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많았던 시대, 선덕여왕은 왜 불교를 선택했을까

산불과 디지털 화재의 시대를 건너며




요몇년 추워지면 어김없이 산불이 자주 등장한다. 건조해서 그런다고 한다. 작년 아래쪽에 큰 불이 났는데, 두 아들이 모두 군대에 입소한 상태여서 잠이 오지 않은 날이 참 많았다.

나는 그때에도 삼국유사가 떠올랐다. 이쯤 되면 나의 삼국유사는 병이 참 깊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것이니 한번 쭉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로 하겠다.

불교가 전래된 지 오래되지 않았던 신라, 그리고 최초의 여성 군주라는 낯선 존재. 바로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의 시대는 조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삼국사기 기록 속에는 노란 비가 왔다고 적고 있다. 또한 외침의 위협은 끊이지 않았으며, 왕의 권위는 새롭게 증명되어야 했다. 이때 선덕여왕이 선택한 것은 칼이 아니라 불교적 상상력이었다. 우리나라의 큰 사찰들은 대부분 선덕여왕 시대에 착공된 것들이다.


1. 백정과 마야


불교 서사에서 석가모니는 아버지 백정과 엄마 마야에게서 태어난다. 그런데, 신라의 진평왕의 이름이 백정이고 부인이 마야이다. 고로 그 사이에 탄생한 선덕여왕은 석가모니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즉, 위대한 탄생의 조건이다. 그녀는 석가모니처럼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사명과 함께 왕위를 계승한 것인지도 모른다.
즉 구원의 석가모니 서사는 선덕여왕 서사에도 반복되는 듯하다.


『삼국유사』 속에서 선덕여왕은 때로 신라의 석가모니처럼 그려진다. 아버지 진평왕과 대비될 때, 여왕은 단순한 계승자가 아니라 불국토를 낳는 존재로 자리한다.
혈통과 무력이 아닌, 탄생과 덕의 서사. 이는 여성 군주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매우 불교적인 장치였다. 여왕은 스스로를 ‘부처’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 나라가 불국토가 되도록 노력하였다.


2. 당나라의 침입, 그리고 여왕을 ‘쓰는’ 정치


선덕여왕의 통치는 늘 위태로웠다. 당나라의 압박은 군사적 위기였고, 내부적으로는 여성 군주에 대한 불신이 존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위기의 순간마다 선덕여왕이 전면에 호출된다는 사실이다.


예언을 아는 여왕, 하늘의 뜻을 읽는 여왕, 미리 아는 여왕.
이는 개인의 신비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선택한 전략이었다. 당과 맞서는 신라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하늘과 불법의 질서 속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여왕은 그 질서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불교는 외교이자 방패였고, 여왕은 그 방패의 문양이었다.

선덕여왕을 가장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왕은 문무왕 법민이다. 그는 당나라가 칩입해 오자 급하게 선덕여왕의 세 번째 예언인 도리천을 적극 활용한다. 도리천은 불교의 33천의 최고 꼭대기이다. 여기에 부처가 산다. 상징적으로 보면 모든 불교의 사찰은 33천이 되고 그 중앙인 도리천은 대웅전이 되는 셈이다. 문무왕은 산꼭대기에 묻힌 선덕여왕의 자리를 대웅전으로 삼고 무덤 아래에 급하게 사천왕사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법사들을 불러놓고 기도를 하게 한다. 기적적으로 당나라 군사들은 태풍으로 두 번씩이나 몰살당하고 만다.


3. 지기설화, 불이 많았던 시대


『대동운부군옥』에 전하는 지기설화는 이렇게 말한다.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나 몸을 태우고, 마침내 화신이 되었다.”


지기라는 평민 남자가 선덕여왕을 흠모하였다. 여왕을 보고자 영묘사 앞에서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어 끝내 여왕을 보지 못했다. 그는 마음에서 불이 나와 탑을 태우고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갔다.

이 불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다. 사랑하지 못한 마음, 닿지 못한 권력, 억눌린 감정이 화기(火氣)가 되어 폭발한 것이다. 불이 잦았다는 기록은, 곧 사회가 불안정했다는 징후다. 선덕여왕이 불교를 통해 다스리고자 했던 것은 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상태였다.


도리천과 사천왕의 상상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늘 위에서 사방을 지키는 존재들. 이는 불안을 외부의 적이 아니라 질서의 붕괴로 이해하려는 사유였다.


4. 오늘의 산불과 디지털 화재


요즘 우리는 또 다른 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산을 태우는 산불만이 아니다. 데이터 센터가 타기도 하고 여기저기 예기치 못한 불들이 일어나곤 한다.

실제의 불만이 아니라 위험한 불길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번지는 분노와 혐오의 불길. 클릭 하나, 공유 하나가 불신을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 불은 여전히 마음에서 시작되고, 순식간에 번진다.


선덕여왕의 시대와 다른 점은 기술뿐이다. 불안을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서툴다. 그녀가 불교로 시도했던 것은 통제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불을 끄기 전에, 왜 불이 나는지를 묻는 질문. 지금의 디지털 사회에도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불이 많았던 시대에, 선덕여왕은 불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실재 불과 디지털 상의 불이 많아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이 요즘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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