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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note Mar 21. 2021

무스카리에게 배웠다.


"그럼 식물을 한 번 사봐"

지루한 일상 속 환기가 필요하다는 내 말을 듣고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뭐든 키우는 것엔 잼병이라 식물을 방으로 들이는 건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딘지 휑한 내 방에 작은 변화가

될 듯해 최근 점심시간 산책길에 꽃집에 들러 예쁜 

보라색 꽃이 든 화분을 샀다. 


꽃 이름은 무스카리.

색도 색이지만, 방향제랑은 비교도 안 되는 꽃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와 선반 위에 두니 은근히 눈길이 갔다. 

친구가 말한 게 이런 기분인 건가.

내 방에 숨이 붙어있는 친구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오늘은 꽃이 더 폈나 살피고, 

마른풀을 잘라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퇴근 후 방에 들어오니

꽃들이 모두 줄기째 잘라져 유리잔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꽃이 거의 다 자라 줄기가 늘어지고 있어 자른 

것이라고 했다. 잘라낸 곳에서 또 꽃이 자랄 테니 걱정 말라고.

나는 아직 끝쪽 부분은 봉우리를 다 틔우지도 못했는데

잘린 꽃이 속상해 아직 더 필 수 있을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엄마에게 소심한 핀잔을 주었다.


줄기가 기울고 있긴 했지만 다 자란 건 아닌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점심시간에 다시 한번 꽃집을 찾았다. 

무스카리 옆에 있던 빨간 튤립도 사고 싶었고, 

사무실에 선인장도 하나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무실에 놓을 선인장으로 내 검지 만한 미니 선인장을

고르고 문득 무스카리 생각이 나 꽃집 언니에게 

무스카리가 거의 다 자라서 꽃대를 잘랐는데 

이렇게 관리해도 괜찮은 건지 물었다. 


언니는 무스카리의 다 자란 꽃대는 잘라주는 게 맞다고 

내가 꽃을 잘 모른다고 해놓고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있다며 되려 나를 칭찬했다.

찾아보니 무스카리는 제때 줄기를 정리해주어야

흙 속 영양분이 구근에 집중돼 다음 해에도 또 꽃을 

피울 수 있는 꽃이었다.   

꽃이 피는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잘 지키면

꽃은 알아서 시들고, 또 자라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잘 영근 꽃은 가위로 잘라줘야 또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라니.


"봄이야, 끝과 시작은 같아."

아빠가 말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 끝은 언제나 슬픔과 두려움, 후회 같은 것들인데

어쩌면 어떤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일지도. 

무스카리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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