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답정너 선생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장난이라고 하면서 친구를 속상하게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가르치는 나지만, 나는 참 모순적이고 근본없는 철학을 가진 교사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이런 종류의 질문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곤란한 얼굴의 아이를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 학교에 나의 라이벌이 존재한다. 바로 돌봄교실 선생님. 라이벌이지만 우리는 서로 닮아 있었다. 학교에 흔치 않은 캐릭터, 자유영혼이라는 점. 허물없이 격식없이 아이들과 장난치며 놀기에 바쁜, 우리는 영혼의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나는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놀고 싶고, 움직이고 싶고, 떠들고 싶은 여덟 살 아이들을 딱딱한 의자에 앉혀 놓고 공부라는 걸 꼭 시켜야 한다는 점. 돌봄교실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나의 교실 속 역할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기에 치명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됨은 분명하였다.
나의 꼼딱지, 은채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또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은채야, 너 선생님이 좋아, 돌봄선생님이 좋아? 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숨도 안쉬고 은채 요 아이가 '돌봄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 나는 무슨 용기로 이런 질문을 했던가 현타가 왔다. 그러나 현실자각 타임은 찰나에 그치고 나는 또 분노와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너는 만날 선생님 꼼딱지라고 하고, 선생님 손은 니꺼라고 하고, 맨날 안아달라고 하더니 돌봄선생님이 더 좋단 말이지? 선생님 완전 삐졌다. 이제 은채랑 손도 안잡을거야라고 유치발랄한 질투의 멘트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분함이 가라않지 않는 나, 앞으로 은채를 '신자'라고 불러야겠다고 선포해버린다. 무심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내뱉은 은채는 배시시 웃고는 있으나 뭔가 당황스런 얼굴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신자가 뭐에요? 묻는다. 뭐긴 뭐야, 배신자라는 말이지. 앞으로 너의 성은 배, 이름은 신자다! 아이의 손을 놓고 나는 재빨리 도망을 간다. 아이는 당나귀 울음 소리를 내면서 나를 쫓아 왔다.
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 나는 시시때때로 '신자'를 불러댔다. 그러나 나는 또 때때로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하여 아이를 울렸다. 엉엉 서럽게 울면서 '신자라 하지마!' 말하는 우리 귀여운 신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이 왜 애를 울려요! 라고 항의를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나에게 쓴 통지표에는 "이 선생님은 애들을 울리는 선생님입니다. 사장님, 절대로 뽑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하게 되었다.
순수한 아이들
정직한 아이들
그러나 나는 답정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얘들아, 그만 정직하면 안되겠니?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솔직하라고 했니? 그저 유치한 너희 선생님 듣기 좋게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올 여름, 너무너무 뜨거웠던 올 여름의 점심시간. 위에서 언급한 신자라는 아이와 또 순수하기 그지 없는 서현이라는 아이는 텃밭에 토마토를 보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정말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줄줄 나는 그 여름 한낮에 나는 토마토의 안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인기 관리를 위해 마지못해 끌려서 텃밭에 갔다. 아이구야, 며칠새 여름의 텃밭에는 잡초가 한가득이었다. 안보았으면 모를까 이 잡초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나는 쭈그려 앉아 맨손으로 잡초를 뽑게 되었다. 신자도 나를 도와 잡초를 뽑았다. 아이의 기특한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옆에 있던 서현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잡초 뽑는 나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이 되는 바, 아이에게 선생님은 찍지 말고 신자를 찍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우리 순수한 영혼 서현이는 쭈그려 앉은 나를 중점적으로 찍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와, 선생님 진짜 못생겼다!" 그 말을 하던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표정. 그야말로 정직함 그 자체였다.
땀에 절은 머리와 얼굴. 헝클어진 머리카락, 저만치 콧망울까지 아래로 쳐진 안경, 화장이 땀에 녹아 팬더 눈. 아이가 찍어놓은 나의 사진은 못생겼음에 대한 명명백백한 증거로 남아있었다. 아이의 솔직하고 정직한 한마디에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솔직함은 쭈욱 이어진다. 학기말 특별한 하루를 계획하며 피자를 먹기로 하였다. 너희들을 일년동안 키워주신 고마운 분들께 편지와 피자 한 조각을 전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아이들은 고마웠던 분들을 한명한명 떠올리며 역할을 맡았다.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 감사편지를 쓴 아이의 글을 보며 여덟 살 순수영혼의 솔직함과 담대한 용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교장성생님, 에전 교장성생님은 공자 로체헙학습을 보네젼는데
교장성생님도 그래요? 그러타면 감사함니다.
아이들의 정직함은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언제나, 어른이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먼저 정해두는 마음이 아닐까.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솔직하게 답을 했을 뿐, 그러나 그 아이는 일년 내내 신자라 불리게 되었다. 물론 아이와 나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어 나의 장난도 무리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답을 미리 정해놓은 유치한 선생님의 횡포가 아닌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직한 대답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는 대답이었나 보다. 그러나 여덟 살 외계생명체들은 조금 눈치가 없는 편. 그래서 그들은 늘 정직해야할 순간엔 정직함을 감추고, 굳이 그렇게 정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엔 너무나 정직해져 버린다.
우리에겐 모순된 마음이 존재했다. 정직을 미덕으로 가르치지만 때때로 너무 정직하게 말하는 아이들을 한번씩 흘겨보게 되는 모순된 나의 마음. 그리고 이 순수영혼 여덟 살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모순은 존재했다. 친구와 싸웠을 때, 선생님 책상 위에 커피를 쏟았을 때,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그 정직함이 발현되지 않다가 유독 나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정직함을 발현한다는 점이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대답했다는 그 유명한 대장금의 대사가 떠오른다.
하얀 거짓말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는 땀에 절어 팬더 눈이 된 선생님이 못생겼으니 그저 못생겼다고 얘기했을 뿐이다. 정직한 아이의 말에 하얀거짓말을 들이대자니 하얀거짓말의 순수한 가치가 퇴색될까 두려워진다.
정직함이 문제였던 적은 없으니까. 문제는 늘, 아이들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미 듣고 싶은 답을 정해놓았던 나의 마음이었다.
장난도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늘 말해왔던 나.
아이를 딜레마에 빠지게 해놓고 아이의 곤란함을 즐기는 나.
정직해야한다고 말해왔던 나.
정작 정직하게 말하니 에둘러 말하기를 바라는 나.
참 모순된 마음들이다.
그래서,
이 글은 아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정답을 정해놓고 우매한 질문을 던졌던 나에 대한 성찰의 글이다.
외로웠던 한 소녀가
있었더랬지
아이는 나와 함께
외로움을 달랬지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나에게
돈을 주었다
냉큼 받을 것인가?
웃음만 나는 이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