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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거울삼아 자라는 아이들

배움의 전이, 급식시간에 우리는...

by 봄비

글자를 그림처럼 외우면 배움의 전이가 일어나기 어렵다. 발음의 원리를 공부하고 나면 생전 읽어보지도, 써보지도 않은 글자도 쓰고 읽을 수 있다. <ㅗ>와 <ㅛ>라는 입모양짝꿍 모음을 배운다. 입모양은 같지만 소리가 조금 다른 두 모음. <ㅛ>는 <이+오> 두 모음이 합쳐진 것 처럼 들리지 않니? 아이들은 쉽게 이해를 한다. 나는 <조미료>라는 글자를 써보라고 받아쓰기 문제를 불러준다. 조미료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조미료>라는 글자를 쓸 수 있다. 이후 아이들은 <뉴스>, <유튜브>, <며느리>란 낱말도 스스로 쓸 수 있게 된다.


배움의 전이는 서로서로의 관계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묻곤 한다.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입모양 짝꿍’이 되어주고 있을까 하고.


아이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친구를 보며
형님들을 보며
선생님을 보며
느끼고 생각하고 변화한다
이렇게 자란다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배움의 전이를 강조하는 나는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나를 가지고 열의 효과를 내고 싶어하니 말이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아 키웠더라면 그 아이는 엄마의 욕심에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욕심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전해지고야 만다. 어릴적부터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은 급식시간에도 이어진다.


우리 몸 속에는 군인아저씨가 있어.
나쁜 병균이 몸에 들어오면 그 군인아저씨들이 병균을 물리쳐주는거야.
나물도, 김치도, 버섯도 먹어야 군인아저씨가 살 수 있어.
그래서 먹기 싫어도 한번씩은 먹어보는거야

나는 아이들을 이렇게 설득한다. 몸 속에 군인아저씨를 키우려면 먹기 싫은 음식에도 도전해보아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반 급식 약속은 "한번씩은 먹어보기"이다.


여덟 살 지원군들의 활약상


버섯의 식감은 어린 나도 싫었다. 우리 엄마는 속은 따뜻하지만 조금은 무서운 엄마였다. 버섯을 안먹겠다고 징징거리는 나에게 눈만 그저 크게 뜨는 우리 엄마. 엄마보다 더 미운 우리 오빠는 옆에서 동생을 꼬신다. 버섯을 입에 넣고 눈을 감아보라고. 가만히 씹으면 소고기 맛이 난다면서. 나는 눈을 크게 뜨는 엄마와 거짓부렁을 하는 오빠 덕에 버섯을 먹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아주 좋은 교육의 자료가 된다. 나의 오빠가 했던 그 거짓부렁을 나는 아이들에게도 시도해보았다. 버섯 반찬이 나오던 어느 날, 편식쟁이 주성이에게 우리반 급식 약속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 선생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순수한 영혼의 여덟 살 지원군들.


"주성아, 선생님 말처럼 너도 눈감고 씹어봐. 진짜 소고기 맛이 나."라고 말하며 저도 먹기 싫은 버섯을 한입 왕창 입에 넣고 꿀떡 삼킨다. 나의 절절한 설득에 넘어가지 않던 주성이는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는다. "나도 먹으려고 했다고!" 소리치며 버섯 하나를 먹는다. 사실 나도 버섯에서 소고기 맛을 못 느꼈었는데 너는 어떻게 소고기 맛을 느꼈니.


선생님 편을 들고 싶은 순수함이 친구를 버섯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선생님의 사랑을 툭 떨어뜨리는거야?


식감이 싫다면서 계란이나 두부같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는 준서. 계란과 두부는 니 몸 속에 군인이 먹어야할 밥인데 준서가 그걸 안먹으면 군인이 살 수 있겠어? 슬슬 꼬시며 준서 숟가락 위에 계란이며 두부를 슬쩍 얹어 준다. 자기가 무슨 조랑말인가! 이히힝 뭐 이런 비슷한 소리를 내며 숟가락에 얹어놓은 계란을 매몰차게 떨어뜨린다.


선생님의 사랑을 이렇게 버리는거야?

잠시 준서를 지켜보다가 준서의 귀에 속삭였다. 준서도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 철학자가 되는 그 조용한 멈춤의 시간. 잠시 나를 째려보더니 계란을 확 먹어치운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나보다. 나는 너무 기특하여 실시간으로 영상을 찍는다. 엄마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에 아이도 조금 신이 나 보인다. 그렇게 그렇게 아이는 그동안 먹지 않겠다던 모든 음식들을 다 섭렵하게 되었다.


빨리 1학년이 되고 싶어 콩을 먹는 아이


이런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또 한 아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병설유치원 7세반 지후. 사랑스러운 지후는 바로 내 뒤에서 늘 식사를 하는 어린이다. 제 선생님도 아니지만 나날이 1학년 선생님! 하고 부르며 인사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나를 안아주는, 사랑스러운 편식쟁이 어린이. 그 지후가 나와 1학년들의 실랑이를 늘 주시하고 있었나보다. 어느 날, 지후가 말한다. 준서 형아는 유치원 다닐 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준서의 과거를 들추어낸다. 저나 잘할 일이지 싶어 유치원 선생님과 나는 눈을 맞추고 웃는다.


이 때가 기회다. 빨리 형님이 되고 싶은 어린이들. 1학년에게는 한번씩 다 먹어봐야 하는 규칙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니가 일러주었던 그 준서 형아는 편식의 댓가로 키가 크지 않았고 그래서 어린이대공원 범퍼카를 타지 못했다고. 1학년이 된 준서 형아는 이제서야 반성하고 모든 걸 다 잘 먹게 되었다면서. 지후와 나의 대화를 듣던 준서. 보란듯이 계란이며 두부며 버섯 등을 먹어치운다. 지후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다음 날, 콩밥이 나왔다. 지후가 그 여린 손으로 나를 톡톡 치며 부른다. 지후의 귀여운 손길에 뒤를 돌아보니 지후는 나에게 입을 크게 아! 벌리고 지가 씹던 콩의 잔해를 보여준다. 아..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싶지만 어쨌든 지후의 입 안에는 콩이 한가득이다. 콩은 다 골라내고 밥도 겨우 먹던 지후가 이제는 콩을 먹기로 했다면서. 그러던 또 어느 날 나를 또 부른다. 자기가 이제는 김치도 먹게 되었다면서. 역시 또 김치의 잔해를 입을 벌려 보여주고야 만다.


동생이고 형님이고 서로서로 배워가는 아이들


먹기 싫은 음식을 바닥에 몰래 버리던 악당 정훈이가 대화에 끼어든다. 씻어낸 김치를 먹었다고 자랑하는 지후에게 굳이 또 나서서 잔소리를 한다. 씻어먹으면 김치를 먹는게 아니라면서. 아이고, 저나 잘 하시지 싶으면서도 또 나는 얼른 간섭을 한다. 씻어 먹더라도 몸에 좋은 유산균은 그대로이니 지후는 김치를 먹은 거라고. 그러시는 당신께선 씻어서도 김치를 먹지 않고 있다고 꼭 찔러 지적을 해준다.


동생 앞에서 무안한 정훈씨는 도발을 하신다. 식판에 받은 김치 두 조각을 한꺼번에 먹어치운다. 그래, 잘한다. 동생은 형님처럼 되고 싶어서, 형님은 동생 앞에서 부끄럽기 싫어서.. 어쨌든 형님들과 동생들은 서로를 보며 무언가 달라지고 있으니 그럼 된 것 아닌가.






나는 입이 짧은 어린이였다. 김과 김치의 조합, 생선과 김치의 조합이면 여지없이 구역질이 났었다. 무서운 우리 엄마는 그럴 때 얼른 김치국물을 한 입 떠먹이셨다. 나는 매운 김치국물에 놀라 한 입 한 입 먹게 되었다. 우리 엄마의 방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학교에서의 급식지도는 참으로 조심스러운 한 부분이니 그런 극단적인 처방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릴 적의 모든 습관과 경험이 나의 인생을 지배한다. 나와 인연이 스친 여덟 살 아이들이 모두 모두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나의 욕심은 점심시간을 홀랑 빼앗아버린다. 우왁스러운 엄마의 방법은 빼고, 나의 엄마가 나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그 진심만을 쫓아간다. 다행히 나의 이런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주는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변하고 있다.


"선생님, 오늘 영양가는 이 생선이지요?"

먹기 싫은 생선이 떡하니 놓여진 식판을 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물어본다. 아이의 질문에 웃음이 난다. 생선이 먹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이 묻어난 질문. 그것은 사실 나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이는 먹기 싫은 생선이지만 오늘의 영양가이니 먹어야겠다는 주문을 스스로 외우는 것이다.


학교의 큰 행사에 학부모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 병설유치원 홍보의 시간이 10분 계획되었다. 유치원 선생님과 나는 유초이음교육을 홍보하기로 하였다. 유치원 편식쟁이 지후와 나의 급식시간 이야기를 영상으로 찍었고, 콩을 먹지 않던 지후가 콩 씹은 잔해를 입을 벌려 자랑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함께 했다. 학부모들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서로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미소와 박수.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자라는 아이들.

나는 그 옆에서 그 모습을 매일 매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


이제 병설유치원 5세 서준씨께서도 나의 고객님이 되셨다. 톡똑 나의 어깨에 노크를 한다. 입을 크게 벌려 자기가 씹던 그것들을 보여준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면 신이 나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5세 서준씨.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은 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자라고 있다.
혼자서는 어렵던 일도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며 용기를 내면서.
이 작은 ‘전이의 순간들’을 보면서
어른이든 아이든 성장의 방식은 결국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움은 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습관이 옆 사람의 선택을 바꾸고,
누군가의 표정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혼자서 나아가는 것 같아도
사실 우리는 서로의 흔적 위를 걸어가며 함께 자라고 있다.

나는 어떤 배움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또 나는 누구의 길 위를 따라 걷고 있을까?



# 이어질 14화 이야기, <퇴고하는 여덟살 꼬마작가>


선생님, '감동'이 뭐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거야

우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꼬마작가가 되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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