 아이들. 형님들의 도발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언제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귀여워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해 줬더니, 5세 유치원 어린이, 나를 가리키며 "얘가 나 때렸떠!"라고 말한다.

아침 등굣길에 "안녕하세요?" 했을 우리 예의 바른 아이들이, "봄비, 메롱" 하고 인사를 시작한다.

용감한 아이들은 내가 수업시간에 애들 괴롭히는데 쓰는 뿅망치를 가져다가 내 머리를 한 대 때리고 도망간다. 신나 죽겠다고 웃으면서.

나는 또 이럴 때 "누가 선생님 머리를!!! " 소리를 지르며 이 아이를 잡으러 가 주어야 한다. 그런데 날쌘 아이를 잡기에 나는 너무 늙었다!

이 장면을 보던, 역시 다 늙은 5학년 제자들은 "으이그, 늙었네, 늙었어." 하며 나를 놀리는데 동참한다.

최고의 소심쟁이 둘리마저도 아주아주 소심하게 "봄비, 메롱!" 이라고 슬쩍 내뱉고 도망을 간다.

나는 그럴 때, 도망가면 잡는 시늉을 꼭 해줘야 이 놀이는 끝이 난다.

반백살 나는 다 괜찮은데 요 부분이 곤란하다. 잡으러 다녀줘야 끝나는 이 놀이가.





나와 아이들의 격의 없는 모습을 본 어른들.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무언가가 있다. 어이없지만 뭐라 말하지 못하는 듯한 그 표정. 경계가 없음을 걱정하는 것이다.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고!"

잘 때는 "자고!"

먹을 때는 "먹고!"

똥쌀때는 "똥싸고!" (요 구호는 마지막에 꼭 넣어야 함.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다.)


놀 때 신나게 노는 것도 아이들에게 배움 아닌가. 아이들과 나는 이렇게 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약속이다. 놀때는 놀기로 약속을 하였고, 놀때 친구가 되어준다고 약속을 하였던 것 뿐이다. 그러니 친구먹기로 한 선생님과 놀 때도 살벌하게 즐겁게 놀아야 하는 것이고, 공부시간에는 또 진지하게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로 아이들은 우리의 협약대로 수업시간에는 그 누구도 도발하지 않고 여덟 살답지 않은 진지함으로 공부를 한다. 이러면 된 것 아닌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또 그것을 해낸다. 다른 어른에게는 장난을 치지 않는 우리 어린이들. 이 여덟 살 아이들은 이 장난을 나 외에 다른 어떤 선생님들과도 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 센스쟁이들. 이 아이들은 자기들과 놀아주고 싶은 즈그들 선생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늙은 선생님과 같이 놀아줄 뿐이다. 진정, 그들이 나와 놀아주는 것뿐이다.


해야 할 일들은 대체로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교사는 친절한 얼굴로만 살 수 없다. 그렇다고 무섭기만 하고, 잔소리만 하는 선생님을 누가 좋아하고 따를까. 잘못한 일, 노력할 일들에 대해 엄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또 하나의 전략을 취할 수밖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을. 나는 그래서 나를 내려놓았음을 어른들이 이해해주길 기대해본다.


그런 나에게 친구 하기를 제안한 당돌한 녀석. 그리고 그 녀석의 용기가 저 변신괴물에게 먹히는 것을 본 나의 새끼들이 나에게 일으키는 유쾌한 반란! 나는 반백살 나이에 반들반들 짱구 덕분에 여덟 살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될 수밖에 없었다.


되고 나니 또 행복하다!

회춘하는 느낌이랄까?



못다 한 이야기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나. 따끔하게 가르치려고 때로 변신괴물이 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못 본 우리 교감선생님은 나의 경계 없음을 걱정하신다. 쉽게 말하자면 아이들 버릇 나쁘게 키우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여덟 살 아이들도 알 것은 안다. 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장난을 치지 않으며, 나에게도 수업 시간에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 안다. 선생님이 자기들을 사랑해서 친구가 되어 준다는 것을.

또 친구가 되어 준 선생님이 따끔하게 혼을 내어도 아이들은 알아준다. 선생님 마음을.

우리는 친구니까.



# 이어질 6화 이야기, <니가 세종대왕이냐! >

한글을 배우는 건 1학년 최고의 학습 목표


우리는 세종대왕의 후예

외우지 않고도

발음만 하면 알 수 있는

한글의 비밀을 탐구하는

우리는 한글대장!



#1학년 #초등학생 #반란 #도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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