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검은 뿔테 안경 너머의 아이

by 자신을사랑하기

1화: 검은 뿔테 안경 너머의 아이


모든 거대한 비극의 시작은 늘 평범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하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폭풍이 예고되어 있었다면, 그날의 공기가 그렇게 평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해 가을이었던가. 가깝게 지내던 어른의 부탁으로 나는 예식장 접수대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큰딸 결혼식이었고, 나는 밀려드는 하객들의 이름을 적고 봉투를 정리하며 정신없는 오전울 보내고 있었다. 축하의 웃음소리와 식장 특유의 들뜬 소음 속에서, 내 시선은 줄곧 장부의 숫자들과 내 손가락에 묻은 볼펜 잉크 자국에만 머물러 있었다.


"여기, 우리 막내예요. 인사해."


어른의 쾌활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 당신이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의 절반을 가릴 듯 커다란 검은색 뿔테 안경이었다. 화려한 예식장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당신은 갓 구운 빵처럼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학생 티가 역력했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움츠러든 듯한 모습이었다. 나이 차이도 꽤 났던 터라, 내 눈에 당신은 그저 '누군가의 어린 동생' 혹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 정도로만 보였다.


"안녕하세요."


수줍게 건네던 짧은 인사.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티 없이 맑았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떠한 계산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무심하게 받아 넘긴 그 인사가 내 평생을 붙들어 맬 닻이 될 줄은.


나는 그저 "아, 네. 안녕하세요."라는 의례적인 대답과 함께 다시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예식장의 인공적인 조명 아래서 당신이 쓴 검은 안경은 지적인 세련미보다는, 세상의 거친 풍파로부터 자신을 가리려는 작은 울타리처럼 보였다. 그 울타리가 훗날 당신만의 거대한 행성이 되어, 남편인 나조차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성벽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그저 축의금 봉투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가을바람은 적당히 선선했고 하늘은 지나치게 높았다. 그저 남의 경사를 돕고 온 평범한 주말의 끝자락. 하지만 내 기억의 한구석에는 그 검은 안경 너머로 반짝이던 맑은 눈동자가 잔상처럼 남았다.


우리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아무런 불길한 예감 없이, 마치 우연히 펼쳐진 소설의 도입부처럼 아주 평범하게 넘겨졌다.



이전 01화프롤로그: 다정한 안부 전화