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진주’ 콘스탄차 강도 20명에게 혼자 끌려갔다

[루마니아#2] 10달러 국제버스로 12시간… 난감한 ‘토플리스’ 해변

by Keeper of HOPE


19980719 Constanta Romania001c.jpg 세기말 '흑해의 진주' 콘스탄차에서 가장 유명한 '마마이아 해변'엔 토플리스 차람의 여성이 많았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여행기의 모든 사진은 직접 찍은(or 찍힌) 것들이다. @이기호 :) 콘스탄차와 두 번째 부쿠레슈티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도 더 있는데, 스캔해 둔 컷은 몇 개 안 된다. 특히 마마이아해변에서 찍은 사진들은 노출 이슈가 있을 수 있어서, 그나마 제일 양호한 사진에 필터를 걸었다.




다시 여섯 번째 나라로 돌아간다. 튀르키예,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여행한 뒤 3개월 만에 다시 루마니아 콘스탄차를 향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하면 괜히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럽이나 동남아, 중동은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이 많다.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예정에 없던 콘스탄차 여행은 피아니스트 후배(요즘 명인으로 진짜 유명함)의 연주회 덕이다. 1년 가까이 다른 한국인을 보지 못했다. 한국인이 그립다. 연주회 이틀 전인 1998년 7월 18일에 출발했다. 분명 코우셰니에서 탄 것 같은데, 메모는 키시너우로 돼있다. 정확하지 않다.


이스탄불행 버스와 달리 매우 낡은 국제버스였다. 모두 동유럽 시골사람 평상복 차림이었고, 달걀, 채소 같은 생필품을 들고 탔다. 시장바구니에 묶인 팔팔한 닭도 기억난다. 더 놀라운 일은 버스비가 미화 10달러 정도였다는 것이다. 1만원으로 국경을 넘어 12시간을 달린 셈이다.


(어김없이) 여담으로, 몰도바 키시너우와 코우셰니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는 한국전쟁 이전에 생산된 헝가리제였다. 정확한 제조년도가 생각나지는 않는데, 한국전 이전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1945년 해방 이전은 아니었다. 50년을 운행한 버스였는데, 지금도 굴러다닐지 궁금하다.


1998년 7월 19일 자로 루마니아에 입국했다. 부쿠레슈티에서 200km 떨어진 콘스탄차는 BC 7세기 그리스의 식민도시 토미스로 건설됐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재건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아나로 개칭했다는 설과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황후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의 이름에서 땄다는 설이 있다. 루마니아 최대 무역항과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했다.


마마이아(Mamaia) 해변으로 갔다. 7월 중순 흑해 연안엔 인파가 엄청났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남녀가 있었고, 토플리스(topless) 차림 여성도 많았다. 동방예의지국의 지고지순한 청년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결국 선글라스를 썼다. 결단코 ‘미필적 고의’는 아니었다. 가장 멋진 해변을 추천받았을 뿐이다.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낸 뒤 유스호스텔로 갔다. 접수를 기다리는 동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 2명이 깨끗하고 저렴한 숙소를 알고 있다면서 전단지를 꺼낸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영업하나 싶었지만, 솔깃한 조건에 따라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덩치 큰 친구들이 반가운 듯 인사하며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한다. 어느 외진 골목을 지나서야 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투명플라스틱 지붕이 돔처럼 덮인 작은 광장 한복판까지 몰렸다. 어느새 20명이 넘는 집시가 둘러싸고 있다. 주변 상가는 텅 비었고, 근처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불행을 탓할 순 없었다. 상투적인 수법에 당한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어딜 가냐고 묻자, 덩치 큰 2명이 확 떠민다.


납치는 아니고, 그럼 강도? 순간 귀국이 걱정됐지만, 비상한 시국은 또 비상한 사람을 만든다.


“악!!!”


분노로 에너지를 충전한 대한민국 예비군의 단음절 함성이 급 튀어나왔다. 폭탄처럼 주변이 쩌렁~한다. 텅 빈 광장과 지붕은 반향과 공명을 극대화했고, 저 멀리 사람들까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얼뜨기 집시 강도들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빨리 가라고 떠민다. 마치 방언의 은사라도 받은 듯 영어로 호통을 치며 빠져나오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린다.


제대한 지 불과 4년. 2년 넘게 아침마다 단련한 단음절 함성은 폐에 모아둔 공기를 한순간 폭발하듯 내뿜는 게 포인트다. 단전에 힘을 주고, 횡격막을 늘려 숨을 끌어 모은 후 한 번에 토해내면 주변에서 깜짝 놀라곤 했다. 대신 목이 금방 쉰다. 핵심은 소리가 아닌 힘과 에너지다.


최근 ‘럭키비키’의 가수 아이브 장원영이 군복과 철모를 착용하고 해맑은 표정에 까치발로 외친 “악”이 큰 관심을 모았다. 프로그램 도중 흉식호흡으로 답하는 장원영에게 조교가 “가수 아니냐”고 지적하자, 급 각성한 듯 목소리 깔고 복식호흡으로 발성한 “악”이 바로 그것이다. 단음절 함성은 짧게 끊을수록 효과적이고, 여하튼 ‘넘사 비주얼’은 뭘 해도 예쁘게 그려진다.




위기를 극복한 다음 날 음악회를 찾아 나섰다. 콘스탄차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한국인 음악회 찾는 게 어렵겠나 싶었는데, 관광안내소에도 뾰족한 정보가 없었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콘스탄차시립오케스트라 협연이니 포스터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어느 경사진 좁은 도로 귀퉁이에서 나란히 붙어있는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도 잠시, 시간은 여유 있었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주소를 메모한 뒤 행인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콘스탄차시민들은 참 친절했다. 괜찮다는데도 굳이 그곳(?)까지 데려다준다.


한 젊은 여성은 어느 좁은 길 작은 건물로 인도한다. 의아했지만, 감사를 전하고 올라가 보니 동네 도서관이다.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가고 있다.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젊은 남성이 으쓱한 바닷가 근처로 안내한다. 어제 집시 무리가 생각난다. 혼자 가겠다며 돌아섰다.


이후 다른 동유럽, 발칸반도, 중동, 캅카스(코카서스) 3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들은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면서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준다든지, 잘 아는 것처럼 반대 방향을 알려준다. 오락가락하다 시간만 뺏기고, 끝내 시간에 쫓겨 포기하는 관광지들이 나온다.


역사·문화적 배경이 궁금해서, 최근 AI에게 물어봤다. ‘체면과 환대문화’를 말한다. 오랜 기간 “모른다”고 말하기 힘든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에서 상대가 원하는 답을 했어야 했고, 발칸·중동·캅카스 특유의 손님 환대 풍토가 뭐라도 알려주려는 문화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map008.jpg '흑해의 진주' 1998년의 콘스탄차는 외국인이 여행하기엔 만만치 않은 도시였다.(구글지도)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시내 중심가일 가능성이 높다. 도심으로 방향을 잡고, 물어물어 가는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까 봤던 포스터들이 점점 늘어간다. 연주 시작 20분 전 가까스로 공연장에 도착했다. 몰도바 룸메이트도 와있다. 연주자와 반갑게 해후했다.


다음 날 후배들, 피아니스트 교수님과 부쿠레슈티행 기차에 올랐다. 우리와 함께 어울렸던 또래의 플루티스트는 유학 중이던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인민궁전과 개선문을 비롯해서 유명하다는 몇 곳을 둘러봤다. 3개월 만에 다시 와서 그런지, 딱히 새롭게 볼만한 곳은 없었다.


[콘스탄차 MTA] 마마이아 해변(Plaja din Mamaia), 콘스탄차 해변(Constanta Beach), 콘스탄차 카지노(Cazinoul Constanta, 현 문화·관광시설), 그랜드모스크(Marea Moschee din Constanța), 오비디우스 광장(Ovid's Square), 고고학 공원(Parcul Arheologic), 로마 모자이크(Edificiul Roman cu Mozaic), 제노바 등대(Farul Genovez),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Catedrala Sfinții Apostoli Petru și Pavel din Constanț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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