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은 알거야

CCTV보다 무서운 것.

by 봄비

우리 여덟 살 아이들이 교실이라는 작은 우주 속에서 행복한 정착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있다. 아이의 양육자와 교사의 협력.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부모 상담에 시간과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ADHD가 의심되는 아이가 있다.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이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교실에 CCTV가 있다고 말해주세요.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과 노랫말들을 입밖으로 계속하여 내뱉는 이 아이. 자신의 행동이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 느끼는 이 아이. 자기의 행동이 반복될 때 "브레이크"라고 크게 말해달라는 이 아이. 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와 나의 생각은 끝내 평행선을 그렸다.


CCTV로 진실을 밝히려는 아이들


교실 천정에 빨간 불이 깜빡이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사실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화재경보기일까? 그러나 아이들은 그 불빛이 CCTV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누가 무엇을 먼저 했는지 밝혀내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서로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하여 난감한 순간들. 아이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빨간 불빛을 가리킨다. 선생님, CCTV 틀어보라고.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들, 있지도 않은 CCTV로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아이들 그리고 난감한 나.


누구라도 억울한 일이 생기면 안되는 이 신성한 교실에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일들에는 또 여덟 살 증인들이 증언을 해주기도 하건만, 가끔은 증인도 물증도 없는 미제사건이 발생하는게 문제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나는 심증을 가지고 있다. 지금 누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 하지만 심증은 심증일 뿐, 아이를 다그칠 수 없는 일이다. 또 진실을 덮은채 그냥 넘어가서도 안되는 일이다.


CCTV를 돌려보자는 의견이 거세어진다.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는 먼저 놀리지 않았다는 두 아이.


선생님은 CCTV는 돌려보지 않을거야.

그리고 둘 다 아니라고 말하면 아닌거겠지.

선생님은 너희들 말을 믿어줄거야.

선생님도 친구도 속일 수 있지만

너의 마음을 속일 순 없단다.

하지만 너의 마음은 알거야.


CCTV보다 무서운 것은 너의 마음이야


너의 마음은 알거야. 이렇게 말한 뒤 우리 교실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생각에 잠긴다. 나는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한 아이가 슬그머니 손을 들며 말한다. 제가 먼저 놀린 것 같아요.


나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놀린 일은 잘못이지만 이렇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는 아주 멋진 것이라고. 선생님은 우리반에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누가 잘못을 먼저 했는지 물어본 것 뿐이라고. 선생님은 잘못한 사람을 경찰아저씨에게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라고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되는거라고.


이후 비슷한 일들은 변함없이 일어난다. 서로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도 변함없다. 하지만 아이들 마음 속에 스며든 한마디 말이 있었다. "너의 마음은 알거야. " 서로 억울하다고 버티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른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너희들 혼내려고 그러는게 아니야.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돼.

너의 마음은 알잖아.

미안하다고 말하면 돼.

그리고 앞으로 잘하면 된다고!


그렇다. CCTV보다 무서운건 나의 마음이었다.


친구가 자기를 보고 돼지같다고 하여 기분 나쁜 한 아이. 사람을 보고 돼지라고 하는게 어딨냐면서 목청을 높인다. 돼지라고 말한 아이는 능청맞은 변명을 한다. 자기는 원래 돼지를 귀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거라고.


참 어이가 없다. 두 친구는 앙숙이다.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의 흠을 찾아내 일러주는게 하루 일과다. 선생님, 정훈이가 연필을 입에 넣어요. 선생님, 기환이가 집중안하고 연필가지고 놀고 있어요.


나는 말한다. 기환이 너의 마음은 알거야. 진짜로 정훈이가 귀여워서 돼지라고 했는지, 아니면 정훈이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어서 돼지라고 했는지. 기환이 너의 마음은 알거야.


이렇게 말하고 잠시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기환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기환이 마음이 뭐라고 말해? 정말로 정훈이가 돼지처럼 귀여워서 그렇게 말한거래? 아이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고개를 젓는다. 정훈이를 놀리고 싶었다면서.


그렇게 아이들은 CCTV없이도 자기 마음을 내어놓는 용기를 배워가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다 안다. 나도 도전하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했던 시험이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데 얼마전 나의 후배가 그 시험에 합격을 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다 안다. 축하의 말로 포장하였지만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나의 복잡한 마음을.


나의 상사가 나의 말 한 조각을 가지고 화를 내었다. 좋은 의도로 꺼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며칠을 억울하고 또 억울해했지만 말도 못한채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보니 나의 진심을 느끼셨는지 일년이 지난 어느날 나에게 미안했다며 말씀을 건네신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쪼잔하고 뒤끝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지 않았다. 두고두고 그 상사의 인품을 곱씹으며 미워했으니. 내 마음은 나의 미움을 올올이 기억해 두었다.


미움도 질투도 나의 마음이었다.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기위해 숨겨야하는 나의 마음들.


그러나 절대로 덮어둬선 안되는 나의 마음이 있단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내 마음을 감출 필요도 있지만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파할 때,

내가 참을 수 없이 아플 때,

그럴 땐 절대로 나의 마음을 덮어둬선 안된단다.


너의 마음은 다 알거야.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짓말들은 나에게 마음의 짐이 되어 남게될거야.

친구를 아프게 하고 싶은 너의 말들은 나에게 다시 미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몰라.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꺼내놓는 것을 용기라고 말한단다.

그렇게 한번 용기를 내고나면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 진단다.

다른 어떤 사람도, CCTV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내 마음이란다.


못다 한 이야기


마음을 감추어야 하는 순간도,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꺼내놓는 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어린 아이들이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아이들의 진심을 믿어주는 일,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다려주는 일, 그리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은 참으로 섬세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꺼내놓는 이 아이들의 변화는 서로에게 보여주는 작은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일깨워 주었다.



# 이어질 16화 이야기, < 여덟 살 지구수비대 이야기 >


지구가 아프대.


지구도 지금 열이 펄펄 끓는대.

너희들도 열이 나면 치료를 받지?

지금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지구를 치료해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살 곳이 없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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