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1학년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민을 한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도 애잔한 어조로 풀어나갈 것인지, 유머를 곁들인 생동감있는 어조로 써나갈지 고민을 하듯이.
타고난 고음의 탄력있는 발성법
똑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 집념
나의 火를 모조리 꼭꼭 씹어 먹어내는 그 소화력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나는 근엄한 태도를 택했다. 1학년을 함께 맡은 옆반 선배님들의 조언을 염두에 두고. 쉽게 보이면 선생님을 찜쪄먹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조언. 웃음기를 거두고 인사를 시작하였고 3월 아이들의 입학 초기 적응을 위한 수업을 이어갔다. 나의 근엄하고 웃음기 없는 태도에 아이들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모든 순간이 배움이다. 색연필을 서랍에 넣어두는 것, 빨간색 색연필을 꺼내 쓰고는 다시 넣는 일, 색연필을 넣을 땐 돌돌 돌려 심을 쏘옥 넣어야 한다는 사실. 그 후에 주황색 색연필을 꺼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무지개를 색칠한 뒤 모든 색연필이 교실 바닥에 뒤섞여 난리가 난다는 사실. 하나하나 아이들과 기본적 학습 약속을 만들며 수업을 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정말 이상했다.
아이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언가 소란스럽다.
한명 한명 아이들은 색연필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바닥에는 색연필이 수두룩 굴러다닌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순간이동을 해낸다!
분명 방금까지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저기 제 친구 옆에 서 있다.
그러다 여고괴담 귀신처럼 내 옆에도 있다.
게다가 복화술까지 하는 것 같다.
모두 나를 보고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데 교실은 시끄럽다.
이 소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나는 근엄함에 한 술 더 떠 소리를 질러본다.
아이들은 정확히 한 3초 놀란 표정을 짓고는
다시 낄낄거리고 웃는다.
나는 장난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내게 다가올까 두렵다
나는 분명 선을 긋는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이렇게 곁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느새 또 내 옆에 와서 부대낀다.
왜 이러는 걸까요. (개그맨 황현희의 어조로)
나는 아주 쉽고 간결한 한 문장을 건낸다. 쉬는 시간이니까 화장실 갔다 와도 된다고. 하지만 이 문장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문장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놀리는 것인가.
한 열명은 다시 묻는다, 화장실 갔다 와도 되냐고.
한 다섯명은 자기는 안마려우니 안가도 되냐고 묻는다.
또 한 다섯명은 실컷 놀다가 쉬는 시간이 끝난 뒤 화장실을 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리고 한 두 세명 정도.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와서 나를 기다려 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두 세명은 아예 내 말을 못들었다.
누군가 웃자고 만든 이야기일까. 실제 있었던 이야기일까. 끊임없이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 어느 교사는 30CM 자의 앞면에는 <알았어>, 뒷면에는 <들어가>라고 적어놓았다고. 수십명 아이들이 계속해서 나오면 그 교사는 자의 앞면 <알았어>를 보여준 뒤, 뒷면 <들어가>를 보여줬다고. 분명 실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또 교사에 대한 불신을 낳을지도 모르니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반복되는 질문과 말들에 나처럼 한계를 느끼고 있는 1학년 담임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 아닐까. 하여튼 그렇다.
나는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조용히 눈을 감고 멍때리기 30분은 해야했다. 쟁쟁한 그 목소리, 그렇게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 배고플텐데. 앵무새 한 25마리가 사는 듯 똑같이 불러대는 선생님! 소리. 원숭이들이 숲 속에서 나뭇가지들을 타고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옮겨가듯이 순식간에 여기 저기로 순간이동을 하는 그 정신사나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데도 색연필, 연필, 지우개, 조그만 장난감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초능력 대방출 의 난해한 장면들. 그 모든 것을 소화시킬 시간이 30분 정도는 필요했다.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아니, 내일은
괜찮을 것이다...
1학년 아이들의 첫 인상. 원숭이 새끼? 아니 이렇게 말하니 욕같이 들린다. 새끼 원숭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나의 1학년 교실엔 새끼 원숭이들이 25마리 살고 있었다. 아이들을 욕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오해는 금물. 나는 결국 이 새끼 원숭이들에게 적응이 되고, 이 새끼 원숭이들을 사랑하게 되어 자진하여 15년째 1학년 담임을 하고 있으니 나의 진심이 증명되지 않을까.
새끼 원숭이든, 초능력 발휘하는 외계생명체이든.
우리는 이렇게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꼭 이 아이들을 이겨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기껏해야 너희 여덟살을 내가 못 이기겠니?
체급도 나이도 이용하여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그런데 꼭 그런 날은 내가 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던 어느 날.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다.
이 아이들을 이겨먹을 힘이 없었다.
스위치가 나간 사람처럼 잠시 멈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내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눈치없는 옆 짝꿍을 소리질러 부르며 진정을 시킨다.
어라, 이건 또 뭐지?
이 놀라운 활동력을 가진 생명체들도 눈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아이들 마음으로 슬며시 스며들더라는 것.
멈춤이 때론 약이라는 것.
외계생명체!
새끼 원숭이!
날아다니는 탱탱볼!
이들이 지구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너희가 외계생명체라면
나는 변신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