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통지표 맛을 알아?
미안하다 얘들아, 선생님의 능력은 여기까진가보다. 변신괴물 전략도 너희들의 애교와 귀여움 속에 맥을 잃고 힘을 발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너희들을 어떻게 키워야할까. 심히 고민이 되는구나. 그리하여 특단의 대책을, 비겁하고 간악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벼락같이 소리질러 혼냈다
언제 혼났냐는 듯
내 무릎위로 엉덩이 들이미는 이 어린 생명체를
어찌 미워할 수 있나요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오늘도 외계행성 1학년 교실에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친구가 자기에게 침을 뱉었다는 민원이 접수된다. 헉. 침을 도대체 왜 뱉는걸까? 자기에게 침을 튀기며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다고, 그래서 침을 뱉어줬다고 한다. 침을 튀긴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일단 민원은 민원.
먹기 싫어도 한 번씩은 먹어보기로 했던 우리반 급식 약속. 급식실 조리실무사님의 민원이 접수된다. 우리반 짱구의 식탁 밑에는 항상 음식이 떨어져 있다고. 긴급 조사에 들어갔다. 실수로 떨어뜨린게 아니라 먹기 싫은 음식을 바닥에 버린 것. 우째 이런 일이.
또 편식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한 아이. 계란, 두부, 버섯, 우유, 콩... 아무것도 먹지 않는 아이를 방치하고 싶진 않다. 학부모와의 긴밀한 상담을 통해 아이의 습관을 고쳐보기로 한다. 한 번씩은 먹어보기! 우리반 급식 약속을 자꾸만 상기시키며 아이와 실랑이를 한다. 요즘은 이런 의욕도 내비치기 어려운 세상. 그래도 선을 지켜가며 아이를 꼬시는데 점심시간이 홀랑 다 가버린다.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또 다른 아이. 정해진 시간에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해야하는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한다. 지금 그 아이의 집에는 아무도 없다. 물론 그런 상황을 떠나서라도 울며 떼쓴다고 집에 보낼 수는 없다. 이 여덟 살 아이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가방을 메고 나가는 아이를 잡는 것도 힘에 부친다.
친구가 자기 목을 졸랐다는 제보가 접수된다. 목을 조르면 죽는다는 것을 벌써 아는 것인가? 장난감을 서로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하다가 장난감을 뺐기고 분한 마음에 목을 졸랐다고 한다.
그 어떤 훈계보다 강력하고, 그 어떤 회유보다 웃긴 전략! 그것이 떠올랐다.
나는 여덟 살 외계생명체에게 통지표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주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PC 화면을 TV로 보여준다. 대체 이게 뭔지 아이들이 어찌 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하기로 한다. 그만큼 절박하였으니. 그러니 색다른 대책이 필요했음을.
"○○교육청-학교생활기록부-학교생활통지표.. " 이런 알 수 없는 것들을 화면에 띄워 보여주며 열변을 토한다. 요 콩알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너희들, 통지표가 뭔지 아냐?" 이러면서..
선생님은 너희들을 멋지고 예쁘고 건강하게 키워주는 사람이야. 상냥하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실수해도 또 알려주고 기다려줄거야. 그런데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얘기를 해도 미운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여기(화면 속 통지표 내용을 기록하는 칸에)에 어쩔 수 없이 적게 될거야. 실제로 한 아이의 이름 옆 빈칸에 나는 중얼거리며 내용을 기록한다. "이 어린이는 친구가 어질러놓은 장난감도 정리해주는 착한 어린이입니다. " 선생님이 쓴 거 봤지? 저장! 누른다!!!! 이래가면서.
#. 이 어린이는 친구의 목을 아프게하는 어린이입니다. 사장님, 이 어린이가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사장님 목도 아프게 할지도 몰라요. 뽑아주시면 안될 것 같아요.
#. 이 어린이는 공부하기 싫다고 학교를 뛰쳐나가는 어린이입니다. 사장님, 한글도 모르는 어린이가 매일 울면서 회사를 뛰쳐나갈 것입니다. 이 어린이는 뽑아주시면 안됩니다.
#. 이 어린이는 친구에게 침을 뱉는 어린이입니다. 아무리 얘기하도 고치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사장님께 그러면 어쩌시겠어요.
선생님은 여러 차례 친절히 알려줄거야. 너희들이 모두 멋지게 자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줄거야. 하지만 선생님 마음도 몰라주고 제멋대로 하는 행동은 이 곳에 적게 될거야. 그리고 한 번 적으면 고칠 수 없단다. 나중에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회사를 가려고 할 때 사장님이 통지표를 가져오라고 하실거야.
그런데 둘리의 통지표에는 친구들에게 예쁜 말을 하고 항상 양보하는 어린이입니다. 라고 적혀있고, 짱구의 통지표에는 장난감 때문에 친구를 괴롭히는 어린이입니다. 라고 적혀있어. 사장님은 누구를 뽑아주겠니?
아마도 작은 심장이 콩콩콩 뛰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철학자가 되는 순간의 그 눈동자, 또 그 눈동자를 만들며.
옅은 한숨을 내쉬며, 각자의 통지표를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이 자세를 고쳐 앉는다. 사실 수업 시간에도 한 쪽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눕다시피 앉아 있는 아이도 있다. 그 아이도 갑자기 허리를 펴고 다리를 모으며 반듯하게 자세를 고쳐 앉는다.
조심스럽게, 가슴을 졸여가며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저는 뭐라고 적었어요? 아~ 우리 둘리는 한글 공부를 할 때 눈을 반짝이며 탐정처럼 비밀을 잘 찾고, 어떤 공부를 해도 재밌다고 말하며 열심히 하는 어린이라고 적었지!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먹기 싫은 음식을 바닥에 버리던 그 아이가 질문을 한다. 그럼 저는요? 아~ 짱구는 건강하라고 정성껏 만들어주신 음식을 바닥에 버리는 어린이라고.... 아직 안 적었어. 선생님이 여러번 알려주고 기다려준다고 했잖아. 정훈이는 이제 그런 행동을 안할거라고 믿고 있어. 아직은 안 적었지만 자꾸만 선생님 몰래 그런 행동을 하면 나중에는 적게 되겠지. 이 아이도 안도하는 한숨을 쉰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이게 과연 교육적이냐 맹공격을 하실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여덟 살 외계생명체, 지구별 적응기> 이 브런치북에 글을 올릴 때 나날이 불안에 떤다. 교실은 나날이 딜레마 천국이고, 교사의 선택은 나날이 판단의 도마위에 오른다는 사실. 게다가 나는 이러한 일상들을 널리 글로 옮기고 있으니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러나 내가 항변하고 싶은 것은 이것. 진정성이다. 두려움에 떨게하려는 것이 아닌, 아이들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 시도한 '귀여운 교육적 시도'임을. 아이들의 마음의 변화를 이끌고 싶은 나의 진정성은 누가뭐라해도 순도 100%이다. 나는 학부모들에게도 통지표 이야기를 솔직히 공개한다. 학부모들도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시는 듯 항상 웃음과 끄덕임으로 신뢰를 보태어주신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도 통지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고!
잘 때는 자고!
먹을 때는 먹고!
똥쌀 때는 똥싸고!
매일 아이들과 이런 구호를 외치며 생활하는 중.
급식시간에 밥은 안 먹고 내내 음식가지고 장난만 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 이 어린이는.... " 까지만 읊어준다. 아이는 아이잉 볼멘소리를 하며 "안돼요. 먹을게요."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씩씩하게 먹어치운다. 장난감을 온 교실에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날, 수업을 시작하며 빨리 장난감을 치우자고 재촉한다. 다들 부지런히 장난감을 치우지만 한 아이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동참하지 않는다. 나는 또 다가가 또 "이 어린이는... "까지만 읊어준다. 아이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치울거에요. " 재빨리 태세전환이 이루어진다.
유치하고 치졸한 전략일지라도 나는 이 통지표로 인해 숨을 쉬게 되었다.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써먹을걸 그랬다. 나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어린이는... "을 읊어대던 어느 날. 아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이 선생님은 맨날 우리한테 장난을 쳐서 애들을 울리는 선생님입니다. " 다른 아이도 신이 나서 동참한다. " 이 선생님은 우리보고는 밥 다 먹으라고 하면서 맨날 밥을 남기는 선생님입니다. "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나처럼 " 이 선생님은... " 요기까지 읊는다. 여덟 살 아이들이 반백 살 나를 놀리며 도망다닌다.
나는 이런 일상이 참 행복하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우리 아부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는 아들(사투리)하고 놀면서 월급을 받네!"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있다.
"우리는 서로 통지표를 주고 받으며 함깨 자라고 있습니다, 아부지!"
통지표라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우리 여덟 살 아이들. 여름방학식날 통지표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1학년 아이들에게 뭘 그리 적나라한 평가 잣대를 들이댔겠는가. 그저 노력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한 아이들의 생활통지표. 이제 입학하고 한 학기 지났으니 글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통지표를 들여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너무나 귀엽고도 기특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선생님도 고쳐야할 습관이 있다고.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때문에 선생님은 허리가 아프다고. 세살 버릇 여든간다! 속담을 이야기하며 아직 말랑말랑한 너희들은 지금부터 예쁜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고. 나는 또 아이들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꼬은 다리를 풀으라는 무언의 지시를 한다. 어떤 아이는 내 다리 한 짝을 내려서 가지런하게 풀어놓으며 말한다. 세살 버릇 여든간대매요!
내가 했던 말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는 이 장면. 그래, 이 선생님은.. 오늘도 또 아이에게 배운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어 나타난다. 행동은 습관으로 고착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은 우리의 삶을 만든다는 사실.
이 어린이도, 이 선생님도 함께 마음에 담고 살면 좋겠구나.
아이들에게 통지표 받아보신 분!
저는 통지표 받는 선생님입니다.
"이 어린이는..."이라는 말의 매직을 믿고
너무 아이들에게 까불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지요.
"이 선생님은... "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