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스위스! 2005년 룽게른과 2019년 루체른

[스위스] 미리 가본 ‘사랑의 불시착’ 엔딩 장소와 리기산의 화창한 운해

by Keeper of HOPE

21번째 나라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Italia)로 가면서 들렀던 스위스(Suisse)다. 2005년 12월 29일 오전 일찍 파리 동역(Gare de l'Est)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알프스 룽게른(Lungern)으로 향했다. 프랑스 국경도시 뮐루즈(Mulhouse)에서 스위스행 기차로 갈아탔는데, LGV Est(프랑스 동부 고속선) 개통 이전이었기 때문에 앞서 디종(Dijon)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추천 루트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와 콜마르(Colmar)를 거치도록 하는데, 당시에는 이 도시들이 유명 관광지인지 전혀 몰랐다. 어떤 루트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4~5시간이 걸려서 뮐루즈에 도착했고, 뮐루즈에서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스위스 바젤(Basel)에 도착했다. 바젤역에서 입국심사를 마친 뒤 버스를 이용해서 룽게른으로 이동했다.


20051229 Basel Switzerland001.jpg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여정에 들른 스위스 바젤역 광장. 2005년 연말 풍경이다.




프랑스나 스위스나 눈이 수북하게 쌓여 온통 하얀 전경이 이어진다. 기차를 타고 올 때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버스에 오른 뒤부터는 제법 굵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자는 익숙한지 궂은 날씨에 개의치 않고 편안하게 차를 운행한다.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룽게른 호수 주차장에 도착했다. 눈이 엄청나게 쌓여서 마치 집들이 절반 정도는 잠긴 듯 보인다.


룽게른은 인구 2100명 안팎의 시골 마을이다. 2005년에는 2000명이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해발 750m로 옵발덴주(Obwalden)에서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룽게른 호수의 동편과 해발 1008m인 브뤼닉 고개(Brünig Pass)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만 오픈돼 있고, 나머지 3면은 나무가 우거진 가파른 경사와 암석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비경을 뽐내고 있다.


룽게른의 지명은 13세기에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1861년에는 브뤼닉 고개를 통과하는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접근성이 쉬워졌다. 1888년 브리엔츠에서 현재 알프나흐까지 철도가 개통됐고, 1942년 브뤼닉 고개 철도가 전철화됐다. 2019년 연말 방영한 우리나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엔딩 장소로 알려진 호수와 예쁜 산세가 작은 시골 마을을 유명 관광지로 만들었다.


20051229 Lungern003.jpg 2005년 12월 스위스의 룽게른 호수. 초기 디카 시절이라 화질이나 사이즈가 아쉽다.



케이블카와 리프트로 해발 2002m의 쉔뷔엘(Schönbüel)에 올랐다. 연말연시를 포함한 한겨울 유럽여행이었지만, 이탈리아에 초점을 맞춘 터라 앞서 런던 편에서 밝혔듯이 파카 없이 가벼운 외투 몇 벌을 겹쳐 있고 있었다. 룽게른에서 투렌(Tureen)까지 케이블카로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케이블카 내부는 넓지 않았던 것 같고, 마침 다른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투렌에서 쉔비엘까지 가는 체어리프트였다. 상반신은 그럭저럭 투명 플라스틱이 커버했으나 하반신은 외부에 노출된 상태였다. 제대 후 그런 추위는 처음이었다. 올라가면서 이미 내려올 일을 걱정할 정도였다. 출국 전 여행사에 문의해서 분명 두툼한 옷보다 가벼운 외투를 여러 벌 챙기는 게 낫다는 점을 확인했으나, 한겨울 해발 2000m를 간과한 대가는 냉혹했다.


사진을 찍는데 집중해서 추위를 잊어보려고 했으나 어림없는 시도였다. 케이블카에서는 몇 컷을 찍었으나 리프트에서는 손발이 떨려서 사진도 몇 장 찍지 못했다. 참고로,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디지털카메라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필카 시대의 루틴 때문인지 초기에는 비용 부담이 없었음에도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디카 사진은 갈수록 많아졌다.


아무튼 짧은 10 몇 분의 고생 끝에 쉔비엘에 도착했다. 짐짓 괜찮은 척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컷 찍었으나 추위에 움츠러들어 올라온 어깨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냉기가 몇 겹 옷을 뚫고 가슴으로 스며든다.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벙거지 모자에 점퍼에 딸린 모자까지 겹쳐 쓰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 날씨는 흐렸고, 스키를 타는 이들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20051229 Lungern Switzerland004.jpg
20051229 Lungern Switzerland005.jpg
해발 2000m가 넘는 룽게른 쉔비엘과 마을 전경. 눈 덮인 스위스의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다시 리프트에 올랐다. 군생활 중에도 입지 않은 속옷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내려간다. 이십 호나 될까 싶은 작은 마을이 눈에 푹 잠겨있다. 분명 문을 열지는 못할 테고, 창문도 윗부분만 보인다. 교회당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은 지대가 높은지 그나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눈 위에 엎드려 장난을 치는 스키어 커플의 다정함에 괜스레 심사를 부리고 싶다.


그래도 온통 흰 눈에 덮인 산세가 멋진 설경을 뽐내고 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눈발이 날려서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기도 했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눈 덮인 겨울의 룽게른 호수를 차분히 눈에 담았다. 주변으로 눈이 쌓여있었지만, 푸른빛의 스위스 호수를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이었다면, 더 짙은 에메랄드그린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려가자마자 저녁식사를 위해 호텔로 이동했다. 따뜻한 실내로 뛰어들 듯 들어갔다. 몸을 녹이면서 먹는 퐁뒤(fondue)의 풍미가 일품이다. 추위에 시달린 끝이라 그랬는지 평소 별로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룽게른 여행 이후였던 것 같은데, 유명 피자브랜드에서 ‘퐁듀피자’를 출시했고, 치즈바이트 야채피자를 주문해서 열심히 찍어먹은 기억이 있다.


map022_Lungern.jpg 룽게른은 에메랄드 초록빛의 룽게른 호수를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쉔비엘은 호수 서편에 자리잡고 있다.(구글지도)


[룽게른 MTA] 룽게른 호수, 브뤼닉 고개, 오래된 교회 탑(Alter Kirchturm), 쉔비엘




20191231 Luzern Swiss005.jpg
20191231 Luzern Swiss003.jpg
스위스 루체른을 상징하는 길이 204m의 지붕 있는 다리 카펠교(좌)와 높이 6m의 거대한 조각상인 빈사의 사자상(우)


그리고 14년이 흐른 2019년, 이번에도 12월이다. 새해를 유럽에서 맞았다. 12월 둘째 주 독일로 들어가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했다. 책의 취지에 맞게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서른 번째 이후 여행국가로 소개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 연말에 여행한 루체른(Luzern)은 룽게른에서 36km 떨어진, 희곡 ‘윌리엄 텔(Wilhelm Tell)’의 도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집에서 2박을 한 뒤 혼자 비행기로 포르투갈로 이동, 포르투(Porto)와 리스본(Lisbon, Lisboa)을 여행했다. 이어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들어가서 스페인을 한 바퀴 돌아 마드리드(Madrid)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이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를 거쳐서 2019년의 마지막 일몰을 스위스 루체른에서 보는 총 3주간의 여행 일정을 잡았다.


점심시간을 넘겨 렌터카로 루체른 숙소에 도착했다. 서둘러 점심을 해결한 뒤 바로 시내투어에 나섰다. 루체른을 대표하는 슈프로이어교, 카펠교, 워터타워, 무제크성벽, 빈사의 사자상, 예수회성당을 거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저녁 투어를 시작해서 호프교회, 시청사 등을 거쳤다. 다음 날엔 루체른 호수(Vierwaldstättersee)를 가로질러 리기산(Mount Rigi) 정상에 올랐다.


루체른의 상징 카펠교(Kapellbrücke)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 있는 목조다리다. 1333년 로이스강(Reuss River) 위에 만든 지그재그형 보행자용으로 원래 270m였으나 화재로 일부 소실되면서 204m가 남았다. 지붕 아래로 삼각형 그림 100여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408년 완공한 슈프로이어교(Spreuerbrücke)는 80m 길이로 역시 67점의 삼각 목판화가 이어진다.


도보 여행을 택했다. 9개의 탑으로 연결된 무제크 성벽(Museggmauer) 내부엔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넓게 경사진 잔디밭을 성벽으로 두른 듯하다. 루체른의 또 다른 상징 빈사의 사자상(Löwendenkmal Luzern)은 프랑스혁명 당시 튀를리 궁(Palais des Tuileries)에서 마지막까지 루이 16세를 지키며 산화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높이 6m의 거대한 조각이다.


20191231 Luzern Swiss010.jpg
20191231 Luzern Swiss013.jpg
20191231 Luzern Swiss007.jpg
루체른의 야경. 왼쪽부터 구 시청사, 로이스강에서 바라본 무제크 성벽, 카펠교 내부에 걸린 삼각형 그림


해가 지고 숙소에서 가까운 곳부터 다시 되짚기 시작했다. 낮에 지난 슈프로이어교와 예수회성당(Jesuitenkirche Luzern), 카펠교를 야경으로 다시 관광한 뒤 로이스강과 루체른 호수가 만나는 카펠교 인근부터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유람선 터미널과 유명 호텔, 명품 상점가를 지났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이래서 루체른이구나 감탄하면서 호프교회와 시청사까지 거쳤다.


첫날이었지만,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생길 정도로 좋았다. 다 예뻤지만 카펠교와 슈프로이어교는 대충 찍어도 예쁜 사진이 나올 정도로 멋진 야경을 만들어냈다. 현지인들은 부지런히 걸어서 지나는데, 좀 괜찮다 싶은 그림 밑으로는 어김없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대기하고 있다. 불에 그을린 서까래와 들보도 눈에 띄었다. 다리에서 바라본 시내 야경이 아름다웠다.


20191231 Luzern Swiss014.jpg 루체른역 구 역사 정문 아치 위에 새겨진 조각상 ‘시대정신’. 신구 역사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은 토르보겐(Torbogen)에서 시작했다. 1896년 건축한 루체른 역사 정문 아치 위 리하르트 키슬링(Richard Kissling)의 조각상 ‘시대정신(Zeitgeist)’으로 유명하다. 1971년 화재로 역이 소실될 때 살아남은 아치를 새 역사 앞에 세워두고 있다. 바로 옆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50분을 가면 비츠나우(Vitznau)에 도착한다. 리기산 길목이다.


리기산 쿨름을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톱니바퀴 열차로 30분 정도를 오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리기 쿨름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안내가 독일어, 영어, 중국어와 함께 적혀있었다.


한겨울 리기산은 정말 하얗다. 통나무집 언덕 너머로 산봉우리 사이를 마치 호수나 눈밭처럼 구름이 덮고 있다. 보트나 스키를 타고 건너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20191231 Luzern Swiss019.jpg 리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알프스 풍경. 구름이 마치 호수 위에 쌓인 눈밭처럼 보인다.


구름 넘어 산등성이를 지나서 저 멀리 제법 높은 지대에도 호수가 보이고, 주변으로 많은 집들이 있다. 사방 어느 곳으로 카메라를 내밀어도 탁월한 경치들이 이어진다. 태양빛이 좋아서인지 구름 바로 위 지역에 마을과 집들은 또렷이 보이고, 바로 밑 지역은 구름에 쌓여 보이지 않는다. 망망운해(茫茫雲海). 말 그대로 구름바다, 구름평야가 수평선, 지평선처럼 펼쳐진다.


리기산쿨름호텔 커피숍 야외테라스에서 따뜻한 카페라테와 간단한 메뉴를 주문했다. 한겨울 알프스산 꼭대기인데도 빈자리를 찾기 위해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어느새 구름 위로 2019년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왔다. 열차로 내려오다가 중간에 케이블카로 바꿔서 탔던 것 같다.


20191231 Luzern Swiss023.jpg 2019년의 마지막 일몰을 장식한 리기산 정상.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비츠나우로 내려오니 다시 안개가 자욱하게 흐린 날씨가 펼쳐진다. 여객선터미널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구글맵을 확인하면서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부지런히 따라 갔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루체른 호수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안개가 없었다면 더 예쁜 풍경을 볼 수 있었겠지만, 그 안개 덕분에 리기산 정상의 운해를 볼 수 있었을 게다. 어차피 다 좋을 수는 없다.


map022_Luzern.jpg 루체른은 ‘네 개의 숲을 가진 호수’라는 뜻의 루체른 호수 서쪽으로 자리잡고 있다.(구글지도)


[루체른 MTA] 루체른 호수, 카펠교, 슈프로이어교, 빈사의 사자상, 무제크성벽, 예수회성당, 물의 탑(Wasserturm), 스위스 교통박물관(Verkehrshaus der Schweiz), 성 레오데가르 성당


#스위스 #룽게른 #뮐루즈 #디종 #스트라스부르 #콜마르 #바젤 #브뤼닉고개 #사랑의불시착 #쉔뷔엘 #포르투 #리스본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루체른 #슈프로이어교 #카펠교 #목조다리 #삼각목판화 #워터타워 #무제크성벽 #빈사의사자상 #예수회성당 #호프교회 #루체른호수 #리기산 #토르보겐 #시대정신 #Zeitgeist #비츠나우 #망망운해 #2019년마지막일몰

keyword
이전 20화‘3개의 개선문’ 프랑스 파리를 하루만 여행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