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4
<챗지피티로 만든 무속인과 셰익스피어>
가끔 삶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어린 시절, 나는 서해안 바닷가에서 자랐다. 썰물과 밀물의 시간을 잘 알지 못한 채 물놀이하던 아이들이 여름이면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마을에는 어김없이 굿판이 벌어졌다. 바닷가에 오색 천이 펄럭이고, 무당의 노래와 북, 꽹과리 소리가 뒤엉켜 하늘까지 쩌렁쩌렁 흔들리는 듯했다. 어린 내게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샤먼적인 풍경이었다. 그날 밤이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고, 나는 언젠가 그곳을 떠나 도시에 나가 살기를 꿈꾸었다. 무엇이 되겠다기보다 단지 그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제 그 세계와는 영영 멀리 떨어졌다고 안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외국인 신부님의 셰익스피어 강의 시간, 강당 스크린에 굿판 영상이 틀어졌다.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고향의 그 장면과 너무나 유사한 것이었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놀람과 혼란 속에 나는 당돌하게 서툰 영어로 따지듯이 물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라고.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질문은 인생의 연구 주제가 된 셈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운명처럼 신화를 연구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영원히 멀어지고 싶었던 세계가 결국 나의 평생 연구 주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국신화의 ‘본풀이’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우리 삶의 상징과 힘을 읽어내고 있다. 본풀이는 ‘본(本)을 풀다’라는 뜻으로, 무당이 굿에서 신의 근원과 삶의 여정을 노래하는 의례다. 신이 어떻게 태어나 고난을 겪고, 결국 공동체를 지키는 존재가 되는지를 반복적 언어와 리듬으로 풀어낸다. 고통과 구원의 서사, 그리고 치유의 힘이 본풀이의 핵심이다.
이런 본풀이의 상상력은 <케이팝 데몬헌터스> 속 헌트릭스 루미가 부르는 노래 ‘골든(GOLDEN)’과 닮아 있다. 루미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귀마의 유혹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에 흔들리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 속에는 “No more hiding, I'll be shining like I'm born to be”라는 가사가 있다.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빛나도록 태어난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두려움과 상처 속에서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세워가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반복되는 “Up, up, up, up ”라는 후렴은 단순한 흥겨운 구절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여 함께 외치며 어둠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주문 같은 외침이다. 나는 이 음을 들을 때 굿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본풀이의 굿에서 무당이 반복과 리듬으로 신과 인간을 잇고, 절망을 치유로 바꾸듯, 루미의 반복 구절은 좌절을 넘어서는 힘을 길어 올린다. 이 반복은 개인의 상처를 추스르는 것을 넘어, 공동체적 울림으로 확장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노래가 특정 문화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넌 할 수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는 메시지는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용기를 건넨다. 무당이 굿에서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듯, 루미의 노래는 절망에 빠진 이들과 다시 살아가려는 이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때 문득 한국 신화 <삼공본풀이> 속 감은장아기를 떠올린다. 감은장아기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려지고, 수많은 시련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끝내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운명의 여신으로 거듭난다. 버림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것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를 지키는 신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루미와 감은장아기의 여정을 함께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시대임에도 닮은 결이 있다. 루미는 상실의 고통을 반복되는 후렴으로 다스리며 영웅으로 나아가고, 감은장아기는 버림과 방황을 지나 운명을 받아들이며 신이 된다. 루미의 노래는 내면을 세우는 주문이 되고, 감은장아기의 본풀이는 공동체를 치유하는 힘이 된다. 둘 다 고난을 짐으로만 남기지 않고 삶의 동력으로 바꾸어낸 것이다. 그래서 루미의 노래는 현대의 본풀이, 감은장아기의 이야기는 그 원형처럼 겹쳐진다.
결국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고난은 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