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결혼이야기-2
폭행이 시작된 이후 내 삶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때릴 수 있다는 걸 결혼 전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맞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랐던 게 바로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이 살다 보면 부딪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처음에 부부싸움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그걸 잘 이겨내야 되는데 그 사람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어느새 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생각이란 것은 점점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또다시 폭력이 시작될 테니까요.
지금은 해바라기 센터라는 훌륭한 곳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도 이런 게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 도망쳤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차피 도망칠 용기를 내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나란 사람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그 어떠한 이유로 폭력이 행사될지 몰라 작은 반응에도 움찔해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정에도 도움을 청해보았습니다. 그냥 친정으로 도망을 쳤어야 되는데... 친정을 다녀오고 나서 그날은 가장 많이 맞은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친정의 도움 따위는 바라지도 않게 싹을 자르게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날은 며칠 동안 일어나기 조차 힘듭니다.
이렇게 맞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요. 도망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겠다는 말이 너무 무서워서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어쩌면 나의 운명은 맞아 죽거나, 도망치다 죽거나 어차피 죽을 운명일 수 있겠다고요. 이 사람과 살다가는 나의 운명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요. 그 사람이 수차례 한 말들로 인해서 오히려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맞아 죽거나, 도망치다 죽거나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면 도망치다 죽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정에서 돈을 좀 얻어서 지방으로 다녔습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지방을 전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에게 이런 나의 괴로움이 전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친정엄마에게도 연락을 최소로 하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잡히면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다녔지만 마음은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맞으면서 집에 있을 때보다는 좋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쯤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소식을 엄마를 통해 전해왔습니다. 죽이러 찾아올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더면 진작에 도망칠 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말로 나를 절대 못 나가게 가둬두려 했는데 그게 실패하자 그냥 포기했던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무서워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도망갈 엄두도 못 냈었는데, 정말이지 죽을 각오로 도망친 건데, 죽이러 올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는데 말이죠. 갑자기 내려놓은 이유를 정확히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마도 폭력으로 나와 아이를 더 이상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종종 전해지는 데이트 폭력이나 살인사건을 보면 내가 얼마나 럭키했는지 깨닫곤 합니다. 그때의 공포가 떠올라 다시금 무서워집니다. 나는 다행히 죽지 않고 지독한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 폭력 속에서 살고 있거나 도망치려다 살인까지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절망감을 알기에 그들을 어찌 위로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