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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갈 때 우리는

화해와 사랑의 인사를 나누며

by 봄비

나는 참 매사에 충실한 사람. 내가 지은 나의 별명, 변신괴물의 참모습에도 나는 충실하다. 그 선생에 그 제자들. 우리 아이들도 참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다. 어쩌면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변신하게 만드시는지. 그리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날 현실자각타임이 시작되었다.

이 교실을 지배하는 자
내 마음을 지배하는 자
나의 성대까지도 지배하는 자
오늘도 나는 3단 고음을 내지른다!
너희들은 해내고야 만다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유난히도 힘들었던 하루, 아이들과 전쟁을 치른 느낌이 드는 어느 날. 나는 체급도 나이도 무시하고 아이들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아이랑 싸웠다!


#1. 트랄라레로 트랄랄라와의 싸움

ADHD가 의심되는 한 아이. 집중을 할 수 없으니 학습도 어렵다.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와도 그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글자를 따라 쓰는 것도 어렵다. 그날 배움의 핵심을 짚는 나의 발문에 그 아이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것. 그 아이의 학습은 또 제쳐두고,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의 학습도 어려워진다.


유튜브에 노출된 시간이 많은 아이. 나로선 알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주문을 수업 시간에도 끊임없이 외운다. 하도 하도 외워대서 검색을 해본다. 트랄라레로 트랄랄라. <AI가 생성한 기괴한 상어 캐릭터의 이름이자, 해당 캐릭터를 활용한 밈의 이름. 기괴한 이미지와 음성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이라고 한다. 수업시간에 아이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워대면 다른 아이들은 가만히 있을까. 킥킥거리며 웃는 아이, 자기가 본 유튜브 영상 이야기로 이어가는 아이, 같이 주문을 외우는 아이. 1학년 아이들이, 1학년 교실이 다 그렇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배워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다. 작은 사회로 첫발을 내디딘 아이들. 절대로, 그 부분은 물러설 수 없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마지노선.


조언, 부탁, 권유, 지도, 잔소리.... 최종단계는 변신괴물!


#2. 여덟 살 민원인들의 고충 해결

하루에도 수십 번, 내용은 달라도 결은 비슷한 쏟아지는 민원들! 여덟 살 인생에 뭐가 그리 억울한 일들이 많으신지. 친구가 자기를 때렸다는 민원. 하지만 친구는 때린 적 없다고 항변한다. 둘은 팽팽하다. 이럴 때 증인이 없으면 누군가는 억울하다. 여덟 살 증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상황을 진술한다. 가만히 증언들을 들어보면 지나가다 부딪힌 상황.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을 건드리게 되면 미안함을 표현해야 한다고, 그리고 실수로 한 행동은 또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어쩌고저쩌고... 민원 해결에 수업 시간을 다 보낸다.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이런 민원들을 다 처리하고 있자면 우리는 공부는 언제 하는가. 아이고.


#3. 아이가 없어졌다!

연한 살결로 부대끼며 인사하는 기분 좋은 아침 시간. 조잘조잘 종알종알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으신지 아침에 뭘 먹고 왔는지까지 다 이야기를 듣고 수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 분명 모두 다 왔는데 한 명이 없다. 얘들아, 짱구 어디 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분명 아침에 인사도 했고 가방도 있다. 없어진 아이를 찾으러 나가려는 나를 보더니 여덟 살 군단이 다들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부도 하기 싫은 찰나에 친구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즐거우실까. 자기들도 찾으러 가겠다고. 아니아니, 제발. 너희들까지 다 어디론가 사라지면 선생님 혼자 너희들을 어떻게 찾아. 겨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옆반 선생님께 잠시 아이들을 부탁한다.


평소 짱구는 아침마다 풀밭에서 곤충 구경을 하곤 했으니 나는 또 구석구석 풀밭에 대고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른다. 없다.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볼일보다 사건이 터졌나? 화장실에 가봐도 아이는 없다. 도서실, 돌봄교실, 텃밭...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이곳저곳 뒤져도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럭저럭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노무 짱구가 어디서 슬그머니 나타난다! 놀랐던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교차하며 나는 또 변신을 한다. "선생님한테 말도 안 하고 어디를 갔던 거야!!!!!!!!" 아이는 내 목소리에 놀라 눈물을 찔끔 흘린다. 똥 싸러 갔었다고. 화장실을 다 찾아봤는데도 너는 없었다고 말하자 아이는 똥냄새날까 봐 저기 저 구석 유치원 화장실에 갔었다고 말한다. 아이고아이고.... 너는 무슨 똥을 그리 오래 누냐고...


현실자각타임


이렇게 아이들과의 하루를 마무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싸움도 오래 끌면 탈이 나지 않는가. 이런 일, 저런 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우리 교실. 그리고 매번 또 욱하는 나. 나와 아이들과의 싸움도 그날그날 감정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 갈 때 특별한 인사를 하기로 한다.


1번 인사는 따뜻한 포옹.

2번 인사는 하이파이브.

3번 인사는 악수.

4번 인사는 뽀뽀.


나는 1번 인사를 좋아한다. 인사 방법은 아이들 보고 정하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1번 인사를 강요하곤 한다. 시크한 남자아이는 하이파이브를 하자고도 하지만 나는 굳이 아이를 포옹을 권한다. 따뜻한 포옹을 하며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서로 꼭 안아 체온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아이의 귀에 소곤소곤 귓속말을 한다.


선생님은 너를 제일 사랑해! (다른 아이에게도 너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함)

오늘 용기 내서 발표한 거 정말 멋졌어. 내일도 해볼 거지?

빵꾸똥꾸야! 집중해서 공부해 보니 어때? 놀 시간도 생기고 좋지? 내일도 해볼 거지?

오늘 선생님이 큰소리로 말해서 속상했어? 니가 사라져서 놀라서 그랬어. 화나서 그런 건 아니야. 미안해.

내일은 친구한테 미운말 하지 않기야. 약속! 오늘 김치 먹어보니 어땠어? 괜찮았지? 내일도 도전해 보자!


여름이면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땀범벅이 되어 교실로 들어온다. 아이구, 이 땀쟁이! 하고 포옹을 하려다 피하면 일부러 굳이 꽉 끌어안으며 제 땀을 내 옷에 다 닦아낸다. 씨익~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나는 질색을 하고 도망을 간다. 아이는 그럼 '땀 난 날은 하이파이브로 하자'며 쿨하게 제안한다. 일부러 손을 높이 들면 점프하며 손바닥을 마주치려고 신이 난다. 그렇게 인사하며 서로 또 웃으며 헤어진다.


가끔은 또 뽀뽀를 하자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또 배운 게 있지 않는가. 우리는 아주 가끔 너무 사이가 좋을 때 볼키스를 하기도 한다.





집에 갈 때 우리는.

조그만 심장이 콩콩 뛰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선생님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선생님도 아이를 꼭 안아주지만

아이도 선생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아이의 손길에 나도 위로를 받는다.

그 조그만 손으로 나를 토닥거려 주다니.

그렇게 여덟 살 신나는 하루를 보낸다.

나도 그렇게 안도하며 하루를 보낸다.


못다 한 이야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같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를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일,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아이를 딱딱한 의자에 앉혀두어야 하는 일, 먹기 싫은 음식도 한 번쯤 도전해 보도록 설득하는 일. 나날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 교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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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게 안아주는 나의 인사로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여주기를.



# 이어질 5화 이야기, <나랑 친구 할래요?>


니가 꽈배기냐


니가 슈렉 고양이냐


어찌 그런 교태를 부리며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감히 나보고 친구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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