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아홉 번째 장면
[The Queen Of Korea, Demorest's Family Magazine 1894, 퍼블릭 도매인]
19세기말 조선은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학(크리스트교)에 대항하는 동학을 최제우가 창시하였으나, 이단으로 규정하여 정부에서는 탄압하였다. 한편 정부는 민 씨 일가가 점령하여 세도정치 이후로 최대의 부정부패를 일삼는 시기였다. 그러다 1894년, 동아시아의 질서가 요동치며 역사의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한 격동의 새벽이 밝아왔다. 수많은 중대한 사건들이 이 해를 뒤덮는 가운데, 그 격변의 서막은 전라도 한 지방에서 벌어진 한 군수의 가혹한 횡포에서 시작이 된다.
고부군수로 조병갑이 취임한 이후로 비옥한 지방이었던 고부 군에 대한 극심한 수탈이 이어졌다. 조병갑은 갖가진 명목으로 백성들을 수탈하였다. 결국 1894년 2월 15일, 조병갑의 횡포에 참다못한 백성들은 전봉준을 필두로 관아를 점령하였다. 당시 전봉준은 동학접주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이 사태를 알게 되자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로운 고부군수를 임명함과 동시에 이용태를 안핵사로 삼아 사태를 진정하게 하였다. 봉기는 이렇게 끝나게 된다. 하지만 안핵사는 동학교도와 백성들을 탄압하고 악행을 일삼았고 결국 이 일련의 과정은 백성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하는 교두보가 되었다.
[동학 농민 혁명과 사발통문, 퍼블릭 도메인]
안핵사가 전봉준과 주동자들을 전부 역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하자 동학접주 전봉준과 주동자들은 탐관오리 숙청과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을 천명하고 농민들을 규합했다. 10여 일 만에 약 1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농민군은 백산에 모인 이후 황토현, 황룡촌 전투에서 차례로 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들은 결국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된다. 농민군은 1894년 6월 정부에게 폐정개혁안 12개 조를 제시하였다.
<폐정개혁안 12개 조>
① 도인(道人)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宿嫌)(오래 묵은 혐의)을
탕척(蕩滌)(죄명을 씻어준다.)하고 서정(庶政)을 협력할 것
②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査得)(조사하여 사실을 알아내다)해 일일이 엄징할 것
③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부자)를 엄징할 것
④ 불량한 유림(儒林)과 양반배(兩班輩)는 못된 버릇을 징계할 것
⑤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⑥ 칠반천인(七班賤人)(천한 직업을 맡았던 사람들을 통칭함)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白丁) 머리에 쓰는 평양립(平壤笠)은 벗어 버릴 것
⑦ 청춘과부(靑春寡婦)의 개가(한 번 결혼하였던 여자가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를 허락할 것
⑧ 무명잡세(無名雜稅)(이름 붙이지 않은 여러 가지 세금)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⑨ 관리 채용은 지벌(地閥)(지연)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⑩ 왜(倭)와 간통(奸通)하는 자는 엄징할 것
⑪ 공사채(公私債)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⑫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分作)하게 할 것
[1894년 12월 체포되어 압송되는 전봉준, 퍼블릭 도메인]
한편 사태가 잡을 수 없이 커지자, 고종과 민비는 청군에게 다시 SOS를 요청하였다.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게 되자 일본군 또한 톈진조약을 이유로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외세가 내부로 들어오게 되자 동학농민군은 관군과의 회담으로 1894년 6월 11일 전주화약이 성립되며 동학농민군은 해산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조선에서 청군과 일본군이 전쟁을 벌였다. 농민들은 다시 집결하여 저항하려고 하였으나 조정과 일본군은 농민군을 아주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우금치 전투를 통해 1만여 명 이상이 농민군이 사망하며 동학농민군은 이렇게 끝이 나게 된다. 이후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1895년 5월 4일 교수형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