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기억

by 들숨

그해 가을

은행잎은 무얼 보았는지 밤새 덮었고

눈은 한사코 녹지 않았다

꽃잎은 허투루 지지 않고

비는 사흘밤낮을 씻어 냈다


다시 가을

은행잎이 나를 본다

나의 시선이 그를 뚫고 지나친다

그가 나를 본다 말없이 다독인다

눈이 무릎을 포근히 감싼다

꽃이 두 볼을 어루만지고

비가 떨리는 어깨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벌써 가을

은행잎이 보인다 그를 본다

그가 멈칫한다

기억 속 그가 아닌 기억 밖의 그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끄덕인다

그의 눈이

알고 있다 말한다

그 해 가을, 너의 기억을

샛노랗던 너의 하늘을


이 가을

네가 보인다 내가 말한다

참았던 그의 뜨거운 미소가 끄덕인다

네가 보인다

내 기억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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