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교사의 영업전략
내가 스스로 지은 내 별명, 변신괴물. 아이들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할까. 아니, 사실을 고백한다. 언젠가 변신하고야 말 나의 모습에 대한 합리화를 위하여 만들어낸 별명이라는 것을. 나는 나의 세계 속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변신괴물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였다.
너만 할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
너만 초능력 있냐? 나도 변신해 낸다!
나는 3단 고음도 할 수 있다,
너보다 더 무섭게!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아이들의 학교 생활의 시작점, 입학식날. 아이들의 든든한 편이 되어줄 가족들이 아이 손을 잡고 모이는 날. 어려운 자리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 시절은 이미 저물었다. 교사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자괴감이 드는 시절을 살고 있다. 입학식에 모인 저 많은 사람들은 내 편이 되어줄까? 아이를 같이 키우려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줄, 우리는 같은 편일까?
엄마가 어린 딸에게 묻는다. 오늘 학교에서 발표했니? 아니, 선생님이 나는 안 시켜줘서 못했어. 아이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툭 내던지듯이 이렇게 말한다. 너네 선생님 이상한 사람이네.
오래전 목욕탕에서 들은 어느 모녀의 대화였다. 이 목욕탕 모녀의 이야기는 내내 내 마음에 남는다. 나의 학부모도 나를 이렇게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 모든 사람들은 매 순간순간을 선택을 하며 산다. 그러나 유난히도 교사의 선택의 결과는 중요하고도 무겁다.
나도 수업 중 질문을 던진다. 난리난리 이런 난리가. 자기를 먼저 봐달라고 말랑말랑한 손을 높이 들고 반짝거리는 많은 아이들. 우와, 진짜 저 많은 손 중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나. 상처받는 아이 없도록 고민을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아이들은 손을 왜 드는지 모르겠다. 손은 폼으로 들고 엉덩이는 의자 위에서 트램펄린을 타고 입으로는 제각각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다. 어떤 아이는 흥분하여 내 앞으로 나왔다. 이 발표 시간의 난리법석. 상상을 해보시라.
그런데 이 와중에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아이가 모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 많은 이야기 중 소심하게 손 든 그 아이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꺼내어 주고 싶다. 아이는 한 번의 용기로 인해 조금씩 자신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음에도 이 아이에게 또 기회를 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능력이 출중하시니. 조용히 좀, 입 좀 다물어 달라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니.
나는 잘못한 것일까?
늘 나만 우선인 아이에게 발표 기회의 유보 또는 양보가 또 하나의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소심한 아이에게 발표의 기회는 한 걸음 내딛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자신감 넘치는 아이에게도 공부가 되겠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렇게 발표 한 번으로도 딜레마에 빠지는 교실 속에서 교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교사의 선택은 또 판단의 도마 위에 오른다. 딜레마 천국인 교실 속에서 교사는 너무나 외롭다.
입학식에 모인 저 많은 학부모님들은 나의 딜레마를 이해해 주실까? 그래서 나는 영업 전략을 고민한다. 이 외계생명체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동안 나의 악마적 역할에 대한 면죄부를 만들기 위하여 처절한 영업을 시작한다.
공교육 교사는 사실 영업을 뛸 필요는 없다. 학원과는 달리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동사무소에서 알아서 고객님들을 유치해 주니까. 하지만 나는 안주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만 가능한 무언가, 그리고 우리 교실에서만 가능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 거기에 하나 더. 나의 진심이 오해받길 원하지 않는 마음. 입학식은 절호의 찬스. 나는 나만의 영업방침 대방출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업방침의 가장 중요한 기조는 "변신괴물"에 대한 합리화라는 사실.
"보석 같은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는 제가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엄마처럼 돌보겠다는 이 선언은 정말로, 진정 나의 진심이 담긴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에서의 보호자는 나.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이 말 뒤에 사실 숨어있는 간악한 마음 한 10%도 포함되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혼낼 때가 있지 않냐고!! 하여튼 둘러둘러 듣기 좋은 말이 좋지 않겠나. 아이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다. 변신괴물이 될 수 있는 나를 위해 밑장 깔기의 수법을 쓰는 것. 변신괴물의 합리화를 위한 첫 번째 물밑작업으로 나는 학교에서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겠다는 선언을 한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입학을 했다고 걱정할 학부모를 안심시켜야 한다. 한 학급 안에서도 극명하게 다른 초기문해력의 수준. 어떤 아이는 책을 줄줄 읽고, 어떤 아이는 낫 놓고 기역도 모르는 현실.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므로 재미있는 탐구학습을 개발하였다고 소개를 하며. 사실 세종대왕이 다 해놓은 일에, 나만의 방식으로 MSG를 첨가한 것뿐이지만. 외우지 않고도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나만의 레시피, 나의 수업 전략을 자랑해야 한다. 효과는 끝짱이라고! 나는 한글 가르치는 재미에 1학년을 못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기역도 모르던 당신의 아이가 꼬마작가가 되어있을 그날을 상상해 보시라고.
어쨌든 또 변신괴물 소개를 하기 위한 두 번째 물밑작업을 시도한다. 나는 내가 계발한 <한글의 비밀 탐구학습>을 입학식날 맛보기로 보여준다. 자모음의 소릿값을 이해하며 한글공부를 하게 될 아이들. 그러니 <ㅂ ㅅ ㄱ ㅁ> 초성퀴즈를 통해 변신괴물이라는 실체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변신괴물에 대한 무한 합리화 작업이 남았다.
난 진정성이 있다면 같이 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아직은 낭만 교사'다. 숨기려 하지 않기로 했다. 교사도 사람이라는 것을. 상냥하고 친절하기만 할 수 없음을 드러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 아이의 뒷배가 되어줄 학부모들에게도.
선생님 별명은 변신괴물이야. 아이들은 환호한다. 학부모에게도 저는 변신괴물입니다라고 당당히 소개한다. 나를 변신하게 만드는 건 누구일까? 아이들은 똑똑하다. 자기들이라고 대답을 한다. 내 별명이 이 냉엄한 판단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의 합리화 전략이라고 했듯이, 나를 변신시키는 건 당신들의 아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지구별에서의 첫 시작을 하는 이 자리. 모두가 모인 이 자리에서 내가 변신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생생히 연기한다. 선생님은 차분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알려줄 거야. 너희들은 스펀지가 물을 쪽 빨아들이듯 선생님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1. 선생님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야.
복도에서 뛰면 위험하다고 친절히 알려줄 거야. 복도에서 뛰다가 어느 형아가 머리에서 피가 났거든. 다행히 큰 일은 없었지만 항상 아무 일 없이 지나가지 않거든.
#2. 아직도 선생님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야.
그런데 아직도 복도에서 뛰는 짱구를 봤어. 선생님은 또 조용히 일러주겠지?
(웃음기는 살짝 거두며) 짱구야, 위험하다고 했잖아.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3. 이제 선생님은 변신을 준비할지도 몰라.
그런데도 짱구는 계속해서 뛰네? 선생님은 조금씩 변신 준비를 시작할 거야.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짱구야! 위험하다고 해! 찌!
#4. 선생님은 드디어 변신한단다!
이 짱구는 습관을 고치지 않아. 그럼 이제 선생님은 변신한단다.
짱구야! (복식호흡으로, 벼락같은 목소리를 내지르며) 안된다고!!!!!!! 너 이리 와!!!! 등등등
***화룡점정. #4 연기할 땐 아랫배에 힘을 주고 복식호흡을 통해 나오는 벼락같은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
그 많은 학부모 앞에서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생활할 것이라는 선언을 한다. 젊을 때는 부끄러워서 이런 연기가 힘들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또 이 나이에 젊은 학부모들 앞에서 이런 연기를 펼쳐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젊을 때나 지금이나 이 변신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학부모 앞에서 리얼하게 연기한다. 어쩌겠나. 목구멍이 포도청. 쏟아지는 민원에 대처하며 외계생명체와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인 것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이후 펼쳐질 자신들의 운명도 모르고. 다행히 학부모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무언의 동의. 네가 변신해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겠다는 미소와 끄덕임. 이걸 얻기 위해 나는 이 나이에도 변신괴물 연기를 한다는 것.
어찌 보면 입학식이라기보다 변신괴물의 사유를 선언하는 선언식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이 첫 만남. 어쨌든 해마다 변신괴물 이야기로 나의 영업 전략을 소개하곤 했다. 앞으로 펼쳐질 많은 사건사고에 대비하는 나의 철두철미한 영업 전략!
우리 아이 혼냈다고 속상하신 학부모님!
그렇다면 우리 아이 왜 예뻐하냐고, 왜 안아줬냐고는 안 물어보실 건가요?
엄마도 아이를 혼내야 할 때도 있듯이 교사도 학교에서는 이 아이들의 엄마라 그런가 봅니다.
교사의 선택에 대한 판단을 너무 성급하게 내리지 마시길.
한 박자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려 봅니다.
이상 소심한 변신괴물 교사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전쟁과 같은 하루가 끝나고
오늘도 또 변신을 하고야 말았다!
잔소리 대마왕이었다!
현실자각 타임.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싶은 마음
집에 갈 때 우리는
화해를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