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아요'가 좋아요

우리가 남이가

by 김승요

‘대한민국은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 그 말이 정설처럼 통용되는 사회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그 체감 온도는 훨씬 더 촘촘하다. 거대한 익명성 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느낌보다는 한 다리만 건너면 혹은 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 되는 사실이 일상이 되는 곳. 오죽하면 제주도 사람들은 “옆집 팬티가 몇 장인지도 다 안다”는 말이 있겠는가. 내가 나고 자란 부산만 봐도 그 말에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곤 한다.


부산에서 살면서 사적인 근황이나 집안의 대소사까지도 바닷바람 만큼 빠르게 퍼져 나가는 걸 느낄 때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거기에 더불어 “옛날에 같은 반이었던 누구 어디 직장에 합격했다더라.”,“걔 이번에 결혼한다던데” 같은 말들이 인사가 되어 돌아올 때 우리는 관계에 과잉 네트워크가 주는 피로감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속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알리고 싶지 않은 슬픔이나 고통을 우연하게라도 알 게 될 때면 그 지나친 관심들이 누군가의 사생활의 경계를 허무는 것처럼 느껴져 여기서 사는 게 어렵다는 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모든 네트워크들은 내가 속해있는 혹은 속했었던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 사회적인 인맥 속에서 성장하다 보면 사람에 치여 관계에 환멸을 느끼더라도 결국 우리가 힘들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이 좁아터진 관계망의 역설적인 다정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 무심한 척 건내는 “밥은 먹고 다니나.”라던지 말없이 SNS 게시물에 툭 찍힌 ‘좋아요’ 하나를 볼 때면 그만큼 서로의 삶에도 깊숙이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쓰러질 듯 휘청거릴 때 가정 먼저 달려와 위로해 줄 수 있는 이들도 결국 이 좁은 바닥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이겠지.


좁은 세상이라 도망갈 곳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우리가 끝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비정하고 거대한 익명성 속에서 잊히기보다 나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있는 이곳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심한 척 눌러주는 ‘좋아요’의 다정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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