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살던 시절, 나는 자주 비를 맞으며 걸었다. 한국의 비와는 다른, 좀 더 무거운 비였다.
회색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마치 이 거대한 도시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난징동루의 네온사인들이 젖은 아스팔트에 반사되어 일렁인다. 중국어가 섞인 소음들, 자동차 경적소리, 그리고 어디서든 들려오는 공사 소리. 상하이는 언제나 무언가를 부수고 다시 짓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였다.
아파트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어제까지 있던 건물이 오늘은 사라져 있고, 새로운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뿐이었다.
동네 작은 국수집에서 먹던 작은훈둔을 지금도 기억한다. 할머니 한 분이 혼자서 운영하던 그 작은 가게. 나는 중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몸짓과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언어를 뛰어넘는 따뜻함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푸둥으로 가던 길. 창밖으로 보이는 황푸강은 언제나 탁했다. 그 탁한 물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 도시의 솔직함 같았다.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은 날것의 모습. 그것이 상하이의 매력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위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프랑스 조계지 시절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그 거리에서.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관광객들, 현지인들, 그리고 나 같은 외국인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있었다.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외탄을 걸었다. 강 건너편 루자쭈이의 마천루들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렸던 이 도시가 이제는 미래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데 섞여 있는 곳.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복잡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던 도시를 나는 왜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 혼란 속에서 느꼈던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의 완전한 익명성. 매일 새로운 발견이 있던 그 시간들.
지금 서울에서 상하이의 비를 떠올린다. 그 무거운 빗방울들이 내 어깨를 적시던 감촉을. 그리고 그 비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이 도시의 활력을.
어쩌면 우리는 모두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설령 그곳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상하이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완전했던 시간들의 무대.
지금도 가끔 꿈에서 나는 상하이의 좁은 롱탕을 걷고 있다. 빨래가 걸린 골목길을, 자전거 벨소리가 울리는 거리를. 그리고 깨어나면 이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도 괜찮다. 기억 속의 상하이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테니까.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