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삼국유사>와 베트남 <영남척괴열전> 속 미녀들

― 한국과 베트남, 오래된 문화를 찾아서

강연중 사용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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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박물관에서 나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기이한 상상력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트남 신화서 <영남척괴열전>을 소개하고 싶었다. 요새 베트남의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로 불릴 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또한 베트남의 많은 여성들은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다.

이쯤 되면, 이제 그들의 문화 속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삼국유사>와 베트남의 <영남척괴열전>은 서로 다른 땅에서 기록되었지만,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두 나라는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 위에 바다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신화는 산과 강, 바다에 깃들어 생활 속 기억으로 남았다. 용은 괴물이 아니라 비와 풍요를 가져오는 존재이며, 신령함은 멀리 있지 않고 마을과 지명 속에 머문다. 유교와 불교 문화권이라는 공통 토대 속에서 교육과 제의, 조상 숭배의 방식도 유사하게 자리 잡았다. 신화는 역사책 바깥에서 민중의 기억을 지켜왔고, 한국과 베트남은 그 기억을 일상 가까이에 두는 방법을 공유해 왔다. 닮았다는 사실은 곧,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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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트남 신화집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에 무척 놀랬다.

삼국유사는 13세기 고려 말, 몽골의 침입과 원 간섭기라는 격변 속에서 기록되었다. 일연은 정사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모아, “기이한 것이 어찌 괴이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신비 옹호가 아니다. 나라의 중심이 흔들릴 때, 그는 민중의 기억과 신화 속에서 한국 문화의 뿌리를 붙잡고자 했다. 삼국유사는 왕의 계보보다도,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영남척괴열전이 편찬된 15세기 베트남 역시 상황은 닮아 있다. 중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베트남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정립해야 했다. 이 책은 공식 역사서가 미처 담지 못한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베트남 땅에 신령함과 영웅, 민중의 기억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괴이함은 주변부의 언어가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두 책 모두 신화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를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이 점에서 삼국유사와 영남척괴열전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매우 닮은 위치에 서 있다.


3.

<삼국유사> 속 유명한 미녀인 선화공주 이야기는 베트남 신화 <영남척괴열전>의 선용공주와 무척 닮아 있었다.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서동이 퍼뜨린 노래와 소문으로 인해 궁에서 쫓겨난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말은 곧 권력이 되고, 공주는 변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추방에서 끝나지 않는다. 선화공주는 서동과 함께 새로운 삶의 자리로 이동하며, 이후 백제 건국 서사의 중요한 축으로 남는다.

선용공주는 베트남 『영남척괴열전』에 등장하는 공주로, 기이한 사건과 신령한 존재와의 만남 속에서 기존 질서를 벗어난 선택을 한다. 그녀의 삶은 규범적인 공주상과 거리가 멀며, 이동과 결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한다. 이야기는 그녀를 판단하지 않고, 변화의 과정을 따라간다.

3.

한옥박물관 강연에서 나는 이 두 공주를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물로 불러내 보려 했었다. 선화공주와 선용공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하지만, 신화 속에서 매우 닮은 위치에 서 있다.

첫째, 소문과 기이함의 중심에 놓인 여성이라는 점이다. 선화공주는 서동의 노래라는 소문 속에서 하루아침에 궁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말은 이미 사회적 판단이 되었고, 공주는 그 결과를 떠안는다. 선용공주 역시 기이한 사건과 신령한 존재와의 만남 속에서 기존 질서 밖으로 밀려난다. 두 이야기에서 여성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수용자였다.

둘째, 이동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두 공주는 모두 보호의 공간을 떠난다. 그러나 이 이동은 추락이나 벌이 아니다. 선화공주는 새로운 삶의 자리에 도착하며 백제 서사의 일부가 되고, 선용공주는 낯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감당한다. 신화는 이 이동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질서를 재편하는 계기로 제시한다.

셋째, 판단 대신 질문을 남기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두 공주는 끝내 명확한 도덕적 평가를 받지 않는다. 선악의 구분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누가 이야기를 만들고, 누가 그 결과를 책임지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짜 뉴스, 이미지 정치, 여성에 대한 시선의 문제는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문제다. 그래서 선화공주와 선용공주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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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강의실에는 점점 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이게 된다. 이때 신화는 가장 강력한 공통 언어가 될 수 있다. 이번 학기에는 일본 학생과 네팔 학생들이 들어왔다. 이제 일본 신화도 네팔신화도 강의의 소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AI를 활용하면 학생들은 각자의 문화권 신화를 번역하고 시각화하며, 하나의 지도 위에 올려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선화공주와 베트남의 선용공주를 연결하고, 다시 다른 나라의 공주 신화와 이어 붙이는 작업도 가능하다. 메타버스와 생성형 AI는 신화를 ‘배워야 할 고전’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이야기’로 바꿀 수도 있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다름을 설명하기보다, 이미 공유하고 있는 감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AI 시대 인문학 수업이 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대화의 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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