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벌

by 반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 말미에 노교수가 젊은 제자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한 말이다.

개봉 당시 선정성 논란으로 청소년관람 등급을 놓고 이슈가 되기도 했었던 영화다. 영화내용 자체로도 상당히 파격적이었지만 이 한마디 대사는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 시대를 아울러 젊음과 늙음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은교와 같은 풋풋한 십 대 시절이 있다. 누군가는 지금 현재가 그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은교의 나이 몇 곱절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때는 거저 얻은 젊음이 영원히 내 것인 줄로만 알았다. 거저 얻은 젊음이라 그 소중함을 모르고 오만하게 굴었다. 거저 얻은 젊음을 쉬이 소진한 대가가 있을 줄 몰랐다.

그래서 늙음은 나의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늙음은 그 사람 본연의 것인 줄로만 알았다. 늙음은 오만하게도 벌이라 생각했다.

젊음에서 멀어져 늙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오만함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약해지는 육체는 자연의 순리일 것이나 젊다는 이유로 육체가 내지르는 아우성을 무시했다. 생로병사 중 생은 지나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노병사'만 남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젊은 시절 나름 시간 허비 없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여 안전한 둥지 속에 있지만 날개가 있어도 추락할까 봐 날아보지 못하고 안주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다 말고 아들 녀석이 물었다.

"엄마는 만약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뭘 제일 하고 싶어?"

마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은 냥 사뭇 진지하게 생각하며 답했다.

"글쎄다... 엄마는... 다시 돌아가면 공부도 미친 듯이 해보고 싶고, 여러 사람과 사랑도 미친 듯이 해보고 싶어"

단 한 번의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남편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실제 바람이라도 피운 사람 취급하여 한바탕 웃기도 했다. 미래의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겟 아웃'은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해 젊음에 대한 끝없는 인간 욕망을 공포스럽게 드러낸다. 백설공주에서도 계모인 마녀가 끝내 얻지 못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젊음이었을 것이다. 젊음은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젊음에 대한 질투와 갈망은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이고 늙음에 대한 고통과 회한도 끝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젊음의 시간들이 늙음으로 치환될수록 젊음을 잃는 대신 보상처럼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오만함은 겸손함으로, 지식은 지혜로, 욕심은 만족으로, 어설픔은 노련함으로, 채움은 비움으로, 외적인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젊음과 늙음은 보는 시점에 따라 상대적이다. 십 대라도 그보다 어린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늙은이고, 이십 대들도 십 대들 입장에서는 꼰대다. 젊은이도 늙은이가 될 수 있고, 늙은이도 젊은이가 될 수 있다.

그대는 젊은 이인가? 늙은 이인가?

연휴 기간 동안 식당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이들과 늙은 이들 사이를 걸으며 문득 자문자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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