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해 보자 정제된 언어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화자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내면에 자리 잡은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정교한 틀이다.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며 그 미묘한 결을 강조할 때 생각해 볼 지점. 언젠가 사람을 향해서 "쟤 너무 불쌍해."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불쌍하다는 단어가 거슬렸던 것 같다. '안타깝다'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 미묘한 차이다. 나의 성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쌍하다'와 '안타깝다'라는 단어들의 거리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단어는 타인의 불행이나 결핍을 마주했을 때 터져 나오는 정서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지만 그 전제하는 화자의 위치와 상대방을 대하는 인격적 측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불쌍하다'라는 것은 화자가 대상보다 우월한 위계에 서 있음을 전제하는 수직적인 연민의 성격을 띤다. 이때 감정은 순수한 공감이라기보다 '가여운 상태'라는 의미로 상대의 실존적 가치를 축소함으로써 자존감의 무의식적인 생채기를 남기는 무례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안타깝다'는 화자와 대상이 대등한 상태라는 것에 초점이 있다. 상대방의 존재 가치나 인격적 결함이 아니라 그저 마주한 상황적 부조리나 목적 달성의 좌절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대상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처한 환경이나 결과의 불일치를 함께 아파해주는 공감적 측면이 강하다.
결론적으로 '불쌍하다'는 표현은 대상을 평가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안타깝다'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언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타자의 힘듦을 마주했을 때 불쌍함이라는 하향식 동정의 시선보다는 안타까움이라는 사려 깊은 유감을 표하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담긴 이 미세한 결의 차이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서포트가 될 수도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