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인이 되는 건 처음이야
포항 할머니집 이웃, 홍구.
어린 나보다 한두 살 많았을까
조금 느리게 자라던 홍구.
철 모르던 우리는 홍구를 놀렸다.
니 새우깡 살 줄 아나?
묻던 홍구.
새우깡 사달라는 말을
그렇게 하던 홍구.
니 시 쓸 줄 아나?
홍구가 이렇게 물으면
이제서야 글쓰기 시작한 늙은 나.
이렇게 대답할 거다.
그래, 내도 시 쓸 줄 안다.
홍구 니한테 이바구* 하듯이
그냥 쉽게 써볼라 칸다.*
*이바구 : 이야기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
*써볼라 칸다 : 써볼까 한다의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해야 제 맛이 살 텐데.
"니 시 쓸 줄 아나?"
"그래, 내도 시 쓸 줄 안다. 홍구 니한테 이바구하듯이 그냥 쉽게 써볼라 칸다. "
어쨌든 감히 시를 써 보겠다고 나서는 가당찮은 나의 용기가 겸연쩍어 새우깡이 먹고 싶었던 어릴 적 홍구까지 소환했다. 어린 홍구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보고 싶어서.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맛을 안다. 어려운 시도 그저 소리 내어 읽어본다. 소리 내어 읽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시를 이해 못 해도. 그런데 쉬운 말로 쓰여진 시는 얼마나 좋을까.
광화문 글판에 올라 국민시가 된 <풀꽃>의 나태주 시인. 아니 쉽고도 좋으니 광화문 글판에 올랐겠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일러주는 말을 그저 받아 적으니 시가 되었다*는 김용택 시인.
내가 좋아하는 두 시인과 나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감히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과의 삶과 밀접하다는. 굳이 친한 척해본다면, 이 시인들은 나의 교직 선배 아닌가. 모름지기 후배란 멋진 선배가 걸었던 길을 따라보고 싶은 법.
아이들과의 삶의 소재로 풀꽃이라는 시를 썼다는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내도 시 쓸 줄 안다'라고 말해버린 나의 무모한 용기를 합리화해 본다.
#1. 국민시 <풀꽃>의 탄생 스토리
연필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한 시인. 자세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러다 제비꽃이 마음에 들어오면 선 하나를 긋기 시작했다는 시인.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자세히 봐. 그리고 오래 봐라."
"자세히 봐야 예쁘다. 알았지?"
선생님의 조언에 다시 그림 그리기에 도전하는 아이에게 시인이 건네는 말.
"자세히 봐야 예쁘단다. 너희들도 그래."
#2.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시
제 말법이 쉬운 편입니다. 초등학교 선생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시라는 게 어디 벽장 속이나 금고에 감춰 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소통할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써야 해요.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어요. 감동이 있어야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바꿀 수 있겠지요.
출처 : <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