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만 지구수비대!

비겁한 지구수비대 대장의 고백

by 봄비

고백한다. 정의로운 마음보다도 그저 두려웠다고. 지구를 지켜야한다고 외치는 나의 속내는 그저 비겁한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 노파심이 생긴다고들 하더니, 어쩌면 그리 딱 들어맞는지. 눈이 오면 그저 설레던 젊은 날들은 이제 다 지나갔다. 비오는 날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나지만 하늘에 구멍인 난듯 쏟아지는 폭우를 즐길 수는 없었다. 가을부터 전기장판 없는 잠자리를 상상할 수 없었다. 예전과 다른 폭염에 시원한 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다 싫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정의가 아니라 지금의 편안함을 포기할 수 없는 비겁한 이기심으로 나는 지구수비대를 만들어냈다.


지구가 아프대.
지구도 지금 열이 펄펄 끓는대.
너희들도 열이 나면 치료를 받지?
지금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지구수비대!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독수리 오형제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나. 2022년, 독수리 오형제를 떠올리며 <지구수비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 교육과정은 내가 지향하는 지구수비대 교육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절실한 이기심은 교육과정의 상상력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언제 내가 그리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교사였던가. 하지만 나는 지구수비대 교육과정을 계획해낸다. 절실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동력이 되었다.


지구수비대, 강제 징집 당하다!


회색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도 대처하지 않는다. 공교육은 늘 한박자 늦게 무언가를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회색코뿔소가 다가온다고, 무언가 준비해야한다고 알려주어야 했다. 여덟살 아이들은 '잠자는 학교를 깨우는 파도'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명절이면 과일상자를 포장하는 금색 보자기들을 모아 아이들의 슈퍼맨 망토를 마련하였다. 금색 망토의 물결이 학교에서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도록. 잠자는 학교를 깨우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지구수비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 전기장판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싫어서 나는 여덟 살 아이들을 강제징집하였다. 대한민국 군대도 예외사유는 있건만, 우리 반 지구수비대에는 예외사유란 없다.


꿀벌 실종 사건의 동영상을 함께 보며 꿀벌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이야기 나눈다. 꿀벌들이 부지런히 일해주어야 열매가 생기고 우리도 맛있는 과일들을 먹을 수 있겠지? 제 담임을 닮은 아이들도 역시 이기적이다. 달콤한 과일을 못먹는다니, 아이들이 새삼 꿀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꿀벌의 존재가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후로 교실에 꿀벌이 들어와도 나는 예전처럼 에프킬라를 뿌려대거나 파리채로 납짝꿍을 만들어 죽이지 못한다. 꿀벌이 창문에 붙는 순간을 포착하여 종이컵에 담아 창 밖으로 내보내준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 없는 일. 급식실에 들어온 벌을 파리채로 때려잡는 영양 선생님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학교 화단을 가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식물을 가꾸는 일을 너무나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를 하니, 나의 적성은 농업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받아보았더랬지. 아이들을 동원한다. 밀원식물이라고 칠판에 크게 써놓고 아이들을 꼬신다. 꿀벌의 먹이가 되는 꽃을 심어야 너희들 입에도 달콤한 과일이 들어간다고. 겨울을 지나고 딱딱해진 화단으로 향했다. 작은 손들에 맞는 장갑을 하나씩 끼고 아이들은 화단정리작업에 동원되었다. 땅이 숨을 쉬어야 식물도 자라겠지? 한마디 툭 던지며 호미 하나씩을 나눠준다. 누구하나 불평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간혹 농땡이 친구가 있어도 내가 나설 필요가 없는 분위기. 꽃을 심어야 꿀벌이 산다면서, 지구수비대가 그러면 안된다면서 여덟 살 잔소리꾼들이 먼저 나서주니까. 그렇게 우리 여덟살 지구수비대는 앵두나무, 백일홍, 봉선화, 해바라기... 30여 종의 식물들의 터전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아이들도 이 풍요로운 세상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장난감이며 학용품들이 넘쳐나는 세상, 아까운 줄 모르고 함부로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 동네 쓰레기 매립장을 찾아 체험학습을 가보기로 하였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실제로 보면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온 이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면 굳이 금색 보자기를 뒤집어 씌웠다. 금색 보자기의 마법이랄까. 이 보자기를 뒤집어 쓴 지구수비대들은 더러운 쓰레기통을 뒤져서 종류별로 분리배출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생한 아이들에게 요구르트 하나씩을 나눠준다. 지구수비대 공식 복장을 한 아이들은 다같이 건배를 하고 달콤한 요구르트를 마신다. 그리고 요구르트 용기를 잘 헹구어 스스로 플라스틱 배출함에 버리는 마무리까지 싸악 해치운다.


그러나 잘 배운 지구수비대들은 어느 날부터 저희들의 대장을 옭죄어 왔다.


지구수비대 대장에게 날아온 부메랑!


이 지구를 이렇게 만든건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들 아닌가. 결국 또 교사들은 사고를 쳤다. 어느 날, 우리 교실에서 교사 협의회가 있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씩을 하며 협의를 했다. 다음 날 아침,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선생님, 누가 플라스틱 컵을 태우는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아이쿠야. 어느 선생님의 무신경한 손길이 아이들에게 발각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복도에 방을 붙인다. 우리 반에 쓰레기를 잘못 버린 사람을 찾는다고, 찾아주는 사람에게 하리보젤리를 선물로 주겠다면서. 아이들의 삐뚤빼뚤 방을 읽은 어느 선생님이 제발로 자수를 하고 사건은 끝났다.


여덟 살 아이들의 금빛 물결은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지구수비대 활동을 전파하고 다니던 나에게 6학년 아이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하교하던 6학년 아이들에게 나는 착한 선생님이고 싶었다. 출장가던 길에 만난 6학년 아이들에게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차를 세웠다. '고맙습니다' 하며 타면 될 일이지, 차에 타면서 중얼거린다. 맨날 환경, 환경 하더니만 왜 선생님은 경유차 타고 다녀요? 하는 것 아닌가. 야, 경유차 아니고 하이브리드! 외쳐보지만 하이브리드는 뭔지 모르는 이 사춘기 아이들. 나는 결국 경유차를 타면서 환경오염을 시키는, 말과 행동이 다른 선생님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나는 전교생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빈 교실에 왜 불을 켜놓고 다니냐며 잔소리하는 3학년 아이, 종이컵 썩는데 20-30년 걸린다고 해놓고 왜 선생님은 종이컵에 커피 마시냐는 우리반 아이, 손 씻을 때 물을 왜 틀어놓느냐고 하는 아이, 왜 급식시간에 음식을 남기냐는 아이... 나는 그렇게 지구수비대들의 감시를 받는 몸이 되어버렸다.




생태환경교육의 필요성과 방향을 논하는 어느 글을 읽었다. 우리 생활 속 습관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또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 지구를 위하는 일이라고.


그러나 그 글에서 말하는 죄책감과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은 결이 다르다. 나의 죄책감은 편리를 위한 습관 자체에 대한 성찰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지구수비대를 동원해놓고 그 순수한 눈을 피해 딴짓을 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나의 죄책감의 본질이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의 문명의 이기를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많은 나. 그래서 아이들을 동원하여 지구를 지키자고 해놓고는 아직도 종이컵을 사용하기도 하는 나. 그 이중성 사이에서 비겁한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여덟 살 지구수비대에게 금빛 망토를 씌우는 나의 손, 더이상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못다 한 이야기


여리고 귀여운 손으로 쓰레기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기특하고도 안쓰러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지구를 지키자고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편리한 삶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각종 지구수비대 활동에 때로는 싫증을 낼 수도, 농땡이를 부릴 수도 있건만
여덟 살 아이들도 자신들의 삶의 문제임을 깨닫고 있는지 참으로 진지하기만 하다.
나는 이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아이들의 성장기가 아니라, 나의 부끄러움에 대한 기록이 되어 버렸다.
금빛 망토를 씌워주던 손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하지만 부끄러운건 나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 이어질 17화 이야기, <배신자라 불린 아이>

순수한 아이들

정직한 아이들


그러나 나는 답정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애들아, 그만 정직하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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