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더기 세상

by 지현옥


탄성이 절로 나오는 4월!

꽃무더기 세상이다. 노랑, 연분홍, 꽃분홍, 하양, 온 거리에 꽃등이 켜졌다. 기꺼이 꽃멀미에 취하러 거리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만나고 느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속달동은 봄이 늦다.

시내에 한바탕 꽃잔치가 지나가면, 그제야 산동네 꽃들이 참았던 웃음을 한꺼번에 터뜨린다.



​마을 입구 첫 집에는 커다란 백목련이 만발했다. 벚꽃이 요란한 웃음소리라면 하얀 목련은 깊은 미소 같다. 고결한 꽃잎은 매끄러운 백자의 질감을 닮았다고 할까.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시인은 어쩜 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고 했을까. 타다만 편지지처럼 벌써 끝이 누렇게 된 꽃잎들이 땅바닥에 누워있다. 떨어진 꽃잎을 몇 개 주웠다. 나도 하얀 꽃잎에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4월의 주인공은 단연 벚꽃이다.

우리 뜰에는 커다란 벚나무 6그루가 있다. 그중 수형이 가장 예쁜 두 나무가 만개했다. 마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함성이 터져 나왔다. 햇살을 머금어 눈이 부시게 새하얗다. 부끄러운 듯 연분홍빛 수줍음도 보인다.


몽실몽실 피어난 꽃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온갖 문양을 이루었다. 방실거리는 꽃잎들을 보고 또 보았다. 바람 한 점에 금방이라도 푸른 하늘 속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다.



그 아래서 쑥을 캤다.

봄이 영그는 한복판, 벚꽃나무 아래서 털이 보송보송한 뽀얀 쑥을 담았다. 간간이 쑥 바구니에 벚꽃 잎이 내렸다. 목련 꽃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는 시인의 마음이 부럽지 않았다.


오직 이 시기에만 허락된 가장 사치스러운 여유를 만끽하며, 일 년에 한 번씩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여자가 된다. ​​눈부신 봄을 쑥 바구니에도, 눈에도, 마음에도 꼭꼭 담았다.


앵두꽃도 오고, 살구꽃도 왔다.

수리산 밑 수양벚꽃 군락까지 난리가 났다. 늘어진 꽃가지가 봄바람에 일렁일렁 춤을 춘다. 연분홍 치마처럼 꽃바람에 휘날린다.



눈앞에 펼쳐진 봄 풍경에 마음이 무너진다. 완연한 봄 앞에서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온 힘으로 피었다가 가장 화려한 순간에 미련 없이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슬픔이 이는 건 왜일까.


살다 보면 그냥 울컥하는 순간이 있는 게 인생이라지만 가슴이 터질 듯 아름다운 꽃들 앞에서 참 얄궂다. 나이 탓인 걸까. 아니다. 너무 환하고 찬란하게 피어난 꽃들 때문이다. 짧게 왔다 허망하게 지고 마는 연분홍 봄꽃들 탓이다.



속절없이 또 하루 봄날이 간다.

달빛처럼 휘영청 밝은 벚꽃 등을 두고 속달동 마당을 떠나오기가 못내 아쉽다.

오늘 밤 꿈속에도 벚꽃이 함께할 거 같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