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달러짜리 국제버스로 24시간 만에 도착한 이스탄불

[튀르키예] 그리스-루마니아-불가리아 묶어 여행… 혈맹의 각별한 한국사랑

by Keeper of HOPE


19980416 Istanbul Türkiye002.jpg '아야소피아' 성소피아대성당. 537년 건축 이후 1000년 간 세계 최대 성당이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에 등재됐다. 방문 당시 박물관이었으나, 2020년 모스크로 재전환됐다.


1998년 봄.


네 번째 나라는 튀르키예(Türkiye)였다. 당시엔 터키(Turkey)라고 불렀다. 변변한 여행책자도 없고, 인터넷으로 손쉽게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버스여행을 따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정보를 얻고, 모험심을 발동해 시작한 여행이었다.


몰도바 코우셰니(Causeni)에 거주하면서 매달 서너 차례 키시너우(Kishinev)를 방문했다. 그날은 4월 1일이었다. 키시너우 중앙역 앞 광장 인근에서 미국인 친구 조지(George)가 일을 보는 동안 혼자 어슬렁거리다가 몰도바에서는 보기 힘든 깨끗하고 현대적인 버스를 발견했다.


눈에 띈 건 목적지였다. 떡하니 ‘이스탄불(Istanbul)’이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국제버스. 궁금한 마음에 사무실로 들어가서 문의했다. 24시간쯤 소요되고, 차비는 미화 40달러 정도였다. 싸다. 그렇게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까지 묶어서 1인 여행을 시작했다.


1주일 후 40달러짜리 티켓을 쥔 채 꿈에 부풀어서 혼자 집을 나섰다. 키시네프로 이동해서 그 깨끗한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첫 관문인 루마니아 국경에서 발목이 잡혔다. 세관 직원은 한국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로 돌아왔다.


다시 1주일이 지난 15일 오전 같은 버스에 올랐다. 1주일 전 루마니아 입국에 실패했던 알비타(Albita) 국경을 넘을 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이번엔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 허용 사실을 아는 직원이었다. 무사히 국경을 넘었고, 이어진 차창 밖의 풍경은 몰도바와 다르지 않았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수도 부쿠레슈티(Bucharest)에 도착했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 무렵 도나우강 인근 지우르지우(Giurgiu)에 도착했다. 국경수비대 루마니아 군인들은 동양인이 신기한 듯 “브루스 리”를 외쳤다. 손사래 쳤지만, 괜히 가슴과 팔뚝에 힘을 주고 있었다.




19980416 Istanbul Türkiye003.jpg '블루모스크'로 유명한 술탄아흐메드. '아야소피아'와 함께 이스탄불 건축물을 대표한다. 튀르키예 친구들과 함께 찍었다.


맞은편 불가리아 국경 도시는 루세(Ruse)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입국심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신기한 눈빛이 쏟아진다. 그냥 씩 웃어주니, 같이 빙그레 웃으며 입국도장을 찍어줬다. 버스는 수도 소피아(Sofia)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르키예의 에디르네(Edirne)로 향했다.


튀르키예 입국도장은 16일자로 찍혔고, 다시 몇 시간을 달려 이른 아침에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24시간 동안 3개국 국경, 6개 세관을 거친 것이다. 하늘이 정말 화창했다. 거리에는 검은 차도르로 몸을 감은 여성들이 많았고, 모스크에서는 스피커로 기도시간을 알렸다.


필요한 여행정보를 받기 위해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관광객 몇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키 큰 중년의 네덜란드 아저씨 뒤로 줄을 섰다. 백인 특유의 도발적 태도가 거슬렸는지 튀르키예 직원이 성의 없이 틱틱거린다. 머쓱해진 네덜란드 아저씨는 소득 없이 문을 나섰다.


불친절한 안내원의 다음 상대로 겸손모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과 튀르키예는 형제국이라 했던가. 혈맹(血盟)의 힘은 달랐다. 네덜란드인에게 냉랭했던 아저씨는 “한국인”이라는 한마디에 얼굴이 환해졌다. 안내원은 지도 몇 장을 챙긴 뒤 일일이 짚어가며 주요 여행지를 소개하고, 가장 저렴하고 깨끗한 펜션이라며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까지 해줬다.


아저씨의 안내대로 블루모스크(Blue Mosque)라는 별명을 지닌 술탄아흐메드(Sultan Ahmet)로 향했다. 길을 물어보니 남자대학생 8명이 직접 따라붙어 블루모스크 맞은편 아야소피아(Ayasofya)로 안내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붉은빛의 건물 앞에 왠지 모를 경외감이 든다.


아야소피아는 튀르키예와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본 건물은 AD390년에 완성됐지만 404년 화재로 소실됐고, 두 번째 교회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지어졌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532년 파괴됐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같은 해 기술자 100명과 노동자 1만명을 투입해 5년 10개월 만인 527년 12월 27일 현재 건물을 완공했다.


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이슬람문화를 대표한다는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건축 이후 1000년이 훌쩍 넘은 1616년에 술탄 아흐메드 1세의 명령으로 7년간의 건축을 거쳐 완공됐다. 비닐봉지에 신발을 담아 건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을 가진 모스크. 이슬람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답게 튀르키예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톱카프 궁전과 그랜드바자르를 거쳤지만 두 명의 친구가 한국 청년의 여행을 끝까지 책임진다. 젊은이가 많은 장소를 묻자 탁심광장과 이스티클랄(Istiklal)거리로 안내한다. 어느새 배가 고파졌고, 친구들은 케밥을 추천했지만, 채식으로 가능한 고기 뺀 조각피자를 먹었다. 케밥은 길거리음식, 피자는 매장음식이었는데, 서서 먹었는지, 앉아서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친구들이 흥분하며 댄디하고 귀티 나게 갖춰 입은 남성을 가리킨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핫한 축구선수 하칸 슈퀴르였다. 그는 주변의 소동을 즐기고 있었다. 아느냐고 묻는데, 모른다고 답했다. 한국인이 선망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억해야 했다. 2002년 월드컵 3-4위 한국전에서 홍명보의 패스를 뺏어 경기시작 11초 만에 골을 넣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두 명의 튀르키예 친구들은 모든 안내를 마친 뒤에도 한국인 여행자를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준 뒤에야 돌아갔다. 이메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친구들이다. 튀르키예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모두가 참 친절했다.




펜션에는 1년 이상 여행 중인 일본인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동북아에서 호흡이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 정도였을 것이다. 몇 개월, 혹은 1년 이상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튀르키예에 입국한다. 미국 유학생 출신의 일본 친구가 “튀르키예 세관직원이 영어발음이 좋다며, 혹시 한국인 아니냐고 물어 황당했다”고 자조하는 바람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유일한 한국인 박 선배는 중국과 인도, 이스라엘에서 7년 정도 머물렀다고 했다. 슬금슬금 유럽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는데, 수염을 길렀고, 산발에 가까운 장발이었다. 복색도 도사처럼 특이했다.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물로 씻는다고 해서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비데 사용이 빨랐던 형님이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주로 수련을 했다고 한다.


박 선배가 “오래 수련한 이들은 눈이 아이처럼 깨끗하다”며 “자네도 눈이 맑다”는 덕담을 건넨다. 수련으로 다져진 절대고수의 통찰(洞察)로 믿었다. 뒷말을 덧붙이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여성들 정말 예뻐. 기회 되면 꼭 가서 살아봐.” 완성은 없다. 오직 부단한 수련이 있을 뿐.


다음날 박 선배와 함께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다시 찾았다.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그게 이스탄불 여행 중 제대로 들은 유일한 여행가이드였다. 사진이라도 함께 찍으려고 했지만, 선배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다시 내공 있는 수련자처럼 보인다.


박 선배는 이스탄불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여행을 안내했다. 모스크가 많았고, 이스탄불대학교와 보스포루스해협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일찍 떠나는데 형님은 여전히 수면 중이다. 늦잠도 수련의 연장인가. 기다리다가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나왔다. 연락처는 쓰지 않았다. 여행의 인연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게 괜히 수련자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러웠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고, IMF 외환위기까지 겹쳐서 유럽에서는 한국인을 만나기 힘든 여행이었다. 형님에 대한 기억도 어느새 가물거리고, 이제 그의 얼굴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 수련 중일까. 이스라엘에는 다시 갔을까.




PS. 잊고 있던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스탄불 한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 있다. 한국인처럼 생겼다고 느꼈는지,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엄청나게 건들거리면서(?) 반가워한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그는 주변의 다른 어르신들을 가리키며 “쟤도 한국 갔다 왔고, 저기 저 친구도…”하며 일일이 소개한다.


여러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소개한 할아버지는 막판에 자신의 새 오토바이를 자랑했는데,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인지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바퀴가 크고, 핸들이 높고, 시트가 낮아서 몸이 젖혀지면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아메리칸 크루저(American Cruiser) 같은데,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자부심을 봤을 땐 왠지 그럴 것 같았다.


map004.jpg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국제도시 이스탄불(구글지도)


[이스탄불 MTA] 아야소피아(Ayasofya),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Sultan Ahmet Camii), 카팔르차르시(Kapalıçarşı, Grand Bazaar), 쉴레이마니예 모스크(Süleymaniye Mosque), 테오도시우스 성벽(Walls of Constantinople),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the Seraglio), 파티흐모스크 단지(Fatih camii külliyesi),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İstanbul Arkeoloji Müzesi), 파노라마 1453(Panorama 1453 museum), 시르케 지역(Sirkeci İstasyonu),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sü), 탁심 광장(Taksim Meydanı), 이스티클랄(Istiklal), 루멜리히사르(Rumeli His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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