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교사가 배운 마음의 언어
찬바람 부는 겨울이 왔다. 아이들에게 달콤하고 따뜻한 핫초코를 주고 싶었다. 얼마나 맛있어할까 상상하면서 나 혼자 분주해진다. 아이들 수만큼 컵을 준비하고, 핫초코 가루를 똑같이 분배한다. 물도 붓기 전 까불던 아이는 컵을 쏟는다. 잔소리와 함께 다시 핫초코 가루를 담아 주어야 한다. 끓인 물을 허리 숙여 부으며 뜨거운 물 조심하라 쉴 새 없이 당부한다. 마음 급한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핫초코를 먼저 저어달라며 아우성이다. 나는 그 아우성 속에서 잠시 괜한 짓을 시작했구나 또 현실자각타임을 갖는다. 그렇게 그렇게 겨우 핫초코가 완성되고 아이들은 달콤한 한 모금을 맛본다.
그러나 무언가 빠졌다. 고맙다는 한 마디. 답정너 교사인 나한테 말이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로봇같이 영혼이 없을지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반 백 살 나는 여덟 살 아이들을 상대로 또 섭섭해진다. 고맙다고도 안 하냐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내 말을 앵무새마냥 따라 하긴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시켜서 하는 인사는 와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핫초코를 타주고 싶어지지 않는다.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건만, 잘 알고 있음에도 섭섭함은 밀려온다. 그러니 나는 옹졸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줄 때마다 마음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었다. 내가 주는 마음이 한마디 말로 돌아오기는 할까.
나는 교직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선물을 받는다. 여덟 살 아이에게서 촌지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사라졌기를 기대하는 학교문화의 그림자를 빗대어 그저 촌지라 표현했지만 자기를 잘 봐달라는 청탁성 선물도 아니었고, 봉투에 넣어진 비밀스러운 돈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이는 꼬깃해진 오천 원짜리 지폐를 나에게 내밀었다.
외로웠던 한 소녀가 있었더랬지
아이는 나와 함께 외로움을 달랬지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나에게 돈을 주었다
냉큼 받을 것인가?
웃음만 나는 이 상황.
「외계생명체, 그들은 1학년」 by 봄비
외로운 아이였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살뜰히 챙기는 아버지도 계셨고 아이가 아파할까 봐 마음을 챙겨달라 부탁하던 할머니도 계셨지만 내 눈에 아이는 외로워 보였다.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빠도 할머니도 아이가 엄마를 만나는 일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를 만나기로 한 날에도 울적해 보였고, 때론 아이의 언니만 엄마를 만나러 가기도 하였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머니 속 물건도 아닌 아이의 마음은 쉽게 꺼내어지지 않았다. 재촉해서 될 일도 아니었으니 그저 가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밖에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여덟 살답지 않게 가끔은 침울한 표정이 되곤 하던 이 아이. 놀이 시간에도 어울려 놀려고 하지 않았다. 함께 노는 것도 공부라면서 놀이에 참여하길 권유도 했지만 이 아이는 유난히 마음이 단단하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의 놀이 장면 어느 한 켠에서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었다.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 아이. 아이의 속내는 그것이었다. 자기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시간에 아빠가 서운할까 봐 걱정된다고. 어찌 보면 참 맞는 말이다. 바닷물처럼 넘실대는 그리움 한 조각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할 아버지의 마음 한켠에 아이의 말처럼 서운한 마음이 스며들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의 아빠와 상담을 했다. 아이의 마음이 이러하다고. 아빠는 충격에 휩싸이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엄마를 만나서 행복하다면 아빠에게도 그게 행복한 일이 아닐까. 아빠의 그 마음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씀을 드려보았다.
음지에서 양지로, 침잠에 빠진 마음을 수면 위로 올리는 일.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의 아빠는 무언가 시도하셨다. 그 상담이 있은 이후 아이는 가끔씩 엄마를 만나러 가도 될지 나에게 묻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꼬깃한 오천 원짜리 돈과 함께 짧은 손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이제 엄마를 만나러 갈 거라면서, 맛있는 거 먹으라고 쓰여 있는 짧은 편지를 말이다.
꼬깃꼬깃한 오천 원과 마음이 담긴 한 문장. 맛있는 거 먹으라는 짧은 한 마디 속에 나는 그동안 우리가 손잡고 나란히 앉아 있던 그 시간들이 새삼 살가워졌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다. 너무나 귀여워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너의 마음만 받겠다면서, 너의 마음에 선생님은 배부르고 행복하다고.
진심이 담긴 마음의 표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는 아에게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어쩌다 보니 나의 글들은 고백 투성이다. 나는 또 부끄러운 고백을 세상에 내놓는다.
내가 준 마음이 닿지 않는 순간을 마주할 때 나는 순수했던 나의 선의를 후회하곤 했다. 그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손잡아주길 바랐던 순간들. 그런 나의 작은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마음을 접는 방법을 배우며 차가운 가슴의 사람이 되어갔다.
상대적으로 미안함 보다 고마움의 표현을 놓치고 살지 않는가. 미안하다는 말은 어쩌면 자기 방어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미안함의 표현을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내가 다칠 수도 있기에.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마움의 표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놓치기 쉬운 고맙다는 말.
아이의 선물은 나를 설레게 하였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에 대해 아이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가 내민 손길에 옹졸한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 말이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