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2
근역강산맹호기상도<나무위키> 호작도, 호암미술관<나무위키>
<K-팝 데몬헌터스> 속 호랑이는 왜 그렇게 강렬하게 우리의 마음에 다가올까. 어쩌면 호랑이는 늘 우리 민중의 마음을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근대 초기 육당 최남선은 조선을 ‘호랑이의 나라’라고 불렀다. 산천을 굽이치며 살아온 기개를 호랑이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학자 고토 분지로는 조선을 ‘겁에 질린 토끼의 나라’라 불렀다. 조선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호랑이와 토끼라는 두 상징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우리 민족의 내면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겹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은유들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디지털 무대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케데헌> 속 호랑이가 바로 그 증거다.
우리는 단군신화 속에서 인간이 되지 못한 친근한 친구 같은 호랑이를 만난다. 어쩌면 삼칠일 동안 굴속에서 그 맛없는 쑥과 마늘을 먹은 곰보다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오히려 우리의 내면과 동질화가 더 될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그 실패한 호랑이는 우리의 민간 설화의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친근하게 등장한다. 반면 곰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아주 귀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호랑이의 좌절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인간 곁에서 늘 출발선을 함께 한다는 흔적일 것이다. 욕망과 자유로움을 안고 숲으로 돌아간 호랑이는 어쩌면 인간의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 속 호랑이도 떠올려보자.
“얘들아, 문 좀 열어다오.”
문밖에서 아이들을 애타게 부르는 그 호랑이는 무섭고도 외로운 존재였을지 모른다. 배고픔에 울부짖으면서도, 어쩌면 인간과 함께하고 싶었던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그 두려운 호랑이를 문화 속에서 DNA처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민화 속 <호작도>의 호랑이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집안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자였다. 까치에게 놀림당한 듯 어리숙해 보이는 표정 속에는 사실 재앙을 막아내려는 간절한 기원이 숨어 있었다. 조선 사람들은 무서운 전염병 콜레라를 ‘호열자(虎烈刺)’라 불렀다. 마치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몸 속을 헤집고 다니는 쥐라고 여겼다. 그래서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걸어서 집안으로 들어온 쥐를 잡아내고 병마를 몰아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호작도의 호랑이는 그렇게 대문 앞에 걸렸다. 해학 어린 모습으로 사람들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바꾸어냈다. 무서움을 비틀어 유머로 전환하는 순간,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민중의 마음을 지켜주는 치유의 힘이 되었다.
그렇다면 <케데헌> 속 호랑이는 어떤 모습일까. 무대에 나타난 호랑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귀마의 유혹에 흔들린 진우 곁에서 함께 공포를 감내했고, 진우가 죽은 뒤에는 주인공 루미의 두려움을 감싸 안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것은 단군신화의 미완의 존재, 오누이 설화 속 외로운 맹수, 민화 속 해학의 호랑이가 겹쳐진 매우 다중적인 얼굴이었다.
무섭지만 친근하고,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그 모순된 얼굴은 곧 한국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케데헌>의 호랑이는 자신의 치부를 인정하고 스스로 기꺼이 영웅이 되어가는 헌트릭스 루미에게 속삭인다.
“나는 두렵지만,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아마도 디지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수호신을 간절히 원하는 게 아닐까. 호랑이라는 상징은 그렇게 오래된 신화 속에서, 그리고 오늘의 무대 위에서 여전히 우리 곁을 지긋하게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