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질문

다음 질문 들어갑니다

by 김승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가끔은 대화가 아니라 ‘취조’를 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디 사세요?”,“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은 마치 엑셀 차트에 데이터 입력값을 넣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를 알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라지만 역설적으로 그 질문들이 쌓일수록 이상하리만큼 소외되는 기분이다. 효율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견적을 내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피로. 근데 뭐 나는 어떤가.

우리가 이런 방식의 대화에서 피로를 느끼는 이유는 인간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가 아니라 분류 가능한 카테고리로 치환해버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파악’이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이 효율적인 분류 작업은 상대를 특정한 ‘틀’ 안에 가두어버린다.

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만남은 상대를 질문들로 성급하게 파악하려 들기보다 내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들로 천천히 알아가려 노력한다. ‘파악’이 상대를 특정 카테고리에 넣어두는 효율적인 분류작업이라면 ‘알아감’은 그 사람의 진심어린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작은 습관 혹은 무심코 내뱉은 취향의 단어들을 통해 상대를 천천히 알아가려 노력한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그 인내심 덕분에 부담스러운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좋은 관계란 서로의 견적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다정한 관심으로 채워가는 과정일 것이다.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견적을 내는 일이 빠르고 간편하겠지만 한 사람의 진심을 알아가는 일은 반드시 느리고 완만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계에서 갈망하는 것은 상대의 머릿속에 있는 엑셀 차트에 입력된 내 데이터값이 아니라 인내를 필요로 하는 다정한 시선일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라떼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