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몰도바] 작은 나라 안에 더 작은 나라… 대통령도 화폐도 다른 미승인국

by Keeper of HOPE


1998년경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호텔과 동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련해방군 기념비(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 기념비)


1997년 가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가본 나라는 동유럽의 몰도바였다. 미승인국을 포함한다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세 번째 국가가 되겠다. '유럽의 관문'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그해 10월 1일 키시너우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황량했다. 왜 청평역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켄터키 루이빌을 떠나 시카고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칠 때까지는 분명 여름이었다. 9월의 끝자락이었고, 모두 반팔 옷을 입고 있었다. 아직까지 가을의 조짐은 전혀 없었다. (물론, 시카고와 프랑크푸르트는 공항 내부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고 사후에 생각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에어몰도바로 갈아탔는데, 앞으로 접히는 좌석이다. 지금껏 60국을 여행하며 수많은 비행기에 올라봤지만, 등받이가 접히는 간이좌석은 당시 이 비행기가 유일했다. 짧은 비행인지라 독특한 향의 음료만 제공됐고, 젊은 여승무원의 올 나간 스타킹이 눈에 띈다.


착륙 직전 창밖에 펼쳐진 몰도바의 첫 풍경은 앞서 말한 황량함이었다. 잡목과 풀이 무성한 벌판 같은 활주로에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모두 털모자에 두툼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불과 14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계절 하나를 스킵한 듯했다. (역시 추가조사에 따르면, 북위 47°의 키시너우가 북위 38°의 루이빌보다 기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몰도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포도밭. 키시너우에서 코우셰니 가는 길에 있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몰도바(Moldova)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잘 모르는 나라였다. 선배가 몰디브(Maldives)로 가는 줄 알고 괜히 부러워하는 후배 녀석들도 있었다. 1년을 체류하는 동안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매우 외진 나라였다. 다른 유색인종들도 아주 드물었다.


몰도바는 1991년 12월 소비에트연방 붕괴로 독립한 뒤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으며, 이듬해 UN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은 동유럽,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에 인구 400만명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도 내부적으로 분리주의 갈등이 극심했다.


몰도바 친구 마이클(미셸?)은 가가우지아 출신으로 일부 몰도바인에게 냉대받았다.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Pridnestrovian Moldavian Republic)는 사실상 독립국가였다. 벤데르(Bender)를 자주 방문했는데, 국경(?)을 넘을 때마다 무장한 군인들 앞에서 숨죽여야 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독립을 명분으로 몰도바 독립 이전부터 1992년 7월까지 몰도바와 전쟁을 벌였고(내전),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우크라이나에 주둔했던 러시아 육군이 공식명령 없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지원했다. 민간인을 포함해서 1500여명이 사망했다. 코우셰니와 벤데르에는 각 희생자 묘지가 있다. 묘비마다 사망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는데, 젊은 남성들이 많았다.


특히,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 내 자치국으로 대통령도 따로 뽑고, 화폐도 달랐다. 당시만 해도 경제적으로 몰도바 본국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도 강해서, 그런 후진 동네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이사를 권유한 꼬마도 있었다. 면적으로는 몰도바의 12.3%를 차지할 뿐이지만, 과거 몰도바 사회주의공화국 시절엔 산업 중심지로 몰도바 전체 GDP의 40%를 차지한 바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리나라 충청북도의 절반 크기에 현재 인구가 46만명이다. 1989년 6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했다. 현재 13만명인 수도 티라스폴 인구도 1989년엔 18만명까지 기록했다고 하는데, 몰도바도 트란스니스트리아도 인구감소세가 심각하단다.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이 있었던 벤데르도 인구 4만명이 넘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제2의 도시쯤 된다.


말인지 노새인지 나귀인지 모르지만, 1990년대 후반 몰도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면. 말이 끄는 수레가 끄는 자동차




1998년 6월 프랑스월드컵이 열렸다.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어와 몰도바어(현재는 루마니아어로 인정)만 나오는 TV는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아파트로 몰려든다. 뭔가를 빨리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게 역력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묻자, 이놈들 한꺼번에 말문이 터진다. 한국이 네덜란드한테 5대0으로 졌지롱~ 하면서 신나게 떠든다. 그저 한번 약 올리겠다고 무리를 모아 온 터였다. 설마~ 반신반의했지만 사실이었다. 질 수 없어 곧바로 반격했다. 야, 몰도바는 월드컵 본선에도 못 갔잖아?


상황은 즉시 정리됐어야 했다. 이 녀석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들은 꿋꿋하게 러시아는 지금 어쩌고~, 루마니아는 또 어떻고~ 하면서 축구 강국을 큰집 말하듯 했다. 과거 어려움을 겪게 한 나라들이었지만, 우리의 반일정서와는 분명 달랐다.


몰도바는 특별한 데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미국인들은 당시 대한민국을 잘 몰랐지만, 몰도바에는 상세히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파트 바로 위층에 거주하는 교사 부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감옥 나왔냐고 묻기도 했다.




모스크바라도 되는 듯 초가을부터 털모자를 썼지만, 몰도바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나라였다. 내륙국이지만, 흑해와 매우 인접해 있다. 와인이 유명하지만, 가난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보다도 1인당 GDP가 낮았다. 정교사 월급이 30달러가 안 됐다.


수도 키시너우(Chişinău)는 키시네프(Kishinev)로 더 많이 불렸다.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도 여전히 키시네프로 적도록 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 생가가 있었지만, 동유럽의 회색 도시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 메인스트리트를 빼면 시골 같았다.


‘러시아의 국민차’ 라다(Lada)를 주로 이용했는데, 이보다 작은 ‘짜빠로젯’이라는 경차가 있었다. 이번에 검색하니 ‘자포로제츠(Запоро́жець)’인 듯하다. 소련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한 동유럽 최저가 차량인데,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학생 시절부터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쁜 별명은 죄다 붙었는데 몰도바 친구들은 “지붕 달린 오토바이”라며 키득거렸다.


수도 한복판에 말이 끄는 수레와 이 수레에 끌려가는 고물자동차를 간간히 만날 수 있는 나라. 몰도바는 아련하다.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이 거주하는 독일을 우선하지만, 그전까지는 몰도바가 제2의 고향이었다. 떠나온 지 27년이 지났다. 30년이 되기 전에 다시 가볼 요량이다.


대한민국 경상남북도 크기와 비슷한 몰도바 내부에는 미승인국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있다. 수도는 티라스폴이다.(구글지도)


PS.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명목 GDP는 몰도바의 10%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1인당 GDP 기준 2024년 몰도바가 7000달러 안팎으로 2021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2584달러(현재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를 2~3배 상회한다. 고립된 미승인국으로 화려했던 소련 시절 위상을 이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결과야 어쨌든 현재 두 나라 모두 유럽 최빈국 수준이다.


[몰도바 MTA] 올드 오르헤이(Old Orhei), 티포바 수도원(Tipova Monastery), 사하르나 수도원(Saharna Monastery), 카르리아나 수도원(Capriana Monastery), 나무교회(Dormition of the Theotokos), 그리스도 탄생 메트로폴리탄 대성당(Catedrala Nasterea Domnului), 개선문(Triumphal Arch), 키시너우 중앙역(Chisinau Railway Station), 몰도바공화국의회(Parlamentul Republicii Moldova), 키시너우 시청사(Chisinau City Hall), 세인트메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St. Mary's Armenian Apostolic Church), 수목원 공원(Dendrariu Park), 발레아모릴로르(Valea Morilor), 스테판셀마레 공원(Stefan cel Mare Park)


[트란스니스트리아 MTA] 데월란트 공원(De Wollant Park), 수보로프 기념비(Suvorov Monument), 셰리프 스타디움(Sheriff Sports Complex), 시티파크(City Park), 벤데르 요새(Bendery Fortress, Festung Tighina), 드니에스트르강(Dniester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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