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루마니아] 이스탄불과 동로마수도 경쟁, 펜타곤 이어 세계 2위
옛날 옛적 필카시절엔 현상 전까지 잘 찍힌 사진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앵글을 잘 잡아주고, 피사체 당사자는 상반신만 나와도 된다고 신신당부해도, 결국 ‘찍사’ 맘이다. 왜 하필~하며 부글부글한 적이 많다. 첫 사진도 그중 하나다. 그래도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이 크다!
여전히 1998년 봄. 여섯 번째 나라는 루마니아, 일곱 번째 나라는 불가리아였다. 차분히 시간을 낼 여유는 없었다. 이스탄불과 그리스 여행이 우선이었고, 몰도바로 돌아가는 길에 들르는 정도였다. 루마니아는 3개월 뒤 다시 방문했지만, 불가리아는 호시탐탐 재방문만 노리고 있다.
야간열차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넘어갔다. 며칠 전 여행한 아리스토텔레스광장과 화이트타워 등 몇 군데를 다녔지만, 전망 좋은 산꼭대기는 다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갔어야 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여행은 어느 순간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한적한 공원을 산책한 뒤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쳤다. 이윽고 저녁 10시 불가리아 소피아행 열차에 올랐다. 자다 깨어나 기차 안에서 출국과 입국절차를 거쳤고, 다음날 오전 소피아(София, Sofiya)에 도착했다. 역 주변에는 인파가 많지 않았으나, 번화가로 가니 북적북적했다. 2021년 현재 인구는 128만명으로 발칸반도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소피아는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지방 수도, 자치령을 거쳐 1908년 독립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가 됐다. 로마제국 시절 세르디카(Serdica)로 불린 트라키아의 주요 도시였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나만의 로마”로 부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명령으로 많은 교회가 건축됐지만, 외세의 침략과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진 못했다.
여담으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대체할 수도로 애초 세르디카를 점지했으나, 330년 비잔티움(Byzantium)으로 천도를 확정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로 개칭한다. 395년 동·서로마 분리 후엔 동로마의 수도였다. 이번 여행은 ‘동로마 여행’이었던 셈이다.
‘발칸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방정교회 선교사로 불가리아를 찾은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가 창안한 것이 바로 키릴문자였다. 원조로서 문화적 우월감은 남다르다고 한다. “왜 러시아문자를 쓰냐”는 질문은 노노~
일단 소피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알렉산드르넵스키 대성당을 갔다. 발칸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었는데, 유럽의 주요 성당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다. 19세기말 오스만의 500년 지배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불가리아 근대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비라고 한다.
알렉산드르넵스키 대성당은 16~20세기에 13차에 걸쳐 진행된 러시아-튀르크 전쟁 중 12차에 해당하는 제2차 동방전쟁 당시 사망한 20만명의 러시아군인을 기념하기 위해 1882년 착공해서 1912년 완공한 비잔티움 양식의 건축물이다. 참고로 13차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어 6세기 비잔틴제국 때 세운 성 소피아성당(이스탄불 아야소피아와 동명)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고,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동물인 사자상이 지키고 있었다. 성 니콜라스교회와 게오르기교회, 세르디카 광장 주변 유적지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다시 가보면 알겠지.
지금 생각하면 소피아는 규모는 작지만, 구획정리가 잘 된, 유럽풍 건물이 늘어선 곳이었다. 소피아시 법원 인근은 번화했지만, 세세한 기억은 없다. 최근 영상과 사진을 보니 화려한데, 27년 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동유럽 특유의 정서가 진한 곳으로 기억한다.
[소피아 MTA]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St. Alexander Nevski Cathedral), 성 소피아 교회(Saint Sofia Church), 게오르기교회(the Rotunda Church of St George), 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kolas Russian Church), 성 네델리아 교회(St. Nedelya Cathedral Church), 바냐 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 국립 소피아 대학교(Sofia University Saint Kliment Ohridski), 성 키릴과 메토디 국립도서관(SS. Cyril and Methodius National Library), 마리아 루이자 거리(Maria Luiza Boulevard), 비토샤 거리(Vitosha Boulevard), 대통령궁(라르고, Ларго), 세르디카 유적지(Amphitheatre of Serdica)
다음 날은 ‘동방의 파리(Parisul Estului)’로 유명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şti)였다. 부쿠레슈티 인구는 2021년 171만명, 수도권 기준 215만명이다. 특히 몰도바에서 가까운 도시다. 10달러 정도면 접이식 침대열차인 쿠셋(Couchette)으로 손쉽게 오갈 수 있다. 멀진 않은데, 기차가 엄청 느려서 10시간 정도 걸린다. 집이 가까워지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부쿠레슈티는 본래 도시가 없는 땅이었으나 1459년 ‘드라큘라의 모델’ 블라드 3세(Vlad III)가 왕궁(쿠에르타 베체)을 세우며 역사에 등장했다. 1698년 왈라키아 공국(Țara Românească)의 수도가 된 이후 주요한 도시로 기능해왔다. 1847년 대화재가 발생해서 전체 건물의 1/3에 달하는 1850채의 건물이 소실됐으나, 19세기 말엽 카롤 1세의 치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부쿠레슈티 사진에는 프랑스풍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이 드러나는데,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șescu) 집권 후 많이 파괴됐다고 한다. 영문명칭이 ‘악연인’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와 비슷해서 영어권 관광객이 혼동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이 때문에 루마니아 당국은 한동안 “Bucharest not Budapest”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부쿠레슈티에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북한 금수산태양궁전에 영감 받아 지었다는 썰(팩트 아님)이 있는 인민궁전(Casa Poporului, 현 국회궁전)이 있다. 4만명을 내쫓고 1983년 공사를 시작해 1997년 끝냈으나 여전히 미완성이다. 건설 당시 미국 국방부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었는데, 이번에 확인하니 4등까지 밀렸다. 1998년에도 3위로 추정된다.
부쿠레슈티대학교와 주요 거리를 여행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야간기차를 통해 몰도바로 돌아왔다. 부쿠레슈티는 3개월 뒤 흑해 연안 콘스탄차를 거쳐서 다시 방문했다. 콘스탄차에서 집시들에게 붙잡혀서 탈탈 털릴 뻔한 위기를 탈출한 에피소드는 다음 편으로 넘긴다.
PS. 잊고 있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부쿠레슈티역에서 키시너우행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 덩치도 인상도, 복색도 비슷한 동양인 남성이 등장했다. 깜짝 반가워하며, 다짜고짜 일본어를 던진다. 한국어로 받아치니 바로 알아챈다. 발칸반도에 동북아사람 귀하던 시절, 끈끈한 연대감이 작용한다. 한참을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이 형님 사진도 어디 있을 게다. 또 찾아봐야겠다.
[부쿠레슈티 MTA] 인민궁전(Palace of Parliament), 구시가지(Old Town), 스타브로폴리오스 수도원(Stavropoleos Monastery), 아테네 음악당(Romanian Atheneum), 마이클 1세 공원(King Michael I Park), 통일광장(Union Square), 루마니아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Art of Romania), 부쿠레슈티 개선문(Triumph Arch), 혁명광장(Revolution Square), 왕궁터와 성 안톤 정교회(Old Princely Court & St. Anthony's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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