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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6천 년의 약속

북극성

by 김대군

지하 철도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1822년경 ~ 1913년)은 미국 노예 해방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지하 철도의 모세’로 불리운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의 잔혹한 노예 제도를 피해 수많은 흑인 노예들은 자유를 찾아 북부의 자유주나 캐나다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이 비밀스럽고 위험한 탈출 네트워크를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라고 불렀다.


당시 노예들은 대부분 문맹으로 지도를 읽을 수 없었고, 지도, 나침반, 시계조차 가질 수 없었다. 발각되면 심한 처벌을 받았다.


그들은 깜깜한 밤에만 이동해야 했고, 북극성은 그들이 자유의 땅인 캐나다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이때, 노예 탈출을 도와주는 ‘지하철도의 차장’들이 있었고, 해리엇 터브먼은 가장 전설적인 차장(conductor)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탈출 노예 신분이었음에도, 메릴랜드에서 캐나다 온타리오까지 19차례에 걸쳐 비밀리에 잠입과 탈출을 반복하면서 300여 명의 노예를 탈출시켰다.


Harriet_Tubman.jpg

해리엇 터브먼 (H. B. 린슬래이 촬영), 1870년 무렵. 어릴적 얼굴을 심하게 맞아 변형되었다.

By Harvey B. Lindsley (1842-1921) - Famous People: Selected Portraits From the Collections of the Library of Congress,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71322 출처 위키백과



노예들은 흑인 영가(Spiritual)로 위장한 노래 "Follow the Drinking Gourd" (마시는 표주박을 따라가라)의 가사 속에 탈출에 필요한 지리적 정보와 행동 지침을 암호처럼 숨겨서 사용했다.


노래 가사에는 "Follow the Drinking Gourd"(북두칠성을 이용해서 북극성을 찾으라),

"When the sun comes back and the first quail calls"(겨울이 지나고 이동이 용이한 이 오면 탈출을 시작하라).

"The old man is awaiting for to carry you to freedom"(지하철도'의 차장이 특정 접선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The river bank makes a very good road"(개나 사냥꾼의 추적을 피해 강둑과 강물을 따라 이동하라) 등 이 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해리엇》은 해리엇 터브먼의 용기와 헌신을 다루며,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북극성을 노예들의 자유희망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극성


북반구 밤하늘의 모든 별은 마치 한 점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 바로 하늘의 북극이며, 이 주변의 별이 북극성이다.


망망대해를 항해하거나, 광활한 사막을 횡단할 때, 혹은 종교적 건축물을 지을 때 북극성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Star_Trail_above_Beccles_-_geograph.org.uk_-_1855505.jpg

북반구 별들이 천구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추적하면 사진과 같은 원형 궤도들을 그린다. 중심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별이 폴라리스.

By Ashley Dace,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016342

출처 위키백과



오늘날의 북극성은 폴라리스(Polaris)이다. 이 별은 작은 곰자리의 가장 밝은 별(알파성)이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 개의 별이 서로를 도는 복잡한 삼중성계이다.


이 시스템의 중심이자 가장 밝은 별인 폴라리스 A가 사실상 북극성이다.


이별은 태양 반지름의 약 37.5배에 달하는 초거성으로, 태양보다 약 1,260배나 밝다.


433광년 떨어져 있으며, 그 명성과 달리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아니고, 46번째로 밝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 한 바퀴 돌고, 이 자전축의 북쪽 연장선이 항상 폴라리스를 가리키고 있다.


폴라리스가 밤하늘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과거 북극성의 주 용도는 바로 이 북쪽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는' 특성을 이용한 북쪽 ‘방향 제시’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중심적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폴라리스가 영원히 북극성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폴라리스 자체가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지구 자전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이 약 26,000년을 주기로 팽이처럼 원을 그리며 느리게 흔들리는데, 이 때문에 지구 자전축의 연장선이 가리키는 하늘의 북극 위치가 계속 변한다.


폴라리스는 대략 서기 1세기경부터 북극성 역할을 시작했다.


현재 폴라리스는 하늘의 북극과 약 0.7∘ 정도 미세한 오차가 있지만, 2100년쯤엔 약 0.5∘까지 줄어들어 북쪽에 가장 가까워진다.


그 후엔 다시 멀어지기 시작하여, 약 2,000년 후에는 세페우스 자리의 '알라이'에게 북극성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고, 26,000년 후 다시 북극성의 위치에 복귀할 것이다.


이렇게 북극성은 특정 별의 고유한 이름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지구 자전축의 북쪽 하늘에 있는 별에게 부여되는 명칭이다.


이는 마치 시대에 따라 '바통 터치'를 하는 임기제와 같다.


Polaris_system.jpg

폴라리스 항성계를 천체 예술가가 상상하여 표현한 그림. 중앙 아래에 크고 밝은 별이 초거성 폴라리스 A이고 바로 위에 있는 작은 별이 폴라리스 Ab,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폴라리스 B

By NASA/ESA/HST, G. Bacon (STScI) - http://hubblesite.org/newscenter/newsdesk/archive/releases/2006/02/image/fen.wikipedia에서 공용으로 옮겨왔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433727 출처 위키백과



항룡유회(亢龍有悔)


주역(周易)의 '항룡유회(亢龍有悔)'는 '지나치게 높은 곳에 오른 용은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정점에서의 겸손과 퇴장의 미학을 일깨운다.


하산이 더 어렵다.


조선왕의 계보는 ‘태정태세 문단세’ 등 27명이다. 고려는 ‘태혜정광 경성목’ 등 34명이다. 헌정 이후로는 '이윤박최 전노삼' 등 14명의 대통령이 있다.


또, 중국이나 유럽 등의 수많은 왕조와 왕들이 부지기 수이다.


이들 중 피로 물든 항룡유회가 얼마나 많았던가.


하늘의 황제 북극성도 계보가 있다.


현재의 폴라리스를 시작으로 알라이, 알데라인, 데네브, 베가(직녀성), 투반, 코카브 등 7개 별이 26,000년을 주기로 돌아가면서 권좌에 앉는다.


즉, 기원전 2.800년경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는 투반 (용자리)이, 기원전 1,000년경에는 코카브 (작은 곰자리)가 북극성이었다.


그리고, 기원 직후부터 북극성이 된 현재의 폴라리스는 서기 4,000년경 알라이(세페우스자리)에게 평화로이 권좌를 이양할 것이다.


폴라리스는 북극성이 된 후, 망망대해를 건너는 항해자와, 낙타를 몰고 사막을 건너는 캐러밴과, 북쪽을 향해 가는 노예들에게 희망자유를 주는 등 자기 임무를 다했다.


GPS 등 과학의 발전은 그를 임무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고, 이제 때가 되면 야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에게 항룡유회는 없다.


당분간 폴라리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떠서 인류를 지켜보며, 26,000년 후 다음 임기 때에도 호모사피엔스와 만나기를 약속하자는 듯 하다.


과연, 우리 인류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이 만남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인류에게 온몸으로 봉사하여 자유를 주고, 자유롭게 물러날 폴라리스에게 공덕비를 대신하여, <자유의 별>(FREE STAR)라는 별호(別號)를 헌정해 보자.



노인 시대


북극성은 이제 용처를 잃었고, 그 존재조차 잊혀져 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


밤하늘의 북극성을 보노라면, 마치 '뒷방 영감님'을 보는 듯하다.


지금의 노인 세대,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그저 가정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혹은 논밭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헌신하며 국가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제, 한국의 노인 인구수가 20%(1천만 이상)를 돌파하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 이들은 '사회가 져야 할 부담'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뒷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탈무드(Talmud)에는 "늙은이가 집에 있으면 그가 바로 가정의 보배다."라는 격언이 있다.


노인 세대는 결코 능력을 잃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몸과 정신에 새겨진 경험과 근면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강력한 자산이다.


노인시대에 접어든 지금, 노인문제를 푸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혜적 접근방식보다는 노인의 장점을 활용하는 실용적 방식으로의 접근이다.


시혜적 접근은 '보여주기 식'과 '단기 일자리'가 되기 쉽다.


반면,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면 그게 바로 일자리 창출이 되는 것이다.


입대 자원이 부족하다고 한다. 한국의 노인들은 모두 군 출신들이다. 옛날 노인들과 달리 아직 과 머리를 쓸 수 있다.


행정병, 운전병, 취사병, 부대 막사 불침번, 위병초소, 청소 등 비 전투 분야에 투입할 수 있다.


이것 만으로도 노인 일자리가 십만 개는 창출된다. 병력부족 문제도 해결된다.


앞으로 더 많은 노인이 사회에 나오게 된다.


이제,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시각으로 노인문제를 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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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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