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가?
살면서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삐쩍 말랐다는 말 한 번 들었으면.
바이브레이션 장착한 목소리로
소름돋는 노래 한 번 불러봤으면.
그리고
이름 앞에 한 번은 달아보고 싶은 배지.
작가라는 말 한 번 들어봤으면. 그래서
니 시 쓸 줄 아나?
그래, 내 시 쓸 줄 안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해 놓고선
나는 혼자 작가가 되었다.
작가란 모름지기 이런 것.
작가의 걸음으로 걷는다.
쫓기 듯 걷던 걸음이 느려진다.
일없이 허리 굽혀 풀숲 한 번은 들여다봐야.
세상을 관조하듯 뒷짐은 필수.
사주에 火가 3개 있어서 화 많던 난데.
세상을 다 그러안은 듯 말한다.
나직하고 온화하게, 옅은 미소를 곁들여.
슬그머니 책꽂이에서 책을 꺼낸다.
밑줄 그은 책 한 권은 내 몸인 듯 지녀야지.
밤이면 넷플릭스 귀신이 되어
그 세상을 벌건 눈으로 헤매고 다녔었는데.
올해같이 더웠던 폭염 속.
불현듯 따뜻한 차를 준비한다.
맑고 그윽한 것을 원래 즐겼던
영혼이 맑은 사람처럼.
이래야 진짜 작가가 되는 것처럼.
니 갑자기 와그라노?
홍구*가 묻겠다.
*홍구 : 나의 어릴 적 포항 할머니집 이웃인 정겨운 추억 속 남자아이,
#0. <니 시 쓸 줄 아나>에 등장하는 그 옛날 소년
작가, 얼마나 멋진가. 이름 앞에 한 번은 달아보고 싶은 배지. 누가 읽어주든 말든. 구독자가 있든 말든.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나다. 마음이 잔잔해졌다. 내 사주에 불(火)이 3개가 있단다. 어려서부터 내가 화를 내면 우리 오빠는 '으이그, 저 화 많은 거. ' 말했다. 그런데 화가 덜 난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반면 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성인 남자들도 내 걸음 빠르다고 했는데, 그랬던 내가 천천히 걷는다. 자세히 보고 오래 들여다봐야 아름다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모름지기 작가는 이래야 할 것 같아서.
(참고) 저, 뚱뚱하진 않아요. 표준체중 정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