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이라는 시간은 어른에게는 그저 계절 하나가 지나가는 기간이지만, 아이에게는 전 생애의 역사다. 우리 아이가 장염으로 열에 시달렸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깨달았다.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어른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살지만, 18개월 된 아이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열이 날 때는 그 고통이 전부이고, 웃을 때는 그 기쁨이 우주의 전부가 된다. 그런 절대적인 현재 속에서 사는 존재를 지켜보는 것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장염이 시작된 밤, 아이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마치 작은 용광로 같았다. 38도, 39도, 40도. 체온계의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시간은 더욱 느리게 흘렀다. 평소 같으면 순식간에 지나갔을 한 시간이 마치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내는 그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이의 체온을 재고,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나는 아내의 눈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피로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잠을 못 자서 생기는 피로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의 고통을 대신 감당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오는 깊은 소진이었다.
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말로 아픈 곳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울음으로, 보채는 것으로, 평소와 다른 숨소리로만 자신의 상태를 알린다. 그래서 부모는 탐정이 되어야 한다. 울음의 높낮이, 숨쉬는 패턴, 잠드는 자세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아이의 몸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추측해야 한다.
열이 가장 높았던 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작은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힘에서 나는 생명의 강인함을 느꼈다. 동시에 그 연약함도 느꼈다. 이 작은 존재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의존의 무게가 부모에게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이가 아플 때는 일상의 모든 것이 멈춘다. 회사 일도, 개인적인 계획도, 심지어 제대로 된 식사도 부차적인 것이 된다. 오직 아이의 체온, 아이의 호흡, 아이의 상태만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부모는 깨닫는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18개월 된 아이에게 시간은 순환하지 않는다. 매일이 처음이고, 모든 경험이 새롭다. 장염도 처음이고, 그 고통도 처음이다. 그래서 아이는 그 고통을 맥락화할 수 없다. "이것도 지나갈 것이다"라는 위로를 자신에게 할 수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불편함과 아픔만이 존재할 뿐이다.
반면 부모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걱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난번에는 이틀 만에 나았는데", "혹시 더 심각한 건 아닐까", "병원에 가야 하나". 시간의 화살과 원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회복되기 시작할 때의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열이 내리고, 다시 웃기 시작하고, 평소처럼 장난감에 관심을 보일 때, 세상이 다시 색깔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 부모는 깨닫는다. 아이의 건강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18개월이라는 시간은 아이에게는 전 생애이지만, 부모에게는 배움의 시간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지를 배우는 시간.
아내가 그 며칠 동안 보여준 헌신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만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성이라는 것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이라는 것을.
지금 아이는 다시 건강하다. 방을 뛰어다니고, 책장을 뒤지고, 온 집안을 어수선하게 만들며 자신만의 절대적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준비된 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