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의 도시들… 아테네에서 파르테논 못 들어간 이유

[그리스] 알렉산드루폴리-테살로니키-코린트운하로 이어지는 동로마 테마여행

by Keeper of HOPE


도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구 코린트의 아폴로신전. 코린토스 양식은 건축사에서도 유명하다.


여전히 1998년 봄. 다섯 번째 나라는 그리스였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해외여행객들이 본격적인 유럽여행을 시작하는 코스를 따랐다. 국제버스였는데 허름하다. 튀르키예 세관을 지났고, 몇 시간을 잡혀있을 수 있다는 그리스 세관에 도착했지만, 짐칸을 꼼꼼히 살피는 정도였다.


그리스의 첫 도시는 알렉산드루폴리(Alexandroupoli)였다. 에게해 북쪽 트라키아해를 끼고 있는데, 서부 트라키아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북동부 그리스의 주요 항구였다. 1920년 당시 그리스왕국의 국왕 알렉산드로스의 방문을 기념해서 기존의 데데아가츠(Δεδεαγάτς)에서 현재 도시명으로 바꿨다. 여행 당시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에서 따왔나 했는데, 전혀 무관하다.


19세기까지 허허벌판이었는데, 오스만제국이 이스탄불과 마케도니아 간 철도를 놓고, 기차역을 만들면서 소도시가 형성됐다. 20세기 초 발칸전쟁 이후 불가리아가 지중해로 통하는 항구로 데데아가치(Дедеагач)를 개발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며 소유권을 상실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樞軸國)에 의해 다시 소유권을 가졌다가 패배 후 그리스로 반환됐다.


흐린 날씨에 현대식 노천카페들이 늘어선 바닷가는 깔끔하고 운치가 있었다. 도착 직후 테살로니키(Thesaloniki)행 티켓을 끊고, 메트로폴리스광장을 들렀다. 광장 옆으로 성 니콜라스메트로폴리탄교회(Metropolitan Church of Saint Nicholas)를 갔는데,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알렉산드루폴리항 인근 기차역에서 여유 있게 탑승했다. 6명이 들어가는 객실에 미모의 여성 한 명이 들어왔다. 고향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테살로니키가 전년도인 1997년 유럽의 관광도시로 선정됐다”며 자랑하기도 했고, 그 지역사람만 안다는 주요 스폿을 골라주기도 했다.


[알렉산드루폴리 MTA] 알렉산드루폴리 등대(Alexandroupoli Lighthouse), 알렉산드루폴리 항구(Port of Alexandroupoli), 아기아 파라스케비 해변(Agia Paraskevi Beach), 다디아숲(Dadia Forest), 트라키아 민족학 박물관(Ethnological Museum of Thrace), 메트로폴리스 광장(Metropolis Square), 성 니콜라스 메트로폴리탄 교회(Metropolitan Church of Saint Nicholas)




테살로니키의 대표 유적지인 화이트타워.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다음날 테살로니키 미녀가 알려준 여행을 시작했다. 먼저 오스만시대를 대표하는 화이트타워로 갔다.


‘테살로니키의 랜드마크’ 화이트타워의 본명은 레프코스 피르고스(Λευκός Πύργος). 15세기 베네치아인들이 구축한 방벽의 일부였다. 18~19세기 튀르키예 점령 당시 감옥으로 쓰였고, 대량학살이 자행돼 ‘피로 물든 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높이가 30m라는데, 아담했다.


아리스토텔레스광장에는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이 있다. 광장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갑자기 수평선 안개 위쪽으로 올림포스산(?) 정상이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스 최대 교회라는 아기오스 디미트리오스교회는 이곳으로 오기 전 유일하게 사진으로 봐둔 곳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선교장소였으며, 디미트리우스 순교를 기념해서 세운 교회였다.


당시 테살로니키는 고대 로마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발굴지 주변은 접근을 통제하는 간단한 펜스들이 마련돼 있었고, 그녀가 알려준 언덕에서 조그마한 마을버스에 올랐다. 평소 보기 힘든 한국인 관광객의 등장에 승객들의 눈길이 쏠린다. 구불구불 좁은 길에 언덕도 가팔랐지만, 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낸다. 한국의 여느 산동네를 떠올리게 하는 정경이 이어진다.


테살로니키 산동네 유적지는 거의 방치된 수준이었다. 동네아이들과 염소들이 주인이었다. 이름을 짓자면 ‘자유로운 유적지’라 할만 했다. 지금은 정리되지 않았을까 싶다. 테살로니키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뷰는 그녀의 말처럼 환상적이었다. 토박이가 추천한 명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동안 쉬었다가, 걸어서 언덕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는 또 다른 정취가 있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거대한 원형건축물인 로툰다가 나왔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묘로 AD 300년경 건설됐는데 이후 교회로 개조됐다. 수리 중이었다. 신트리바니우광장 근처 갈레리우스 개선문의 부조는 주변의 낡은 회색빛 아파트와 묘하게 어울렸다. 303년에 세워져 1700년이 지난 탓인지 당시 건물들은 모두 없어졌고, 문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상태였다. 역시 관리가 아쉬웠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제2의 도시, 아테네(Athens)와 더불어 대학교를 가진 유이(唯二)한 도시다. 동로마시대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다음가는 도시였고, 이런 이유로 공동수도(the co-capital, Συμπρωτεύουσα, 심브로테부사)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그리스 북부의 중심지로 2021년 도시 인구는 32만명, 도시권 기준으로는 101만명에 이른다.


[테살로니키 MTA] 레프코스피르고스(White Tower), 포룸(Forum), 갈레리우스 개선문(Arch of Galerius), 로톤다(Rotunda), 무스타파 케말 생가(Μουσείο Ατατούρκ), 성 디미트리오스 교회(Church of Agios Dimitrios), 하기아 소피아 성당(Church of Hagia Sophia),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of Thessaloniki), 디온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Dion), 베르기나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Vergina, 구 에게)




기차 안에서 셔터속도와 조리개를 최대한 활용해서 찍은 사진. 27년이 지나도 만족스럽다.


다음날 아테네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바로 코린토스(Corinth)행 기차에 올랐다. 코린토스는 안 유명했지만, 세계에서 2번째로 개통된 코린트운하는 유명했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 사이 지협부에 위치했다. 길이 6.3km, 폭 25m, 수심 8m. 갈 땐 눈으로만 봤다. 멋짐 확인 :)


코린트역에서 버스를 타고 구(舊) 코린트로 향했다. 이번에도 좁은 길이 이어졌고, 이내 고대 유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대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 백인이었는데, 가이드가 오늘은 국경일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산 정상에는 아크로코린토스가 있었다. 제단으로 사용한 흔적이 살짝 보인다. 성곽이 남아있는데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다. 올라가볼까 싶었으나 버스 운행시간과 묘하게 어긋났다. 어차피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사도 바울이 열심히 선교했다는 유적지는 대부분 폐허가 됐고, 땅속에 묻힌 유적지들을 발굴한 탓인지 일부 유적들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둥 몇 개만 남은 아폴로신전은 잡초 사이에 약간 느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 작은 박물관을 들렀다. 들어올 때 관광객이 몰리는 바람에 사람이 뜸할 때를 기다린 터였다. 실내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는데, 플래시 사용을 금지했다. 시설이 허술하고, 조명도 어둡다. 그리스 스핑크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열차에 올라 사진 찍기 좋은 빈자리를 찾았지만 마땅하지 않아 출입구 창가에 자리를 틀었다. 그런데 동북아의 젊은 여성이 눈에 띈다. 일본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 두고 3개월 코스로 유럽여행 중이었다. 일본여행보다 저렴하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거쳐 브린디지에서 배편으로 그리스 파트라스로 입국해서 아테네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코린트운하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곧 멋진 광경이 나온다고 귀띔한 뒤 셔터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조리개는 많이 열어둔 카메라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창가를 주시했다. 운하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연달아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일본 친구도 연방 놀라움을 표했다. 남자친구는 없었고, 혼자 여행 중이었다. 아테네역에서 내릴 때 ‘예의상’ 이메일을 교환했다.


[코린토스 MTA] 아크로코린토스(Akrokorinthos), 구 코린트(Archaia Korinthos),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코린트 고고학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of Corinth), 비마(Bema), 사도바울교회(Apostolos Pavlos Church), 코린트운하(Corinth Canal)




19980420 Athen Greece002.jpg 끝내 닿지 못한 파르테논. 맞은편 바위에는 동병상련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아테네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아직 주변이 환하다. 숙소 대신 곧바로 파르테논이 자리 잡은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산동네마냥 주택지 사이에 있는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야 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경사도 가파르다. 올라가는 사람들보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게다가 상당히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길가에는 수많은 기념품 노점상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올라갔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개장시간이 끝나 있었다. 어째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했더니. E랜드, S랜드, L월드 같은 한국 놀이공원에 익숙한 탓에 야간개장을 기대했으나, 아크로폴리스는 우리나라 놀이동산이 아니었다. 아쉬운 점은 코린트와 마찬가지로 이날 아크로폴리스도 무료였다는 점이다. 둘 다 무료였다면, 아크로폴리스가 우선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파르테논이 잘 보이는 맞은편 바위에 올랐다.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이 많았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아마 자기 나라의 야간개장에 익숙한 친구들일 게다. 되지도 않을 정신승리 시전하며 터덜터덜 내려오는데, 앞서 지나쳤던 노점상들이 보인다. 엽서 대부분이 남성의 몸뚱이보다 성기를 더 크게 묘사한 조각품의 사진을 담고 있었다. 재미 삼아 몇 장을 샀다.


다음날 정오까지 늦잠을 잔 뒤 샤워를 하고 다시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어제 갔던 길이라 제법 익숙하다. 그런데 한창 수리 중인 파르테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기휴일이었는지, 아예 문을 닫았다. 기껏 아테네 가서 파르테논도 못 들어가 봤다 ㅠㅠ




19980420 Athen Greece003.jpg 1998년 4월.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테네 도시 전경. 사진 중앙에 고대 아고라와 헤파이스토스신전이 보인다.


자피온(Ζάππειον μέγαρο)을 거쳐 1895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판아테나이코 스타디움으로 갔다. 좌석은 대리석으로 돼있었고, 수용인원이 5만명이라는데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경기장 4면 중 1면이 트여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주로 육상경기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서 코가 오뚝하고 훤칠하게 잘생긴 청년이 말을 건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자신은 알바니아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미국에 갈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불과 몇 년 전인 1992년 민주체제 수립 이전까지 공산주의 치하였던 발칸반도 출신의 미국 입국 절차를 한국 사람이 알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보라는 빤한 답을 했다.


청년은 멋진 선글라스에 귀티 나는 복장을 하고 있다.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밀입국은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알아보라고 한 뒤 행운을 빌어줬다. 돌아서면서 언젠가는 알바니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야간열차를 타고 테살로니키로 출발했다. 동로마여행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테네 MTA] 아크로폴리스(Acropolis), 파르테논 신전(Παρθενωνας),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Odeon of Herodes Atticus), 디오니소스 극장(Θέατρο του Διονύσου), 아고라(Αρχαία Αγορά της Αθήνας), 헤파이스토스 신전(Ἡφαιστείο), 로마 아고라(Ρωμαϊκή Αγορά), 바람의 탑(Ωρολόγιο του Κυρρήστου),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Ναὸς τοῦ Ὀλυμπίου Διός), 하드리아누스 개선문(Πύλη του Αδριανού),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국립고고학박물관, 모나스티라키(Μοναστηράκι), 에르무 거리(Οδος Ερμου), 자피온(Ζάππειον μέγαρο)


map005.jpg 그리스의 알렉산드로폴리스, 테살로니키, 아테네, 코린토스는 에게해를 따라 달리는 기차로 연결된다.(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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