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식물을 한 번 사봐"
지루한 일상 속 환기가 필요하다는 내 말을 듣고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뭐든 키우는 것엔 잼병이라 식물을 방으로 들이는 건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딘지 휑한 내 방에 작은 변화가
될 듯해 최근 점심시간 산책길에 꽃집에 들러 예쁜
보라색 꽃이 든 화분을 샀다.
꽃 이름은 무스카리.
색도 색이지만, 방향제랑은 비교도 안 되는 꽃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와 선반 위에 두니 은근히 눈길이 갔다.
친구가 말한 게 이런 기분인 건가.
내 방에 숨이 붙어있는 친구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오늘은 꽃이 더 폈나 살피고,
마른풀을 잘라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퇴근 후 방에 들어오니
꽃들이 모두 줄기째 잘라져 유리잔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꽃이 거의 다 자라 줄기가 늘어지고 있어 자른
것이라고 했다. 잘라낸 곳에서 또 꽃이 자랄 테니 걱정 말라고.
나는 아직 끝쪽 부분은 봉우리를 다 틔우지도 못했는데
잘린 꽃이 속상해 아직 더 필 수 있을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엄마에게 소심한 핀잔을 주었다.
줄기가 기울고 있긴 했지만 다 자란 건 아닌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점심시간에 다시 한번 꽃집을 찾았다.
무스카리 옆에 있던 빨간 튤립도 사고 싶었고,
사무실에 선인장도 하나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무실에 놓을 선인장으로 내 검지 만한 미니 선인장을
고르고 문득 무스카리 생각이 나 꽃집 언니에게
무스카리가 거의 다 자라서 꽃대를 잘랐는데
이렇게 관리해도 괜찮은 건지 물었다.
언니는 무스카리의 다 자란 꽃대는 잘라주는 게 맞다고
내가 꽃을 잘 모른다고 해놓고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있다며 되려 나를 칭찬했다.
찾아보니 무스카리는 제때 줄기를 정리해주어야
흙 속 영양분이 구근에 집중돼 다음 해에도 또 꽃을
피울 수 있는 꽃이었다.
꽃이 피는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잘 지키면
꽃은 알아서 시들고, 또 자라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잘 영근 꽃은 가위로 잘라줘야 또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라니.
"봄이야, 끝과 시작은 같아."
아빠가 말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 끝은 언제나 슬픔과 두려움, 후회 같은 것들인데
어쩌면 어떤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일지도.
무스카리에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