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이탈리아2] ‘폼페이 연인’의 비밀과 세계3대 미항의 ‘달걀성’
2005년의 마지막 날,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는데, 빨간색 1인용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와이퍼는 하나였고, 흙탕물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양쪽 문은 프레임에 천을 씌운 정도였다. 창문은 비닐로 된, 4륜 모터사이클에 가까운 자동차였다. 2012년부터 우리나라의 르노삼성이 생산한 트위지(TWIZY)와 비슷한 형태였는데, 당시엔 매우 깜찍해 보였다.
인파가 몰리기 전에 23번째 나라 바티칸(Vatican City State) 공략에 나섰다. 로마시 한복판에 있는 바티칸은 면적 0.44km²에 인구는 수백 명에 불과한, 전 세계 주권 국가 중 가장 작다.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 왕국과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을 체결하면서 이탈리아 왕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이탈리아 수상이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였다.
참고로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당하고 파시즘을 주도한 무솔리니는 1922년부터 이탈리아 총리였는데, 공식 칭호는 “정부 수반이자 파시즘의 두체이며 제국의 설립자이신 불세출의 베니토 무솔리니”였다고 한다. 공산주의자의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해 검열의 필요성을 선전했으며, 기독교정당인 이탈리아 인민당의 도움에 이어 라테라노 조약으로 가톨릭의 지지를 확보했다.
바티칸은 성 베드로 광장과 성당을 시작으로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 교황을 선출하고,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과 정원이 유명하다. 성벽을 따라 줄이 길게 이어져서 입장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막상 들어가 보니 정원과 광장을 빼면 실내에서 이동하는 듯하다.
바티칸 전용 가이드가 등장해서 상세하게 안내하기 시작한다. 실내로 들어가니 로마를 상징하는 대리석상이 복도 양 옆으로 진열돼 있다. 팔각정원에 도착하니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Belvedere)’ 앞에 인파가 몰려있었고, 인근 조각상인 ‘메두사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와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이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사진으로 봤던 ‘에페소의 아르테미스(Artemis of Ephesus)’는 복제품이라고 하는데, 다산을 상징하는 젖가슴이 10개 넘게 형상되고 있다. 실내로 이동하는 동안 천장과 벽면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림과 지도가 이어진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는 ‘아담의 창조’를 비롯한 창세기의 아홉 점의 장면이 그려져 있고, 구약의 네 장면이 등장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 최대 성당 건축물이다. 초기 설계자인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를 필두로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등 당대의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했으며, 수차례 설계 변경을 통해 완성한 건물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예술품과 장식으로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가톨릭 성당의 최고등급인 대성전(Major Basilica)인데, 재미있는 점은 가톨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 교구의 주교좌성당(Cathedral)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고, 로마 시내에 있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이라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교황좌(성좌)를 갖춘 라테라노 대성당이 으뜸, 성 베드로 대성당은 다음으로 꼽힌다.
쟁쟁한 예술품들을 지나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상 피에타(Pietà)에 도착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로 성모 마리아의 담담한 모습이 처연하다. 울고 있지 않았으나 눈을 감은 채 무릎에 아들의 주검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표정을 보니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탁월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3대 거장이 이끈 르네상스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예술적 전성시대가 아니었을까.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니 생각만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구석 하나 빼놓을 곳 없이 완성도 높은 예술성이 돋보인다. 베드로가 처형당한 장소에 세워진 25.5m의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열주랑, 그리고 그 위 난간에 조각된 역대 교황과 성인 조각상 140개가 빗발이 날리는 흐린 날씨를 뚫고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을 나와서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로 향했다. 도중에 익숙한 포스터가 보인다. ‘Lady Vendetta.’ 우리나라 영화 ‘친절한 금자씨’였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들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반갑다. 크고 작은 광장이 많았고, 복판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와 탑들도 눈에 띈다. 산탄젤로성(Castel Sant'Angelo)과 다리, 판테온을 지나니 익숙한 분수가 나온다.
이영애라는 세계적인 배우가 등장하는 포스터를 이제 막 보고 왔으나 트레비 분수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단 한 명의 여배우를 떠올린다.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그녀를 ‘세기의 연인’으로 만든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인지 분수 주변 골목으로 젤라토 상점들이 많았고,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는 이들도 많았다. 전체 장면을 담을 만한 사진 촬영조차 쉽지 않았다.
트레비 분수의 인파에 시달리는 동안 소매치기에 대한 주의를 여러 차례 받았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친절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인파를 뚫고 양편을 오가며 폴리 궁전(Palazzo Poli) 앞 무대 같은 분수 사진을 찍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역시 로마에서 가장 멋지다는 분수였다.
다음 장소는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이었다. 광장 너머로 ‘조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a Vittorio Emanuele II)이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다. 로마제국 시대 이후 최고의 중심지였던 카피톨리누스 언덕 북쪽에 세운 기념관은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hor) 같은 국가의 상징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1885년 건축을 시작한 이래 쟁쟁한 조각가들을 투입해서 1935년 완공한 기념관이었다. 가이드는 전쟁기념관이라고 했는데,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아닌 것 같았다. 국가를 상징하는 문으로 만들기 위해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을 따라 거대한 기념관을 설계했고, 무솔리니가 잠시 파시즘의 상징으로 활용했으나 패전 후 연합국에 의해 관련 장식들이 모두 폐기된 역사가 있다.
기념관 왼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조금 걸어가면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나온다. 로마 구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고대 로마 시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 Julius)가 대대적으로 개축작업을 일으킨 곳이다. 유수의 OTT서비스에서 볼 수 있는 로마 시대 영화, 드라마의 주요 무대인데, 지금은 폐허로 남았다.
그리고 나타난 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콜로세움(Colosseum)이었다. 어느새 석양이 내리고, 공사 중인지 콜로세움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다. 4층짜리 거대한 타원형 극장이 조명을 받아 로마와 이탈리아의 상징, 유럽의 랜드마크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사진을 찍기 바쁘다. 사진을 찍는 동안 주변이 어둠으로 뒤덮인다. 2005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바티칸 MTA]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광장과 성당, 사도궁, 바티칸 정원
[로마 MTA] 500인 광장(친퀘첸토),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로마 판테온(Pantheon), 로마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 포로 로마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공화국 광장,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카라칼라 욕장, 퀴리날레 궁,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2006년 새해 첫날은 나폴리(Napoli), 폼페이(Pompeii), 소렌토(Sorrento) 방문이었다. 3개 도시를 묶었으나 폼페이 당일치기에 가까운 코스였다. 서기 79년 8월 24일 발생한 베수비오산의 화산 대분화로 ‘폼페이 최후의 날’이 닥쳐왔고, 골목골목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멸망 이후 1400년이 지난 1592년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유적이 발견됐다.
로마 숙소에서 버스로 이동했는데, 3시간 넘게 달렸다. 1월 1일이었으나 눈은 내리지 않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차장 밖으로 안개가 뒤덮인 풍경이 이어졌고, 1월답지 않은 초록빛 언덕과 그 너머 높지 않은 산들이 왠지 정겨웠다. 출발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아 휴게소를 들렀고, 이후 2시간반을 더 달려서 여전히 유적의 3분의1이 땅속에 남아있다는 폼페이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인 줄 알았다. 바로 앞으로는 누군가 살고 있는 푸른빛 정원이 보였고, 언덕 위쪽으로 철거 중인 마을의 집들처럼 무너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무너진 채로 있었으나 과거 방문한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산꼭대기나 이후 여행한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의 리브니차 요새(Ribnica Fortress)의 무질서한 무너짐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기획한 무너짐이었다.
폼페이는 로마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도시국가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세워진 성벽이 있었고,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전설과 얽혀있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폼페이를 가자고 하면 사람들이 거주하는 신시가지로 간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폼페이 발굴지(Scavi di Pompei)로 폼페이역이 아닌 스카비디폼페이역에서 내려야 한다.
사망한 로마인 화석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열’돼 있다. 엎드러진 사람, 누워있는 사람, 쭈그려 앉은 채 사망한 사람…. 특히 끌어안은 모습으로 발견돼 ‘폼페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유해는 이후 모두 남자로 밝혀졌고, 우연히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압력에 의해 광물로 만들어진 화석이 아니라 거푸집처럼 시체가 있던 공간에 석고를 부어 만든 일종의 석고상이다.
넓고 좁은 도로가 계획도시처럼 갖춰졌고, 카리굴라 개선문, 폼페이 포룸, 루파나(Lupanar), 원형극장, 체육관, 목욕탕, 식당 등 여전히 도시로서 기능할만한 대부분을 갖춘 점이 인상적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가 있었고, 외설적인 그림들이 나오는 홍등가도 있었는데, 누군가 쳐다볼까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서둘러 지나야 했다.
나폴리와 소렌토는 지나다 잠시 들른 정도였다. 폼페이에서 소렌토로 향했으나 시간이 부족한 탓에 도시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도시 전경이 잘 보이는 언덕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자 세계 3대 미항인 나폴리에서는 ‘달걀성’으로 불리는 고대 요새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를 볼 수 있었다.
[폼페이 MTA] 포르타 마리나, 에세드라 광장, 안피테아트로 광장, 아폴로 신전, 테아트로 그란데, 테아트로 피콜로, 테르메 스타비안, 카사 델라 베네레, 안피테아트로, 카사 델 파우노
[나폴리 MTA]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 카스텔 델로보(The Egg Castle), 스파카 나폴리(Spaccanapoli), 산 카를로 극장(Royal Theatre of Saint Charles), 누오보 성(Castel Nuovo - Maschio Angioino), 나폴리 왕궁(Royal Palace of Naples), 산세베로 예배당(Museo Cappella Sansevero), 지하도시 소테라타(Underground Naples), 카타콤베 디 산 제나로(Catacombe di San Gen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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