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나라’ 뉴질랜드, 이젠 볼 수 없는 리스타트몰

[뉴질랜드1] 대지진 상흔 남긴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과 압도적인 풍경

by Keeper of HOPE

25번째 나라 호주 시드니에서 26번째 나라 뉴질랜드(New Zealand)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걸렸다. 바로 옆 나라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을 비행했다. 다만 두 나라의 시차로 인해 2시간을 절약하면서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도착한 상황이 됐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제2의 도시이자 남섬의 최대 도시였다.


뉴질랜드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인구는 4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참고로 뉴질랜드에서 거의 유일한 대도시는 인구 146만명의 옛 수도 오클랜드(Auckland) 하나뿐이다. 수도인 웰링턴은 22만명으로 우리나라 경주보다도 인구가 적은 도시였다. 공항 인근 호텔을 예약했는데, 호텔 찾기가 어려웠다. 전화를 했으나 뉴질랜드 영어는 거의 외계어 수준으로 이해가 어려웠다.


공항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거리였음에도 한참을 걸려서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종업원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어 듣기 능력이 부족한 탓이 우선일 테고, 그 종업원의 억양이 뉴질랜드인 중에서도 유독 억양이 강했던 것 같다. 다행이 호텔은 매우 깨끗하고 시설이 잘 돼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곧바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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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국제남극센터. 알찬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다.


2017년 4월 13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은 곳에 국제남극센터(International Antarctic Centre)가 있었다. 얼음을 떠올리게 하는 옅은 회색 외벽에 펭귄 그림과 조형물들이 많다. 내부에는 우리나라의 남극조약 가입 명패와 탐험 현장을 재현한 시설과 장비, 펭귄을 비롯해서 바다사자, 물개 같은 해양동물의 박제 모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스톰체험실에 들어갔다. 영하 8도에서 시작하는데 조명이 어두워지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바람이 쏟아지며 영하 18도까지 내려간다. 체험시간이 3분 정도로 길지 않아서 그렇게 춥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2017년 당시에는 100년 전 입었을 법한 점퍼와 방한화를 제공한다. 남성은 파란색, 여성은 붉은색이었다. 최근엔 훨씬 세련된 패딩을 제공하는 것 같다.


탐사선을 타고 남극의 자연과 서식 동물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4D 영화관 얼음항해(ICE VOYAGE)는 특수안경을 끼고 들어간다. 사진도 영상도 찍을 수 없어서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부모와 함께 나오는 신난 표정의 아이들이 모습은 생생하다. 신장이 30cm 정도인 리틀블루펭귄이 수영하는데, 한 녀석은 오른쪽 플리퍼(flipper)만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4륜 장갑차 같은 수륙양용차 헤글런드(Hagglund)에 올랐다. 15분 정도 덜컹거리며 센터 인근을 돌아보는데, 양손에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앉아서도 균형 잡기 힘들 정도로 차량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남극 현장을 단시간에 경험시켜주기 위해 설계한 코스 같았다. 짧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태극기가 그려진 차량 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센터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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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를 방문한 2017년은 대지진 이후 복구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리스타트몰에 잔디 깎는 남성 인형


호주는 지인 덕분에 운전을 제공받아 여행했지만, 뉴질랜드는 달랐다. 남섬 구석구석을 다니려면 렌터카가 필요했다. 검색해둔 업체를 찾았는데, 그냥 호락호락하게 빌려주지 않는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일단 운전을 한 번 해보라며 차량 왼편에 앉는다. 오른쪽 좌석에 앉아서 왼손으로 기어를 넣으려니 영 어색하다. 무엇보다 도로 왼쪽으로 운전하는 게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차량을 빌려서 공항 인근에서 도심으로 향했다. 철조망이 미로처럼 세워진 어느 주차코너에 겨우 주차한 뒤 크라이스트처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기억의 다리(Bridge of Remembrance)로 향했다. 거대한 아치형 석조문이 마치 무너진 교회당의 문틀마냥 서있다. 2년 뒤 방문한 스위스 루체른역 구 역사 정문보다도 더 황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어 리스타트몰(Re:START Mall)을 찾았다. ‘컨테이너몰’이라 불릴 정도로 그냥 컨테이너를 쌓아 임시로 조성한 쇼핑몰이었다. 원색과 파스텔톤 컨테이너들이 번갈아가며 2층 정도로 쌓여 있었고,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재난 극복 의지를 상징하는 곳이었는데, 이듬해 도심 재건이 진행되며 폐쇄됐고, 현재 새로운 상업지구가 조성됐다고 한다.


참고로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영국보다 더 영국 같은 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2011년 2월 대지진 이전까지는. 빅토리아풍의 건물들은 모두 쓰러졌고, 도심은 폐허가 됐다. 같은 해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덜 주목받았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고 현재까지도 복원 중이다. 대지진 이후 6년이 흘렀으나 도시 곳곳에 폐허의 흔적이 여전했다.


다시 걸어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을 찾았다. 미디어를 통해 봤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당 한 쪽이 무너진 채로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새 건물의 철골인양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으나 사실 지붕과 벽이 더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다. 잡목 무성한 사이로 방치된 듯한 십자가와 조형물의 꼿꼿함에서 크라이스트처치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 MTA] 국제남극센터,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기억의 다리, 크라이스트처치 아트센터, 해글리 공원, 타마키 헤리티지 빌리지(Tamaki Heritage Village), 트램


map027_christchurch02.jpg 크라이스트처치의 주요 관광지가 몰린 도심. 2017년에 2011년 대지진 여파로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은 상태였다.(구글지도)




강변이 정돈된 에이번 강을 따라 주차된 차량으로 돌아왔다. 주차비가 비싸다. 다음은 3시간 이상 달려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별이 잘 보인다는 테카포 호수(Lake Tekapo)로 가야 한다. 남성 중앙에 험준한 고원지대로 북유럽의 알프스를 닮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정신줄을 가다듬고 차량을 왼편으로 몰아간다. 도심을 벗어나니 끝없는 농경지가 이어진다. 중간에 비가 왔다.


뉴질랜드 남섬은 고속도로가 거의 없다. 대신 신호등도 거의 없다. 신호등일 필요한 곳은 거의 회전교차로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도 오른편으로 돌아야 한다. 남섬은 거의 국도였다. 왕복 2차선, 사실상 단일 차선이다. 맞은편에서도 차량이 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깜빡 실수하면 오른편 도로을 올라타기도 한다. 뭔가 편하지 않아서 두어 시간 만에 작은 마을을 들렀다.


남 켄터베리지역 안내판이 있는데 6개 언어 중 당당히 우리 한글이 있었다. 역시 안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비를 피하고 군것질을 한 뒤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곳들을 물색했으나 비가 내려 날이 흐린데다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서 억지로 몇 컷을 찍은 뒤 다시 렌터카에 올랐다. 1시간 정도 달리니 테카포 호수의 숙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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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카포 호수는 국제 밤하늘 보호 구역(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으로 지정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별이 잘 보이는 호수로 유명하다.


이미 밤이다. 사방이 어두웠고, 도시의 조명이나 야경도 기대할 수 없다. 숙소 앞이 호수였지만 작은 파도와 물소리만 확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 형태의 숙소였는데, 매우 깔끔했다. 직접 조리해서 식사해야 했는데, 설거지를 마치니 졸음이 쏟아진다. 호숫가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는데, 푹 자고 일어나니 밖이 환하다. 해는 뜨지 않았고, 호수 끝도 보이지 않는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숙소 주변을 거닐고 있었고, 숙소를 즐길 새도 없이 테카포 호숫가에서 유명한 선한목자교회(the church of the good shepherd)를 찾았다. 장의자가 네댓 줄 있었고, 설교단 뒤편으로 호수와 산을 조망할 수 있는 프레임을 담은 창문이 멋진 벽돌 교회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멋졌을 테지만, 안개 속 테카포 호수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선한목자교회는 맥킨지 분지에 1872년 세워진 세인트 패트릭 교회에 이어 1935년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다. 성공회, 장로회, 천주교 개척자들의 협력으로 세웠다는데, 크라이스트처치를 건축한 R.S.D 허먼(Harman)이 지역 예술가 에스더 호프(Esther Hope)의 스케치를 보고 설계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다. 인근에 ‘양치기 개 청동상’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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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교회는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교회로 유명하다. 호수와 산을 조망할 수 있는 프레임을 담은 창문이 멋지다.




차로 30분 정도를 달리니 푸카키 호수(Lake Pukaki)가 나온다. 뉴질랜드의 호수는 다 예쁘다. 그렇다고 스위스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았지만 호숫가 주변을 절경이라고 하기엔 다소 밋밋하다. 어느새 날이 조금씩 개면서 호수 건너편의 산봉우리가 보인다. 테카포 호수가 남섬에서는 제일 크다고 했는데, 푸카키 호수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호수가 계속 나온다. 인가도, 차량도 드물다. 참 심심하겠다. 다시 30분 이상을 달리니 아오라키/마운트쿡 국립공원의 인기 산책로 후커 밸리(Hooker Valley)가 나온다. 5km 정도로 거리가 짧고 높이도 100m라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코스였지만, 박물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주 출신의 여성 산악인 프레다 뒤 포르(Freda Du Faur) 실물 크기 모형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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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라키/마운트쿡 국립공원의 인기 산책로 후커 밸리 진입로. 빙하가 지나면서 만든 듯한 퇴적지형들이 눈에 띈다.


뉴질랜드 남섬의 가을은 호주 시드니보다 한 달 이상 빠른 것 같았다. 기온이 낮았고, 낙엽은 이미 늦은 가을을 나타낸다. 등산객도 많지 않다. 낮 시간이었지만 테아나우 호수(Lake Te Anau)로 출발할 시간이다. 제법 거리가 멀었고, 숙소 측에서 요청한 시간도 맞춰야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과일가게(Jones's Fruit Stall)를 들른 뒤 다시 오랜 시간을 달렸다.


사실 테아나우 호수는 이후 여행할 퀸스타운(Queenstown)과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이 있는데, 퀸스타운에서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일정을 고려해서 방문 순서를 바꿨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진 다음에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 낡았지만 넓고 매우 깔끔했다.


[뉴질랜드 남섬 호수 MTA] 테카포 호수, 선한목자교회, 양치기개 청동상, 푸카키 호수, 후커밸리


map028_뉴질랜드 남섬.jpg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테카포 호수와 아오라키/마운트쿡 국립공원을 지나 테아나우 호수로 향했다.(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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