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뿅망치
1학년 담임이 된 나는 점잖음을 잃어버렸다. 무려 15년을 1학년과 함께 했으니 나는 15년간 점잖지 못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에너자이저들을 의자에 앉혀 놓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이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모으는 일부터가 나의 일의 시작이 되었다. 유머가 필요했고, 몸개그는 기본이다. 이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대형 뿅망치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다. 단, 유머와 평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선 뿅망치 사용 규칙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사용하지 않으며,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물건으로. 장난감이 아니라 수업 도구로 존재하는 그 물건. 가끔 나는 그 물건으로 아이들에게 맞곤 한다. 참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6학년 담임을 하던 젊은 어느 날. 교과서 속 텍스트를 각자 읽고 난 뒤, 나는 글의 내용 파악을 위해 간단한 발문을 던졌다. 이 글의 주인공은 누구지? 한 아이가 '날씬한 고래'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레이저를 쏘며 되묻는다. 뭐라고 했냐 지금? 아이는 또다시 '날씬한 고래'라고 답을 한다. 나는 그 때도 변신을 했었더랬다. 목소리 톤을 높여 잔소리를 시작한다. 여기 어디에 날씬한 고래가 나온다는 거냐, 글을 읽은거냐 안읽은거냐, 도대체 뭐한거냐! 문장과 문장 사이에 틈도 없이 잔소리를 이어갔다. 그런데 영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이들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예의 그 격앙된 목소리로 "왜?"하고 소리쳐 물었다. 아이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 날치와 고래라고 했는데 왜 자꾸 선생님은 날씬한 고래라고 말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의 소음 속에 살아서 그런걸까. 나는 젊은 시절이었음에도 가는귀가 먹었던 것이다. 나에게 잔소리 폭격을 받던 그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화도 잘내지만 또 인정도 쉽게 하는 조금은 비겁한 사람. 태세전환에 빠른 앞잡이의 성향이랄까. 화를 내던 나는 내던져버렸다. 금세 비굴한 목소리로 "어머, 미안해."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아이들도 어이없는지 웃어버린다. 나는 당사자 아이에게 다가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을 했다. 대체로 분위기는 나에게 넘어왔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을 자기들이 어쩌겠는가. 하지만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다고, 너의 억울함이 풀리도록 선생님 한 대 때려도 좋다고 말하며 납작 엎드렸더랬다. 나는 점잖지 못하지만 그 아이는 참 점잖은 아이었다. 아이는 괜찮다고 말하며 웃고 말았다.
나는 그날 이후 뿅망치를 구입했다. 내가 실수했을 때, 내가 미안했을 때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다. 내가 왜 이리 사과에 민감한 사람이 되었을까. 내 인생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한 화해를 해내지 못한 채 세월을 흘러보냈다. 그래서겠지. 그때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마음이, 지금도 내 안에서 오래 눌어붙어 있다.
이런 내 마음이 투영되어 아이들 세상에 개입한다. 비록 로봇같은 사과일지라도 아이들은 끝난 일에 나는 날을 세운다.
하루에도 열두번은 더 싸움이 난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렇게도 억울할까 싶은 작고 귀여운 일들로. 하지만 아이들의 갈등 속에도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한다. 때론 한 사람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두 모습이 겹치기도 하면서. 어른이 중재에 나선 아이들의 싸움은 먼저 용기 낸 한 명이 친구의 어깨에 슬쩍 손을 한 번 얹으며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성의 없는 '미안해'를 들으면 억울했던 아이는 또 '괜찮아'를 말한다.
이런 아이들의 사과를 보며 어른들의 사과를 떠올린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이런 사과가 먹히기 시작하면 사과는 응당 그렇게 하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겠지. 어른들의 두루뭉술하고 실체도 없는 사과를 떠올린다.
나는 또 몸개그를 곁들인 역할극을 시작한다. 나는 실수로 친구를 넘어뜨리는 가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사전 대본도, 리허설 따위도 없다. 감독이자 연출가이자 가해자 역할을 맡은 내가 모든 걸 지휘한다. 친구를 넘어뜨리고 아이들이 흔히 하는 로봇 사과를 선보인다. 넘어진 아이에게 물어본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 넘어져서 아픈 무릎이 나았니? 아니면 기분이 나아졌니?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맨날 그런 사과를 받고 '괜찮아' 이렇게 말하니.
이번에는 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가해자 역할. 넘어진 아이에게 급히 다가가 호들갑스럽게, 그러나 걱정 어린 표정으로 "아이고, 미안해. 실수였어. 괜찮니? 보건실에 갈래? 아님 구급차 불러줄까?" 일부러 과장된, 그러나 진심 담긴 사과 장면을 연출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호들갑스러운 말과 몸짓에, 그리고 구급차라는 말에 빵 웃음을 터뜨린다. 너도 나도 손을 들며, 선생님, 저도 해볼래요! 난리가 난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해도 넘어진 무릎이 나아지는 건 아니야. 그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선생님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닿으면 기분 나빴던 마음은 싸악 사라지지.
어른인 나에게도 상대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아주 사소하고도 시답잖은 사건들이 나날이 펼쳐진다. 때론 내가 이런 걸로 섭섭하거나 화가 나는 게 정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의 사소한 일들. 그런 일들을 그냥 참고 넘어간다. 좋은 사람 코스프레가 습관이 되어가는 나.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어떤 순간은 정말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도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앙금을 만들어간다. 나는 괜찮지 않다.
또 내 감정이 투영된다. 괜찮지 않은데 사과도 못 받은 나의 응어리. 나는 아이들에게 꼭 묻는다. 정말 괜찮니? 처음엔 괜찮다고 말하다가도 내가 자꾸만 정말 괜찮니?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친구가 괜찮아질 때까지,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닿도록 해줘야 해.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 더 상처받았거나 조금 더 고집 센 아이는 선생님의 이 말에 힘을 얻는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아이. 어떤 아이는 자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도 괜찮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참 어렵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법. 교사인 내가 '이제 괜찮아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용서는 용기가 필요한 거야. 친구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용서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해.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참 어렵다. 그래, 너는 그렇게 용서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니?
뿅망치는 참으로 유용한 물건이다. 장난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와 놀아주다가 선을 넘기도 한다. 아이는 서럽게 운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또 연발하지만 여덟 살 아이들은 아주 냉철하고 단호한 일면이 있음을 깨닫는다. 쉽게 용서가 안되는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나는 참으로 무안해진다. 그럴 때 등장하는 도구가 바로 뿅망치다. 그럼 선생님 한 대 때리면 기분이 풀릴 것 같아? 하면서 슬그머니 뿅망치를 들이민다. 눈물 콧물 다 빼고 울다가도 아이는 뿅망치를 보면 또 조커같이 웃는다. 아이에 따라 강도는 다르다. 온갖 감정 다 담아 힘껏 때리는 아이도 있으나 사정을 보아주어 살살 때려주는 아이도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마음에 닿아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괜찮음을 강요해선 안된다. 그 응어리가 풀어지도록 마음을 다해주어야 한다. 나는 내가 뿅망치로 맞는 유머러스한 상황을 통해 미안한 나의 진심을 전해본다. 선생님을 보면서 아이들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사과하는 용기있는 아이가 되길, 또 괜찮지 않은 마음도 표현할 줄 아는 강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과는 결국, 오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아온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사과는 마음에 닿아야 그 역할을 마친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사과.
구체적이지도 않은 사과.
상황을 모면하려는 얕은 사과.
아이들의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지켜보며
어른들의 세상을 비추어본다.
미안하다는 말.
날 서있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고맙다는 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내가 느낀 많은 관계의 벽은
그 두 가지 말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
말의 매직을 알려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다.
내가 하지 못했던
사과의 말.
진심으로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아
응어리진 내 마음.
나는 유치하게 내 마음을
아이들 싸움에 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세계에서
내가 받지 못했던 말을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