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는 고도(古都) 분위가 물씬 풍겼다.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품고 기품 있게 나이 들어가는 도시 같다.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산책을 하는 느낌이랄까. 어느 곳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도시였다. 화려한 유흥이나 빠른 속도감을 기대한다면 다소 무료할 수 있지만, 낡은 담벼락에 핀 꽃 한 송이와 고즈넉한 강물의 흐름에 마음을 맡길 준비가 된 여행자에게, 후에는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향기 나는 강(香江)이라는 뜻의 흐엉강을 따라 구도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웅장한 규모의 황궁과 황제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세계의 여행객들을 후에로 모은다.
아침 일찍 흐엉 강가를 산책하고,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조식을 먹었다. 강가 수변공원에서 운동을 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일상이 여느 도심의 아침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황궁을 돌아보는 일일투어가 예약된 날이라 평소보다 거하게 챙겨 먹었다. 종일 걷는 일정이다.
먼저, 구도시로 가기 위해 뱃머리에 용 장식이 있는 드래건 보트를 탔다. 흐엉강에서 기대했던 향내는 없었다. 집 짓는 목재로 쓰기 위해 강가에 자라는 향기 나는 나무들을 남벌한 결과로 이젠 Perfume River의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강 건너편에 내리자, 후에의 상징인 티엔무 사원과 후에 풍경화에서 빠지지 않는 랜드마크, 팔각 7층 석탑이 있었다. 응우옌 왕조의 건국과 관련되어 왕실에서 관리하던 사원과 불탑이다. 사원에서 바라보는 흐엉강의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었다.
탑 뒤편으로 이어진 사원 경내로 들어서자 소나무 숲과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분재들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토바이 소음마저 비껴간 정적에 영어권 여행객들은 peaceful을 연발했다. 나도 강물을 내려다보며 고요와 평온에 흠뻑 젖었다. 평화로운 그 순간을 백팩에까지 고이 담아 오고 싶었다.
구시가지로 들어서자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응우옌 황궁이 나왔다. 왕조의 마지막 숨결이 닿은 황성의 벽은 세월의 풍파에 검은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다. 찬란했던 황금빛 지붕은 빛이 바랬지만, 그 위에 내리는 햇살은 여전히 묘한 권위가 풍기는 듯했다.
황궁의 정문은 정오가 되면 태양이 문 위로 떠오른다고 오문(午門)이라고 한다.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1945년 호찌민 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퇴위한 곳이기도 하다. 황제만이 가운데 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었다니 예를 갖추어 가장자리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왕궁 내부 가장 안쪽에 마지막 황제가 머물던 궁전이 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폐허 상태로 있다가 장기간 복원 과정을 거쳐 2024년에 완성되었다.
친 프랑스 정책을 펼쳤던 황제답게, 도자기를 이용한 모자이크 공예로 된 유럽풍의 건물 외관은 화려했다. 호찌민이 주도한 혁명으로 황제가 폐위당하면서 응우옌 왕조가 막을 내릴 때까지 권력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한때를 영위했던 권좌도 결국은 허물어져 주인을 잃은 채 세월의 무상함만 남았지만, 화려한 장식과 조각들이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은 당시 황제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엔 내가 좋아하는 플루메리아가 많았다. 적재적소에 자리한 수형 예쁜 나무는 궁전의 배경이 되고 여백의 미를 더했다. 겨우 몇 개 벌어진 꽃봉오리가 아쉬웠지만, 플루메리아 꽃잎이 뚝뚝 떨어져 땅까지 곱게 수놓을 궁전을 그려보았다.
홍매화 만개한 우리의 창덕궁이 떠올랐다.
우리의 고궁에서 한복의 맵시가 돋보인다면, 후에의 황궁은 아오자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곳곳에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의 점령과 일본의 침략, 베트남 전쟁이라는 미국의 개입 등으로 뒤틀리고 뼈아펐던 베트남의 역사를 들으며 여러모로 우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전쟁을 언급하면서 가이드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의식했는지 한국군 참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일말의 미안함이 일었다.
흐엉강 남쪽으로는 왕궁과 맞먹을만한 건축미를 뽐내는 황제릉들이 있다.
왕릉의 꽃이라는 민망 황제릉은 단순히 무덤이라기보다 거대한 정원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황제의 관이 안치된 곳까지 모든 건축물과 정원수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도굴 방지를 위해 실제 관이 있는 곳은 비밀로 부치거나, 입구를 철저히 봉인하고 그 위를 평평하게 다졌다.
무덤을 산처럼 높게 쌓아 왕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낸 우리나라의 봉분 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프랑스 식민 지배 당시의 군주였던 카이딘 황제릉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유리 재질의 공예로 꾸며진 사후의 집도 황궁 못지않았다.
마지막 코스로 향 마을에 들렀다.
약 700년 전 응우옌 왕조 시절부터 왕실과 주변 지역에 향을 공급해 온 유서 깊은 전통 공예 마을이다. 다채로운 색깔의 향 다발들이 마치 꽃밭처럼 펼쳐져 있었다. SNS에서 인생 샷 명소로 떠오르며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로 자리 잡았다. 향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황궁과 황릉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빡빡한 하루였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다낭은 몰라도 후에와 호이안은 꼭 들른다는 말의 의미를 알았다.
그래서일까 후에 신시가지에는 여행자 거리가 있다.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 숍, 카페와 펍이 즐비하다. 조용하던 거리가 밤이 되자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어우러져 북적였다.
호텔 프런트 직원이 추천한 'hottuna'에서 후에 스타일의 매콤 얼큰 쌀국수와 짜조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우리도 시끌벅적한 후에의 밤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